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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코스를 끝내면 바로 이어서 14코스를 이어서 걷는다. 학상마을로 들어오면서 해남군 문내면에서 화원면으로 넘어온 서해랑길은 해안으로 이어진 803번 지방도 우수영로를 따라서 초동마을을 거쳐 오시아노관광단지에 이른다.
13코스에 이어서 14코스 일부를 걷는 일정에서 들판에서는 날도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쉴만한 적당한 장소가 없었다. 결국 학상마을 마을 회관 옆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잠시 쉬어 간다. 화원면에서 만나는 첫 마을이다. 학상마을도 일제강점기 간척 사업의 결과로 만들어진 곳이다.
길은 골목길을 통해서 북쪽으로 마을을 빠져나간다.
이곳도 구릉지대는 대부분 대파 아니면 배추밭이고 평야 지대는 논으로 드문드문 보리를 심었다.
학상 마을을 빠져나온 길은 석호마을로 가는 길을 가로질러 서쪽 제방으로 향한다.
오전에는 쾌청하고 맑은 하늘이었는데 구름이 몰려올 때는 바람도 강해지고 추운 날씨가 더 서늘해진다. 우수영로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는 수확이 끝난 양배추 밭이 있었다. 제주도의 양배추 생산량이 압도적이고 강원도 평창과 충남 서산과 함께 인근에 있는 진도가 양배추의 주산지라서 그런지 이곳에서도 양배추 수확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배추도 그렇지만, 양배추도 수확 후에 밭에 남는 잔여물이 너무 많아 보인다. 소비자의 기호도 중요하지만 수확 현장부터 쓰레기가 많으니 안타깝다.
우수영로 도로로 나온 길은 오시아노관광단지까지 계속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다. 수확이 끝난 양배추밭 너머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봄동을 수확하느라 왁자지껄하다. 시끌시끌한 소리에 한국말은 한마디도 없다. 4계절 내내 우리의 농촌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배추를 늦게 심어 싸지 않고 두어도 봄동이 되기도 하지만 대량으로 생산하는 봄동은 결구가 잘 되지 않는 품종이라고 한다.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지만 이곳 봄동은 한창 출하 중이다.
해안선을 보면서 북쪽으로 계속 도로를 걷는다. 바로 앞으로는 작은 섬 우도가 살짝 보이고 멀리로는 신안군에 속한 섬들이다.
저녁으로 달려가고 있는 시간, 서쪽 하늘의 태양은 아직은 강렬함을 잃지 않고 있다. 한 여름 해안길을 걸을 때면 그늘이 없어 난감했지만, 한 겨울인 지금은 따스한 빛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굽이 굽이 길을 걷다가 그늘을 만나는 것이 꺼려진다.
해남해안도로 너머로 멀리 한창 건설 중인 오시아노리조트호텔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관광공사가 짓고 있는 4성급 호텔이라고 한다.
도로옆 민가에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백년초. 제주에서나 잘 크고 월동도 가능한 줄 알았는데 중부 지방에서도 노지 월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손바닥 선인장과 열매 모두 식용이 가능하다고 하니 키워보고 싶은 식물이다.
길은 초동마을을 지나 화봉마을로 가는 갈림길에서도 계속 직진한다. 두 마을 모두 화봉산 자락에 자리한 곳으로 화봉리에 속한 마을이다.
길은 국립수산과학원 해조류 연구소 앞을 지나서 오시아노관광단지 구역으로 들어선다. 관광단지 입구에는 건설을 시작하고 있는 공공하수처리장을 반대하는 동네 주민들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는데, 공공하수처리장이 없으면 호텔도 관광단지에 대한 민간 투자 유치도 막히는 모양이니 지자체 입장에서는 설치가 급하고 주민들 입장에서는 대부분 외지인들을 위한 시설이라고 생각하니 반대에 나선 모양이다.
이곳의 갈등은 제쳐두고 갯벌, 우도, 서해 바다, 오후의 태양이 어우러진 절경에 감탄이 나온다.
