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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영 문화마을을 지나온 서해랑길은 우수영 5일 시장을 거쳐서 80여 미터의 망해산을 넘어간다. 산을 내려오면 서외마을 지나 해안길을 걸어 양정마을에 이른다.

 

목포에서 출발한 시외버스를 타고 우수영 터미널에서 하차한 우리는 지난 12월에 여정을 끝낸 충무사 앞에서 새해의 여정을 시작한다. 2023년 12월의 마지막 여행이었던 지난 여행은 그야말로 강추위와 폭설과 싸운 여행이었다. 여행을 출발하기 이전만 해도 일기 예보 상으로는 하루 정도만 흐린 날씨였는데, 실제로는 눈보라와 싸워야 했던 잊지 못할 여행이었다. 폭설로 진도 군내버스도 움직이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으니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몸은 힘들었지만 예상에 없던 일들이 이어진 만큼 추억들은 차곡차곡 쌓였다. 

 

지난 여행이 명량대첩비까지 오는 것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명량대첩비를 따라서 학동리에서 이곳 동외리로 옮겨온 충무사에서 시작한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은 아산 현충사, 통영 충렬사, 전라 좌수영이 있던 여수 충민사, 통제영이 있던 한산도 충무사와 제승당, 전라 우수영이 있던 이곳 해남의 충무사, 순천 충무사, 통영 착량묘를 비롯하여 전국에 20여 개에 이른다. 이순신과 같은 영웅은 다시 나올 수 없을까?

 

충무사 앞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문에 적힌 태국어는 얼마나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족한 농어촌 인력을 뒷받침하고 있는지 알게 해 준다. 2백만 명이 넘는 체류 외국인 중에서 태국은 중국, 베트남에 이어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머물고 있는 나라이다.

 

충무사를 떠난 길은 읍내로 들어간다. 우수영 마을은 문내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는 면소재지이다.

 

동네 맛집 벽면에 그려진 오리 가족 그림에 잠시 멈추어 서서 미소를 짓는다. 뒤뚱거리며 엄마를 쫓아가는 아기 오리의 모습도 재미있지만, 식당 메뉴 중에 오리탕이 있는 것도 재미있다. ㅎㅎ

 

길은 우수영 5일장을 관통하여 동영길 도로로 나간다. 우수영 5일장은 4, 9일이 장날인 오일장이다.

 

읍내를 빠져나온 길은 도로를 따라서 망해산을 향해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망해산으로 가는 길, 이곳 들판의 대파들이 지난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무사하다. 아무리 강추위가 몰아쳐도 이곳이 위쪽 지방과는 다르게 따뜻하긴 한가 보다, 진도와 가까운 이곳의 대파밭도 생기가 가득하다.

 

망해산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는 해남 전라 우수영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정유재란 당시 명량대첩의 배후 기지로 유명하지만, 전라 우수영의 역사는 고려 우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계 대상은 물론 왜구였다. 처음에는 군산 선유도 부근에 있었고, 함평 대굴포와 목포를 거쳐 해남으로 이전한 것은 세종 당시였다고 한다.

 

오르막을 오르는 길, 남쪽으로 멀리 진도대교와 진도타워가 시야에 들어온다. 지난 여행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 길은 조선수군재건로와 일부를 함께한다. 지리산 둘레길에서도, 남파랑길에서도 만났던 길로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로 임명된 후 구례, 곡성, 순천, 보성, 장흥, 해남, 진도 등으로 이동하며 병사와 무기, 군량을 모았던 길이다. 왕과 조정 대신들의 모함과 고문, 백의종군을 겪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은 모두 상한 상태였고, 조선 수군 또한 완전히 궤멸된 환경에서 그 누구라도 다시 이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인데 장군은 진심을 다해 이 길을 걸었고 그 결과가 명량대첩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술상과 책상머리에 앉아서 자신의 영달만을 마음에 채우는 정치인 들이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을 생각하게 된다. 눈앞의 내 이익보다 진심을 다하는 것을 생각한다.

 

망해산 정상의 망해루에서 잠시 쉬어간다. 연초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지만 낮은 산의 오르막 길조차도 몸에 열을 만든다.

 

낮은 산이니 망해루라는 정자의 이름만큼 나무 사이로 바다는 볼 수 있지만 전망이 좋지는 않다. 대신 시 한 편 읽고 산을 내려간다.

거기 거기 섬 아저씨
어디 어디 계세요
왜 거기에 계세요
이리 오세요
아저씨는 거기에 하나도 안 외로우세요
언제 때부터 거기에 앉아서 
세상 물정 구경하고 있어요?
이제 나오셔서 우리와 같이 놀아요
아저씨는 아직도 우리와 안 노셨잖아요
같이 같이 놀아요

 

우수영 초등학교 이정제 학생의 작품 "외로운 섬 아저씨"라는 시인데 초등학생의 작품 치고는 왠지 깊이가 있고 연민과 동심이 동시에 느껴지는 시이다. 아이들이 더 이상 살지 않는 우리 농어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기도 한다.

 

전라 우수영의 토성 흔적을 따라 산을 내려간다. 산 아래로 우수영 앞바다와 양도 섬을 보면서 길을 내려간다.

 

산을 내려온 길은 서외마을을 돌아서 해변으로 나간다. 13코스 종점까지 13km가 남았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외마을의 골목길을 통해 마을을 빠져나간다.

 

드디어 푸른 바다를 다시 만난다. 진도와 해남 사이의 바다, 쾌청한 날씨에 하늘과 바다까지 온통 푸르다. 탁 트인 마음으로 발걸음 가볍게 해안길을 걷는다.

 

이제 진도 타워도 가물 거릴 정도로 거리가 멀어졌다. 진도를 뒤로하고 북서 방향으로 진행한다.

 

해파랑길의 동해, 남파랑길의 남해, 서해랑길의 해남과 진도를 걸어왔지만 이곳의 해안길은 지금까지 만나왔던 해안선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천천히 생각해 보면 다른 곳에도 갯벌과 섬, 바다가 있었지만 이곳에는 해안을 막고 있는 석축이 없는 차이가 아닌가 싶다. 비슷한 길을 걷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길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걷기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이다.

 

배추 수확이 끝난 밭은 버려지는 것이 너무 많다. 겉잎이 모두 떨어져 나간 대머리 배추는 보기에도 안쓰럽다. 도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춘 농산물 대량생산에는 역시 여러 문제점이 있기 마련이다. ㅠㅠ

 

길은 서상방조제를 지나 방조제 수문에서 좌회전하여 서상리를 지나 예락리로 넘어간다. 방조제가 만든 공간에는 태양광발전량 1위 지역답게 태양광 발전소가 자리 잡았다.

 

보리를 뿌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들판에서는 보리가 싹을 틔우고 있다. 1월에도 해남 들판은 생명의 기운이 넘친다.

 

우수영 마을 서상리를 지나 예락리로 들어온 길은 도로를 가로질러 양정마을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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