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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2코스는 부산 영도 봉래산 자락 둘레길을 걷다가 중리 바닷가로 빠진다.

 

청학 마루 해돋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쪽 풍경은 앞쪽에 오륙도가 있기는 하지만 해돋이를 보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싶다. 이곳은 청학동에 속하는데 해운대 쪽에서 바라보면 푸른 숲이 학이 날아가는 형상이라고 청학동이라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조내기였다. 조엄이 일본에서 고구마를 가져와서 처음 재배한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해돋이 전망대에서 부산항 안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부산항 대교가 그 위엄을 뽐낸다.

 

길은 청봉 약수터를 지난다. 길 표지판에 새겨진 말 모양을 보면서 말을 키우던 영도를 생각해 보지만, 산을 가득 채운 집들과 이제는 집들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상상이 가질 않는다. 절영도라고 불렸고 목도라고도 불렸던 영도의 역사와 우리가 말을 대마도에서 키웠다는 역사는 왜 생경스럽게 만나야 하는지 안타깝다. 

 

해돋이 전망대와 청봉 약수터를 지난 남파랑길은 고도를 급격히 높이기 시작한다.

 

시민들이 많이 다니는 산책로이므로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는데, 남파랑길 표식을 따라서 길을 잘 찾아간다. 쇠막대기에 붙여 놓은 남파랑길 표식을 보면서 살짝 미소가 지어진다. 급격히 고도를 높인 길은 임도를 만나 길을 이어간다.

 

임도를 따라 반대편으로 가면 불로초 공원과 봉래산 정상으로 갈 수 있지만 남파랑길은 고신대 방면으로 내려간다. 불로초 공원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방문했던 곳 중의 하나가 봉래산이라는 설화에 따라 조성된 공원으로 해운대까지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거친 숨으로 올라왔던 길은 이제 임도를 따라 가볍게 내려간다. 임도 주위로는 다양한 식물을 심어 놓아서 내려가며 식물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노란 꽃을 달고 있는 털머위, 갯머위라고도 한다. 갈색 솜털과 잎 모양 때문에 털머위라 이름이 붙은 모양인데 꽃 모양이 곰취와 같다고 해서 붙은 또 다른 이름은 말곰취다. 식용으로 먹는 머위와 달리 독성이 있다고 한다. 반그늘에서도 잘 크니 큰 나무 아래에서 풍성하게 키울 수 있으니 잘 심었다 싶다. 늦가을까지 노란 꽃을 볼 수 있으니 참 좋다. 국화과의 여러 해 살이 풀이다.

 

길 다른 쪽으로는 산수국이 빼곡하다. 꽃이 한창일 때 만났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길 양쪽의 풍성한 생명력 만으로도 걷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포장 임도를 거의 다 내려오면 울창한 편백숲을 만난다. 조내기 고구마 역사 공원 인근이다. 조엄이 영조 당시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대마도에서 고구마 재배법을 익혀 영도에서 처음 재배한 것을 기념하는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 기념관이 길을 조금 더 내려가면 있다. 어르신들이 고구마를 감자라고 해서 왜 고구마를 감자라고 부르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고구마를 감자가 아니라 감저(甘藷)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야 그분들도 감자가 아니라 감저라 한 것이구나 하며 이해가 갔다.

 

감자와 고구마의 이름 변천사를 보니 나름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고구마를 들여온 조엄은 감저로 지칭했는데 이름 그대로 해석하면 "달콤한 마" 정도이다.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고구마 이후인 것이 감자를 처음에는 감저에 빗대서 북저라고 불렀다고 한다. 북쪽에서 전해진 감저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북저는 그냥 감자로 부르게 되었고 원래의 감저는 남감저, 남저라 부르다가 대마도에서 부르던 방식처럼 바뀐 것이라고 한다. 대마도 사람들은 고구마를 효자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키운 것이라 해서 효자마(孝子麻)라 했는데 이것을 일본식 발음으로 하면 '고오시마'이고 이 발음을 한자로 쓰면 고귀위마(高貴爲麻)라는 이야기다. 고귀위마는 조엄의 해사일기에 있는 내용으로 결국 고귀위마가 고구마로 변해서 우리가 쓰고 있는 것이다.

