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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를 거쳐서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한 우리는 하룻밤 휴식 후 코타키나발루 도심 걷기에 나선다. 도심에 위치한 숙소 덕분에 모두 여정이 걸어서 소화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시작은 코타키나발루 도시공원(Kota Kinabalu City Park)과 가야 일요시장(Tamu Gaya Street)이다. 이곳 사람들의 삶을 아주 밀착해서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사실 인천공항에서 코타키나발루까지는 저가 항공사를 이용해서 직항으로 갈 수 있다. 진에어, 제주항공, 티웨이항공을 이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가 터질 때 항공편 취소로 쌓여있던 여행 바우처를 사용하려니 에어아시아를 이용해서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서 코타키나발루로 들어간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떠나는 여행, 인천 공항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두 손 번쩍 들고 기계가 회전하며 보안 검사하는 정도가 바뀐 것 같았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항공편이라 밀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웬걸, 환전 예약한 은행 창구도 줄이 한참이고 보안 검사를 위한 입장 대기줄도 장난이 아니었다. 1 터미널 탑승동으로 이동하여 비행기에 탑승한다. 많은 분들이 말레이시아 현지인이었지만, 한국인 승객도 한둘이 아니었다. 리턴 티켓이 에어아시아가 아니어서 그랬을까? 탑승구에서는 우리의 신원 확인에 대해 리턴 티켓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처음 만났던 에어아시아를 다시 탈 줄은 상상을 못 했었다. 비록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이 있었지만, 갑자기 항공편을 취소해 버리고,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이 모든 것이 지난 3년 안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주마등처럼 그때의 상황들이 스쳐 지나간다.
새벽부터 서둘러 나오느라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던 옆지기를 달래주는 기내식이 나왔다. 저가항공이므로 물론 미리 주문해야 한다. 뒷좌석에서 항공사 뒷담화하던 젊은 친구들은 미리 기내식을 주문하지 않았는지, 승무원의 미리 주문한 고객에 드리는 것이라는 멘트에 풀이 죽었는지 조용하다. 산탄(Santan)은 이 항공사의 기내식 브랜드인데 기내식을 프랜차이즈에 공급하는 특이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사실 코타키나발루 현지식과 기내식 브랜드 중에 무엇을 선택할 거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산탄 브랜드를 선택하고 싶다. 산탄(Santan)은 사전적 의미로는 코코넛 밀크를 의미한다.
비행기가 쿠알라룸푸르로 내리는 순간 우리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것은 끝없이 펼쳐진 팜나무 숲이었다. 우리가 먹는 라면과 과자를 만드는데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팜유의 원천인 기름야자나무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팜유 생산량은 전 세계 40%에 육박한다고 한다. 팜유가 식물성 지방이니 안전하다, 포화 지방이 많으니 위험하다는 논란 이전에 팜유는 이미 우리의 삶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존재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비행기 환승을 대기하며 먹었던 나시르막과 국수 요리, 그릇이 바구니처럼 생겼지만 도자기 접시였다. 코코넛 밀크를 넣어서 지은 밥과 짭짤한 멸치와 땅콩, 계란, 치킨까지 나름 먹을만했다.
환승 비행기의 탑승구 인근에 있는 올드타운 커피 점문점에서 커피도 팔고 식사할 수 있는 나시르막도 팔고 있었다. 커피 브랜드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올드타운 화이트 커피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유명 브랜드인 모양이었다. 현지 대형마트에서도 해당 커피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커피 생산량은 소비량만큼이나 상당하다고 한다. 품종은 베트남에서 주로 재배하는 로부스타나 브라질의 아라비카가 아닌 리베리카라고 한다.
여러 번 해외여행을 다녀 보았지만, 출발 지연은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새벽에 한국으로 떠나는 저가항공 비행기들이 한국에서 늦게 출발한 까닭에 한두 시간 늦어지는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거의 4시간 지연이라니...... 쿠알라룸푸르에서 코타키나발루로 가는 비행기가 여러 편이라서 바로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는 정상 출발하고 있는데, 우리 비행기는 감감무소식이다. ㅠㅠ 결국 늦게나마 열린 탑승구는 거의 4시간 만에 우리를 코타키나발루로 데려다주었다. 입국장이 시끌벅적한 이유는 한국어로 유심칩을 사라는 직원들의 호객 행위 때문이었다. 30링깃에 유심을 구입하고 그랩을 깔아 숙소로 이동했다. 8링깃에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할 수 있었고 정해진 금액만 지불하면 되니 깔끔했다.
다음날 아침 코타키나발루의 도심을 가르는 툰라작(Jalan Tun Razak) 대로로 나와서 여정을 시작한다. 도로변에서의 첫 느낌은 두바이와 같이 찌는듯한 더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걸을만한 날씨였다. BTS의 대형 광고판에 미소를 지으며 길을 시작한다. 호주나 영국, 일본처럼 자동차의 운전대가 우측에 있고 자동차들이 좌측통행한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있으므로 차를 탈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이것을 감안해야 안전하다.
도로변 건물들에는 영어가, 도로 표지판에는 말레이어가 적혀 있어서 무엇이 영어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잘란(Jalan)은 도로라는 의미이고 구나칸 린타산(Gunakan Lintasan)은 파란색으로 붙어 있지만 무단횡단하지 말고 횡단보도를 이용하라는 경고판이다. 말레이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말레이어 계열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에서 3억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마인어라고도 부른다. 같은 언어이지만 브루나이에서는 문자로 아랍문자를 사용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로마 알파벳을 문자로 사용하고 있다.
