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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땅도 살고 나도 살고

야라바 2013. 1. 14. 16:22


2012년 우연히 한국감정원에서 주최하는 "2012 국토사랑 공모전" 참여하게 되었는데 우수상을 받게되었다. 상금은 크지 않았지만 심사하신 분의 심사평이 너무 큰 칭찬이어서 첫 수필에 상금보다 더 큰 격려가 되었다. 칭찬은 이렇게 하는구나! 칭찬이 이렇게 사람을 격려하는 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아래에 그 전문을 옮겨본다.


심사평 :






제목 : 땅도 살고 나도 살고


“하진아! 닭장 다녀왔니? 알은 몇 개나 나았어? 채소 찌꺼기하고 보리차 끓였던 것 가져다주었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주문처럼 아들놈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3년 전 이었던가, 어린이날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무슨 선물을 하면 좋을까 생각한 끝에 떠 올린 건 병아리다.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삐악삐악 거리며 올망졸망 새 주인을 기다리던 노란 병아리들, 한참이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병아리를 보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아뿔싸 학교 앞에서 백 원만 주어도 쉽게 살 수 있었던 병아리를 도통 구할 수가 없다. 포털 사이트 지도를 통해서 우선 회사 근처 닭집을 찾아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죄송한데, 혹시 병아리 파세요?” 생닭을 팔기도 아쉬운 분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벼랑 끝 풀포기 잡는 심정으로 “근처에 병아리를 살만한 곳 아세요?”하며 애 키우는 어른이 떼쟁이가 된 형국이다. 그렇게 전화 돌리기를 수어번 드디어 방법을 찾았는데 다름 아닌 국립 종축원이었다. 당시 회사 위치가 충남 성환이었는데 근처에 위치하고 있던 국립종축원은 나라에서 소나 닭의 종을 개량하고 보존하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병아리 덕분에 과학적 축산 관리의 한 면모를 보게된 기회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순탄치가 않았다. 1차 관문은 때마침 터진 구제역 파동이었다. 길목마다 소독대가 설치되어 한겨울에도 소독약을 뿌려대니 차 유리에는 얼어붙은 소독약으로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무튼 구제역 파동이 발생했고 그것이 국립종축원까지 몰아쳤으니 입구는 아예 봉쇄되어 일반인은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일단 종축원 전화번호를 어렵게 수소문하여 “죄송한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기적으로 병아리를 무상으로 나누어 주신다기에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나하고 전화 드렸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신데요?”전화를 넘겨 받은 담당자가 던진 질문이다. ‘우와, 받을 수 있나보다’ 내심 기쁜 마음으로 “암컷 5 마리, 수컷 5 마리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했다. 그렇지만, 그 다음 전화기로 들려온 이야기는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병아리를 무상으로 나누어 주긴 하는데요, 일반적으로 100마리, 200마리씩 수컷만 드리고 있습니다!”재래종 닭을 개량, 보존하면서 암컷을 남기고 수컷만 육계로 키울 사람에게 분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한데, 저희 집이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내려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제가 어린이날 선물로 아이들에게 병아리를 주었으면 하거든요, 어떻게 않될까요?”내 몸에 들어있는 떼쟁이는 또다시 설득의 집념을 보이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는 것인지, 이상한 사람의 전화에 당황했는지 잠시후 그분은 “그러시면, 제가 전화 드릴테니까 전화번호하고 성함을 알려주세요.”했다. 한달후, 구제역의 파고를 넘어 나라에서 키우던 재래종 병아리 11마리가 우리집에 들어왔고 알을 낳고 품어 병아리 나오고 또다시 커서 알을 낳고 한지 3년이 흐른 것이다.


