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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 교회와 금성 고등학교 앞을 지난 남파랑길 1코스는 오르막 골목길을 통과해서 증산 공원을 넘는다. 공원을 지나면 성북 시장을 관통하는 흥미로운 웹이바구길을 지나서 성북 고개에 도착한다. 성북 고개를 지나면 바로 산길로 들어서는데 이곳에서 갈맷길과 분리되어 산길로 가는 남파랑길을 놓쳐버려서 망양로 도로를 따라가는 갈맷길을 걷다가 수정산 가족 체육공원에서 남파랑길과 합류했다.

 

부산진 교회를 지나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올랐던 남파랑길은 금성고등학교 앞에서 우회전하여 증산 공원을 향해 걷는다.

 

증산 공원 가는 길에는 안용복 도일선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안용복 장군이 일본으로 갈 때 탔던 배를 복원한 것인데, 조선 숙종 때 두 차례에 걸쳐 포항에서 출발하여 독도를 거쳐 일본 시마네 현까지 가서 독도와 울릉도가 우리 땅임을 선언하고 침범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은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부산 동구가 장군이 태어난 곳이라 한다.

 

부산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나는 계단 골목길을 오른다. 수많은 세월과 사연을 품은 계단길이 언젠가 재개발로 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숨을 헐떡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시간은 옛 정취와 추억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1954년 부산의 대동문 교회에서 처음 독전왕 안용복이라 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비에서 노 젓는 수군에 그쳤던 안용복을 울릉도와 독도를 위해 홀로 싸운 장군이라 이름 붙이며 기렸다는 것이다. 신라 이사부 이래로 우리나라 땅이었던 울릉도와 독도가 왜의 집적대는 대상이 된 것은 조선의 정치적 태도도 일부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에서는 세금과 군역을 피해 울릉도와 독도로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민간인이 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몇 년에 한 번씩 관리들을 보내서 살피는 것에 그쳤다고 한다. 일개 수병 한 사람의 신분으로 조각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확인하는 문서를 받아 왔다고 하니 장군으로 기릴만하다.

 

"남요인후 서문쇄약"이라는 문구는 부산진성 서문에 새겨졌던 문구로 "남쪽 변방에 목구멍 같은 경계이며,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이 중요한 곳이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부산진성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로 새긴 문구이다. 

 

골목 계단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동네 아이들과 놀던 놀이터였을 것이고, 아침저녁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길, 퇴근길을 함께 했던 길이었을 것이다. 한때는 시커먼 연탄을 등짐에 메고 분주했을 공간이고, 따스한 가로등 아래 연인들이 가위바위보로 헤어지기 싫은 마음을 달래던 공간일 수도 있다. 힘은 들지만 사람들의 사연 위를 걷는 느낌이다.

 

마을 끝 공원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는 국화 축제에 사용할 꽃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가을은 국화의 계절 아닌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하는 명작을 입술에 오물거리게 하는 계절이다.

 

산 위의 자리한 족구장을 돌아가면 증산 공원 전망대에 이른다.

 

의외로 증산이란 지명을 가진 곳이 전국에 여러 곳이 있는데 모두 산 모양이 시루를 닮았다 해서 시루 증(甑)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증산 왜성을 쌓기도 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증산을 깎아서 부산진성 앞바다를 매립하기도 했다고 한다.

 

증산 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부산항 방면으로 멀리 영도의 풍경도 들어온다. 그렇지만 스카이 라인에서 대부분은 고층 아파트가 주인공이다. 홍콩의 풍경인가? 하는 느낌이 든다.

 

전망대를 내려오면 공원을 돌아 범일동 방면으로 공원을 빠져나간다.

 

증산과 수정산 사이에 빼곡히 자리한 범일동의 주택들이다. 재개발의 파고가 어디까지 밀려들지 모르겠지만 아파트 숲보다는 나은 풍경이 아닌가 싶다.

 

증산 공원을 내려가는 길, 타일에 그려진 동시 한편이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윤석중 시인의 "넉넘반"이다. 삽화는 이영경 작가의 그림이다. 빙그레 미소 짓게 하는 작품이었다.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 가려면 서울 이태원에서 용산 한강로까지 걸어가야 했다. 부지런히 걸어야 했던 길이지만 상점 앞에 진열해놓은 수많은 상품들은 어린아이의 시선과 발걸음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그저 잠깐 바라보자는 생각은 늘 지각으로 이어졌고, 결국 성적표에는 수많은 지각 숫자가 적히곤 했다. 해가 꼴딱 져서 돌아온 아이의 모습에서 그 시절 나를 발견한다. 

 

재미있는 삽화가 있는 동시 한편이 시작이었을까? 남파랑길은 와! 하는 탄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웹툰 이바구길로 이어진다.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 그리기를 취미로 삼는 아이 둘을 키웠으니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다.

 

성북 전통 시장을 가로지르는 웹툰 이바구길을 걷노라면 현실 속에서 현재도 장사하고 있는 다양한 상점과 만화 속 캐릭터들이 오버랩되며 독특한 감정이 교차한다. 상점의 특성에 맞게 그려 놓은 만화에는 한바탕 웃음도 짓는다.

 

"이바구"는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로 부산 동구에는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여러 길을 조성해 놓았는데 이곳 웹툰 이바구길을 포함하여 초량 이바구길, 부산포 개항가도, 범일 이중섭 거리, 한일 교류의 길, 호랭이 어슬렁길이 있다.

 

포토존에서 한컷을 남기며 아쉬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옆지기는 과일 가게에서 큼지막한 자두를 한 봉지 사 왔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과일 가게에서 발견한 자두가 너무나 먹고 싶었나 보다. 상인께서 꿀 자두라고 속이 짙은 갈색인데 상한 것이 아니니 안심하고 먹으라고 하셨단다. 중간중간 쉴 때 자두는 훌륭한 간식이었다.

 

성북 시장을 빠져나와 성북 고개를 조금 내려오면 참기름 집이 하나 있는데 남파랑길은 원래 참기름집 다음 골목에서 바로 수정산으로 진입해야 하지만 우리는 갈맷길 표식과 나란히 함께 있는 남파랑길 표식을 보고는 계속 같이 가는 모양이다 하고는 그만 수정 초등학교 방향으로 계속 내려가고 말았다. 여기서부터는 갈맷길과 남파랑길이 갈라지는데 길을 놓친 것이다.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새인가 갈맷길 표식만 보이고 남파랑길 화살표와 리본은 흔적도 없었다. 지도 앱을 열어 확인하니 갈맷길과 남파랑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이미 한참을 지나온 상태였다. 오르막을 걸어 돌아가기에는 힘이 빠지는 일이고 수정 초등학교를 지나서 길 합류가 가능한 지점을 찾기로 했다.

 

수정산 체육공원을 지나는 남파랑길 경로를 확인하고 수정산 체육공원 버스 정류장을 지나 오르막 골목을 통해서 공원으로 향한다.

 

수정산 체육공원을 올라 산책길에서 남파랑길 표식을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도로를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온 즐거움도 있었지만 길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깔끔하게 마련된 산책길을 걸으니 그동안 도심을 걸으며 삭막했던 마음도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린다. 산책길 옆 숲에서는 마을의 길양이들이 주민들이 마련한 먹이를 먹으러 모이고 있었다.

 

남파랑길은 사람들의 거주 공간과 숲 경계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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