 

남파랑길은 고구마 역사 기념관으로 가지는 않고 그전에 우측 산길로 진입하여 길을 이어간다.

 

고신대로 향하는 길에 있는 산불감시 초소 옆에 코스모스가 산들산들 가을 춤을 추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을 하면 코스모스 아닌가? 글을 쓰는 지금은 한 겨울을 향해서 가고 있지만 코스모스를 보니 여전히 가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난다.

 

숲 속 산책로를 따라 길은 계속 이어진다. 

 

가끔씩 만나는 새롭게 깐 야자 매트, 말의 형상을 색상별로 배치한 깔끔한 길 표지, 튼튼하게 세워놓은 낙석 방지 울타리를 보면 지방 자치 단체에서 정성을 쏟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아파트 단지 근처의 숲 속 산책로가 깔끔하다는 것은 전국 어디서나  마찬가지임을 이곳에서도 확인하는 사실이기는 하다. 아파트 단지가 산자락  바로 아래까지 밀고 들어오면 산은 숲 속으로 산책로도 내어주어야 하니 산 입장에서는 불만이겠지만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 산책로가 생기니 아파트 단지를 마냥 싫어할 이유도 없다.

 

고신 대학교 뒤편을 지나면 BMC 와치 공원으로 내려간다. 봉래산 둘레길은 산 건너편의 함지골 청소년 수련관으로도 이어지지만 남파랑길은 이제 봉래산 둘레길을 내려간다.

 

하산길은 늘 발걸음이 가볍다. 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가파른 오르막이 아니어도 올라간다 싶은 길이면 어느새인가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며 오르막이구나! 하는 것을 몸이 증명한다. 그러하니 내리막길은 항상 반갑다.

 

BMC 와치 공원을 나오면 바로 정면에서 와치 종합 사회 복지관을 만난다. BMC는 부산 도시 공사를 의미하고 복지관은 BMC에서 1990년대에 세운 기관이다. 와치가 무슨 의미일까 호기심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복지와 연관해서 취약 계층을 살핀다는 워치(Watch)를 떠올렸지만 기관의 영문 이름에는 워치(Watch)는 등장하지 않는다. 한글 이름 그대로 와치(Wachi)로 기술하고 있다. 이것저것 살펴보니 바로 이 지역 바로 앞에 있는 섬 이름과 연관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은 해양대학교 캠퍼스가 있고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조도(朝島)의 또 다른 이름이 아치섬, 까치섬, 곶이섬, 와치도(臥幟島)였다. 영도 앞에 있는 딸린 작은 섬이다. 그래서 기관의 한자 이름도 와치도의 와치(臥幟)로 적고 있다. 와치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조도 아치산에 깃발을 꽂아 놓았었는데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그 깃발을 눕혔다는 의미이다.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스며있는 복지관을 지나면 영도 도서관과 영도 문화 예술 회관 옆을 따라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른다. 봉래산 둘레길에 진입하며 만났던 달동네 분위기와는 완전히 딴판인 영도구 동삼동이다.

 

계속 직진하면 건물 벽에 영도구 놀이 마루(NORYMARU)라고 적힌 곳을 지나는데 건물을 보면 무슨 초등학교가 아닐까? 싶었는데 영도구 평생 학습관을 포함한 시민 문화 회관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섬으로만 구성된 영도구는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인구가 20만 명이 넘었었다고 한다. 지금은 12만 명 정도라고 한다. 폐교한 동삼중학교를 활용해서 2020년 개관한 주민들을 위한 문화, 예술, 체육 체험 공간이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함지골 수련원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중리 바닷가로 내려간다. 직진하면 태종대인데 한 번은 가고 싶었던 장소라서 택시라도 타고 다녀올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 앞을 지나가던 주민께 여쭈어보니 입장료는 없지만 택시타고 휙 지나올 수도 없고 순환 열차를 타거나 일주도로를 걸어야 하는데 시간상 무리였다. 신라 태종 무열왕이 궁인들과 훈련했던 장소라고 태종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오늘 점심은 중리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제주 와홍 돼지에서 제육볶음과 김치찌개 정식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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