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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약속을 했다면, 특히 그 약속이 나의 아이들과 했던 약속이라면 그 약속은 단순한 약속이나 맹세를 넘어서 관계의 보이지 않는 족쇄와 같은 존재가 되지 않는가 싶다. 아들이 군생활을 하던 시절, "제대하면 같이 여행 한번 가자" 했던 이야기는 아들이 코로나가 한참 창궐하던 시기에 제대하는 덕택(?)에 유야무야 없어지는 듯했지만, 마음에 새겨진 마음의 족쇄는 그냥 풀어지지는 않았다. 결국 아들로 하여금 여권을 신청하게 하고 항공권을 예매하고 숙소를 예약하며 마음의 족쇄는 서서히 여행에 대한 기대로 서서히 바뀌었다.
원래의 한국 출발 계획은 아들의 직장 앞에서 픽업해서 공항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집을 출발할 때 내리기 시작하던 눈은 경기도에 진입하면서 폭설로 바뀌었고 고속도로는 모든 차동차가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넉넉한 시간을 두고 집에서 출발했지만 과연 시간 안에 공항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자동차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결국 꽉 막히는 고속도로를 빨리 빠져나오고 아들로 하여금 인근 전철역으로 이동하여 만나는 것으로 경로를 바꾸어 어려움 가운데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얼마나 눈이 많이 왔는지 고속도로 요금소를 통과할 때마다 번호판이 눈에 가려서 차문을 열고 번호판을 확인시켜 주어야 했다.
다행히 시간 내에 공항에 도착했지만 인천공항은 폭설로 아수라장이었다. 항공기들도 지연되고 고객들도 공항 도착이 늦어지니 덩달아 보안 검사가 밀려서 엄청난 대기줄은 억!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 야간인데......
셔틀 트레인을 타고 탑승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지만 항공기는 무한 대기 상태였다. 자정을 조금 넘어서 출발해야 할 비행기는 새벽 3시를 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그나마 이런 폭설에 비행기가 뜰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대만 최초의 저가 항공사인 타이거 에어를 이용했는데 대만과 인천 구간에는 에어버스 A320 NEO를 투입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던 폭설을 생각하면 시간은 늦었지만 이렇게 비행기 뜰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약 두 시간을 날아온 비행기는 어느덧 대만 상공에 진입한다. 제주도보다는 길지만 태국이나 베트남 보다는 아주 짧은 드라마 두 편 보면 끝나는 비행시간도 나름 매력이다.
섬나라 대만과 호랑이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의문점 속에 "아시아의 네 마리 용"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생각해 보았다. 서양인들은 용보다는 호랑이를 지칭해서 "아시아의 네 호랑이"라고 부르는 것에 항공사 이름이 지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아시아의 호랑이로 여전히 포효하고 싶은......
타오위안 공항에 내려서 처음 했던 일은 한국에서 준비한 미국 달러를 대만 달러로 환전하고 자유여행자들을 위한 럭키드로우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전자 바우처로 신청했지만 낙첨되고 숙박 바우처로 신청한 나는 당첨되어 이메일로 바우처를 받을 수 있었다. 다음 여행을 마누라와 다시 와야 한다는 족쇄가 다시 생겼다! ㅎㅎ
비행기가 늦게 도착한 덕분에 입국 심사는 초고속이었다. 그리고 버스 승강장으로 내려가 한국에서 미리 예매한 바우처로 공항버스 티켓을 받았는데 새벽 시간에 직원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꼭두새벽에 친절한 직원이 바우처로 왕복 티켓을 발급해 주었다. 공항 철도가 있기는 하지만 시간 제약이 없는 1819 국광버스는 나에게는 최고의 선택이다.
1819 공항버스는 럭키드로우와 함께 대만에 대한 재미있는 첫인상을 건네준 존재였다. 와이파이도 되고 핸드폰 충전도 되고 넓고 좋았다.
쾌청한 새벽하늘을 보이고 있는 타이베이 메인역에 도착하니 어제 거센 눈발을 헤치고 공항을 향하던 기억은 어느새인가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한국의 서울역처럼 다양한 철도 노선들이 통과하는 타이베이 메인역 지상을 보면 옛날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지하로 내려가면 길 표식만 아니면 이곳이 한국인지 대만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타이베이 메인역 지하에서는 "M7", "M8"처럼 영문과 숫자로 표시하는 출구를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대만에서 처음으로 현금 결제를 하면서 받은 영수증과 거스름 동전들이다. 영수증은 두 달에 한번 복권처럼 사용할 수 있으니 흥미롭고 동전은 1달러, 5달러, 10달러 동전이다. 50달러 동전까지 네 가지 종류이다. 대만은 1949년 화폐 개혁을 했다고 한다.
대만에서의 첫 끼니는 일본 규동 체인점인 스끼야에서 먹는 소고기 덮밥이었다. 예전 홍콩 여행에서 비싸지 않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덮밥집의 기억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덮밥집 주변에 있던 한국어 순두부찌개, 양념치킨 간판이 반가우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을 왜일까?
자의 반 타의 반 잠을 자지 못했지만 새벽에 도착한 우리는 소고기 덮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바로 편의점에서 산행에 필요한 도시락으로 삼각 김밥을 준비했다. 편의점 메뉴도 한국과 다를 것이 없었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며 뚜벅이들의 대만 여행의 필수 도구라고 할 수 있는 이지카드를 구매했다. 버스, 지하철, 기차 모두 카드 한 장으로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할 여행자라면 꼭 준비해야 할 아이템이다. 주변에 대만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있다면 이지카드를 받아서 사용하면 딱이다. 현금 100 대만 달러로 간편하게 발급받을 수 있다.
이지카드에 필요한 금액을 충전하면 이제 대만 여행 준비는 완료되었다. 구글 검색을 활용하면 대부분의 이동 경로를 위한 교통편과 금액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충전을 위한 예산 준비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타이베이 대종주 1코스 시작점으로 가려면 타이베이 메인역에서 레드 라인 단수이 방향의 지하철을 타면 된다. 차량이 일본산인 것을 제외하면 한국의 전철과 다를 것이 없었다.
지하철은 종점인 단수이역까지 바로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 1호선이 종점이 아니라 중간까지 가는 차가 있는 것처럼 중간에 한번 갈아타느라 헷갈리기는 했어도 목적지인 꽌두(關渡) 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때마침 출근 시간이라 꽌두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서 나름의 일터로 향했다.
전철역 주변에는 오래전 컴퓨터 마더보드를 주름잡던 아수스(ASUS) 본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왜 전철역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갔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컴퓨터와 친숙한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만나는 이름 아수스의 본사를 눈앞에서 보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그것도 엉뚱한 출구로 나간 덕택에......
지하도를 통해서 철길을 가로질러 원래의 길로 돌아왔다. 도심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의 초록색 신호등도 정겹다.
타이베이 대종주 1코스로 가는 길은 꽌두 초등학교 옆을 지나간다. 이곳은 타이베이시 베이터우구에 속한다. 지나는 길에 대만 주유소를 지나는데 경유(超級柴油)와 함께 세 가지의 휘발유를 팔고 있었다. 92, 95, 98 옥탄가가 다른 휘발유를 파는데 고급 휘발유, 일반 휘발유도 구분하지 않던 한국에서의 경험에 비하면 조금은 생소한 그림이다.
국립 타이베이 예술 대학 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시작한다.
터벅터벅 올라가는 길, 화려하지 않은 타이베이 대종주 시작점 표지를 만난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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