1991년 한국관광공사가 개발을 시작한 오시아노 관광단지에 들어서니 돌로 쌓은 벽과 인도와 도로, 모두가 새로운 세상이다. 그렇지만, 토지 매입과 기반 조성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30년간 사업이 지지부진하면서 예산 낭비와 실패 사례가 되어 애물단지 역할을 하다가 오시아노 리조트호텔이 완공을 앞두고 있고 하수처리장도 건설되면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고 한다. 걷다 보면 사람도 자동차도 거의 없는 이런 곳에 이렇게 비싼 조경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계속 품게 된다. 그나마 이제 서서히 활기를 찾는다고 하니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를 해본다.
이곳의 가로수는 제주 올레길에서 만났던 먼나무이다. 이 나무들이 키가 훌쩍 클 때까지는 이곳이 제주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벽으로 쌓은 돌도 가로수도 제주 분위기 맞다.
길을 걷다 보니 화원반도길이라는 이름의 자전거길 표식도 만난다. 사람도 자동차도 많지 않으니 자전거 타기에는 딱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시아노 관광단지 구간을 지나는 동안 넓은 주차장도 눈에 들어왔지만, 무엇보다 훌륭했던 것은 깨끗한 화장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해남은 땅끝 마을도 그렇고 터미널도 그렇고 어디를 가나 공공 화장실이 깨끗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캠핑족들의 열정은 이 추운 날씨도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우리가 도착할 즈음에 캠핑도구를 실은 한 차량이 우리 옆을 지나갔는데, 나중에 보니 모녀간으로 캠핑 열정에 가득한 엄마는 텐트를 치느라 여념이 없고, 그 옆에서 딸은 멀뚱하니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왠지 짠하면서도 미소가 지어지는 풍경이었다.
다양한 시설이 즐비한 오시아노 관광단지를 지나며 대체 이름이 무슨 뜻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해양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Oceano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해파랑길을 걸을 때 만난 부산 기장의 오시리아 관광단지는 지역의 오랑대와 시랑대를 본떠 만든 이름과는 차이가 있다. 부산은 도시 인근에 쇼핑몰과 테마파크도 들어서서 이곳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관광단지가 되었다.
관광단지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가 길을 이어가는데 가로수의 겨울나기 준비가 한창이었다. 한 팀은 나무 가치 치기를 담당하고 뒤따라 가는 분은 삼베로 만든 트리 랩으로 나무를 감싸주고 계셨다. 한참 일하고 계신 분에게 이렇게 따뜻한 남부 지방에서도 나무를 싸매 주어야 하나요? 하는 질문 했더니 바다의 염분이 찬바람과 함께 나무를 때리면 나무가 상처를 입는다고 한다. 가지치기한 부분에 검은 액체도 바르고 있었는데 상처보호 도포제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셨다. 걸으면 많은 것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30년 지지부진했어도 이렇게 잘 관리하고 있으면 오시아노관광단지도 빛을 볼 날이 있지 않을까 싶다.
뉘엿뉘엿 지고 있는 서산의 태양을 뒤로하고 관광단지 길을 계속 걸어간다. 이곳이 활성화되어 묵어갈 수 있는 숙소도 있고 편의점이나 식당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좋은 시설도 찾는 사람이 있어야 빛을 발하는 법, 캠핑장에서도 모두들 춥다고 텐트 속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이곳은 오로지 걷는 우리뿐이다. 그래도 깔끔한 화장실만큼은 칭찬할만하다. 사람이 없으면 폐쇄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그네 입장에서는 고마울 뿐이다. 외관으로는 화장실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건물이다. 시설들은 모두 잘 지어 놓았다.
단지 끝자락의 화단을 보면 조경을 호텔에서나 볼법한 수준으로 고급스럽게 해 놓았다. 이런 시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앞으로 잘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내가 학교장이라면 이 넓은 곳에 도시의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아이들을 풀어놓고 마음껏 뛰고 놀게 하는 축제를 벌이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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