대로변에 있는 코타키나발루 도시공원(Kota Kinabalu City Park)에 도착했다. 더운 나라의 공원인 만큼 독특한 생태를 보인다. 1년 내내 최고 31~32도, 최저 23~24도의 일정한 기후를 가진 곳이니 따지고 보면 겨울도, 봄도, 가을도 없고 여름만 있으니, 식물들은 대체 계절을 구분은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깔끔하게 정비된 공원을 가로지른다. 강렬한 햇빛이 쏟아질 때면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었다. 인근 국가 브루나이로 가는 버스 터미널도 공원 옆에 있다. 비행기를 타면 40분 정도 제셀톤 선착장에서 배를 탈 수도 있고 버스를 타면 7~8시간 걸린다고 한다.
2차 대전 당시 보르네오섬은 북서부는 영국령, 남동부는 네덜란드령인 상태에서 일본군에게 점령 당해 있었는데 호주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일본군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2천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 연합군이 승리했으나 이미 독일도 항복한 전쟁 말기라서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공원 끝자락에 호주군을 기리는 탑이 세워져 있었다. 호주는 한국 전쟁에도 1만 명이 넘는 병력을 파병하여 3백여 명의 희생자가 있었다.
공원을 빠져나가면 코타키나발루 시청 정문을 지나 가야 일요 시장으로 향한다.
사철 꽃을 피울 이곳의 꽃들은 꽃들조차도 여유로워 보인다, 우리나라의 봄꽃처럼 확 피웠다가 짧게 가는 꽃이 아니라 하나씩, 둘씩 피고 싶을 때 피는 것 아닌가 싶다. 하얀 재스민 꽃이 매력적이다.
울창한 잎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나무, 동남아의 열대우림은 바로 이런 것임을 제대로 보여 준다.
1963년 9월 16일 말레이시아 연방이 설립된 것을 기념하는 조형물과 한쌍의 학 조형물.
말레이시아 기념물을 지나면 린타산 디조카(Lintasan Deasoka)라는 광장 공원이 펼쳐진다. 시민들이 휴식하는 모습, 버스킹 하는 모습, 푸드 트럭 등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야 일요 시장은 크게 가야 거리(Jalan Gaya)와 가야 거리 서쪽의 아파트 사이의 골목, 두 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우리나라 5일장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아파트 사이의 골목에서는 농산물들이 많이 나와 있고 가야 거리는 그야말로 만물상이다. 가야 거리부터 둘러보고 이어서 아파트 사이의 시장도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은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야시장이 열리고 지금처럼 일요일 오전에는 시장이 열린다.
주전부리도 많지만, 옷가게, 공구상, 모종상까지 우리네 5일장과 다르지 않았다. 5일장이지만 지저분하지 않고 깔끔한 좋은 인상을 받았다.
스타 후르츠(Star Fruit)라고도 부르는 카람볼라를 비롯해서 콜롬비아 패션 후르츠, 두리안, 레드 두리안까지 열대 과일을 아이쇼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장은 종종 한국인으로 보이는 외국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현지인이었다. 구아버 묘목, 특히 씨 없는 구아버 묘목을 보니 이곳에 산다면 정원에 과실수 넉넉히 심어 두고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간다.
커피 소비국이자 생산국인 말레이시아 답게 5일장에서는 커피를 직접 갈아서 판매하는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예초기 엔진에 그라인더를 연결하여 끊임없이 원두를 갈아내고, 키피를 찾는 손님들도 끊이지 않는다.
동물을 파는 점포 앞에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이 모이는 것은 우리네 5일장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가야 거리의 점포들을 돌아 아파트 사이의 농산물 시장으로 가는 길, 아이스크림 푸드 트럭이 아이들과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아파트 사이의 골목에는 농산물들을 전문적으로 팔고 있었는데 입구에는 두리안만 전문적으로 파는 상인들이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열심히 두리안을 해체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1인당 두리안 수요가 단연 세계 1위로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전 세계 두리안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데 태국은 대부분 수출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내부 수요가 많다 보니 대부분 내수로 소비된다고 한다. 호텔의 엘리베이터에서도 냄새나는 과일을 가져오지 말라는 경고가 붙어 있는데 두리안 노점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보니 이곳 사람들의 두리안 사랑을 짐작할만하다.
토마토, 고추, 당근부터 쪽파까지 야채 시장에서도 이곳 사람들의 일상을 만날 수 있었다. 대형마트도 있고, 5일장과 상설 재래시장까지 동남아에서 한 달 살기 한다면 코타키나발루로 좋겠다 싶다. 실제로 이곳에서 한 달 살기 하는 한국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현지 주민들이 먹는 쌀, 1Kg에 2천 원이 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는 의외로 동남아 국가임에도 쌀 자급률이 70% 정도로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 쌀을 수입한다고 한다.
포장 과일도 지나쳤던 옆지기의 눈에 들어온 간식거리는 바나나 잎에 싼 나시르막과 치즈 햄버거였다. 입 짧은 필자와 달리 이것저것 잘 먹는 옆지기는 햄버거도 매콤한 나시르막도 금방 해치웠다. 문제는 수저도 젓가락도 없었다는 것인데, 맨손으로 먹는 현지인에 맞춘 음식을 아무 생각도 없이 덜컥 집어든 것이었다. 식당이라면 외국인이라며 수저를 내어 주었겠지만 공원 바닥에 앉자 먹고 있는 우리에게 그런 도움이 있을 리 만무했다. 입을 대고 먹자니 먹는 량보다 얼굴에 묻히는 량이 많아 보였다. 우리가 고안해 낸 방법은 바나나 잎 한쪽을 쭉 잘라 접어서 수저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름 매콤한 것이 간도 맞고 먹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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