  땅은 정직하다. 땅에 좋은 것을 주고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열매를 맺는다.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땅은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토대를 내어주고 식물은 땅이 내어준 토대 위에서 물과 태양의 도움아래 사람에게 좋은 것을 내어준다. 사람은 식물이 내어준 열매를 섭취하고 나머지는 닭과 개와 나눈다. 사람과 짐승의 배설물은 다른 유기물과 함께 땅으로 돌아가는 특별한 오염물의 배출이 없는 자연스런 순환이 가능하다. 매년 망종이 지날 무렵이면 마늘 수확, 양파 수확이 끝나고 모내기와 콩심기도 끝나가면서 시간이 조금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면 으레 하는 작업이 바로 닭장 바닥 정리하기다. 각종 포대 자루를 모으고 쇠스랑과 삽 한자루 그리고 마스크만 있으면 땅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 자원 캐기를 시작할 수 있다. 1년 동안 쌓인 닭장 바닥은 그야말로 천연 자원이다. 양파 껍질 같은 채소 찌꺼기, 과일 껍질, 보리차 끓이고 남은 것, 벼 도정후 남은 미강과 왕겨, 초록의 계절 집주변과 밭에 있던 잡초들을 주면 닭들은 열심히 먹고 남는 것들은 그들의 배설물과 함께 바닥에 쌓이면서 천천히 발효의 과정을 밟아간다. 흙 목욕 좋아하고 습성상 바닥을 계속 파내므로 자연스럽게 다양한 물질들이 고루 섞여 좋은 거름이 되는 것이다.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만 냄새는 구수하니 좋은 편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포대에 담아 쌓아두면 별도의 비료를 구입할 필요 없이 늦가을에 겨울을 나는 마늘과 양파 밭의 좋은 밑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올봄 뒷집 할머니는 “뭘 주었길래 마늘이 이렇게 실한겨? 우리는 마늘이 가늘어!”하면서 부러워 하셨다. 돌아보면 화학 비료와 제초제는 쓰질 않으니 오로지 닭장 바닥을 청소해 담아둔 것 밖에는 차이가 없었다. 도시에 살 때는 과일 껍질, 보리차 끓인 찌꺼기 등을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느라 냄새에 코를 잡고, 이웃 간에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었는데, 사람도 좋고 닭도 좋아하고 땅도 좋아하니 얼쑤! 하는 신바람이 절로 나온다. 닭이 알을 날 때면 꽥꽥거리며 힘들어 하는데, 21일간 제대로 먹지도 않으면서 알을 품어 병아리를 나오게 하는 모습, 병아리를 먹이려고 애쓰는 모습 저녁이면 품에 넣어 재우는 모습까지 아이들에게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도 여러모로 깨달음과 성숙의 기회를 준다. 땅, 사람, 닭, 식물이 함께 살아가는 삶, 이것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 삶이라 다시금 마음에 새겨 본다.


  도시에 살다 농촌으로 내려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주식의 자급자족이다. 사는 곳이 예당평야의 한복판 합덕이다 보니 집을 나서면 보이는 것은 오로지 논뿐인데 아주 오래전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둑을 쌓고 저수지를 만들어 너른 들판에 물을 대어 농사를 지었던 곳이다. 집 앞 논을 깊이 파면 나오는 것은 뻘흙으로 지하수를 파도 염분이 많아 버섯 재배나 채소 재배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 분들은 오로지 논농사만 지을 뿐이다. 지금이야 트랙터로 농사를 짓지만, 합덕수리박물관을 가서 예전 사람들이 힘들게 둑을 쌓고 물을 대며 농사 짓던 것을 보면 땅과 함께 몸을 부비며 살았던 선인들의 위대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올해는 아이들과 함께 조그마한 우리집 논에 직접 손으로 모내기하고 낫질로 벼를 베고 족답 탈곡기로 탈곡한 첫해였다. 스스로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스스로의 노동으로 거두는 기쁨을 기대했는데 참으로 보람있고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늘, 양파, 밀, 보리 등 가을 농사가 끝난 요즘 아침에는 논은 밤새 내린 서리로 화장을 한 듯 새하얗다. 이런 서리가 낯익을 때 쯤이면 닭장 바닥을 청소하듯 화장실 청소에 나선다. 이전 주인께서 집 바깥에 재래식 화장실을 깨끗하게 만들어 두셨는데, 20리터 물통으로 남성의 소변은 따로 모으고, 화장실은 일을 본후 왕겨를 뿌리는 방식으로 악취를 줄이고 뽕당하며 튀기는 재래식 화장실의 불편함을 없앴다. 아이들은 보통 집안에서 수세식으로 일을 보기 때문에 1년에 한번 화장실 정리하면 자연스런 흐름이 된다. 서리가 낯익을 쯤에 모아두었던 소변과 화장실의 액비를 논에 심은 보리와 밀에게 뿌려준다. 만약 여름에 이렇게 한다면 냄새도 나고, 식물도 곧 죽어버리겠지만 서리 이후에는 문제가 되질 않고 냄새도 심하지 않다. 겨울을 난 보리와 밀은 봄이면 그 생명력을 뽐내며 쑥쑥자라 황글 물결을 이룬다. 보리와 밀을 수확하고 모내기를 한 다음에는 다시 밀, 보리 줄기를 잘라 논에 뿌려주어 벼와 논에 사는 수많은 생명체의 밑거름이 되게 한다. 물론 농사를 조금 지으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이런 자연스런 순환은 땅과 사람이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 확신한다. 땅과 사람이 좋아하면 동물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집 주변에서 뱀을 발견하면 깜짝 깜짝 놀라곤 하는데 주변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뱀도 제초제를 뿌리거나 농약을 친곳은 다니질 않는다고 한다. 올 가을 토란을 캔 땅에서는 지렁이가 수없이 나왔다. 아내는 아직도 지렁이를 징그러워 하지만 중딩 딸도 맨손으로 만지고 초딩 아들과 나는 지렁이를 보면 바로 닭에게 줄 맛있는 선물을 줄 생각에 기분이 좋다. 논과 밭에서 벼와 배추를 갉아 먹던 메뚜기를 잡아 닭에 주면 무섭게 해치우는 것이 천상 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생각 곁에 “메뚜기도 먹고, 닭도 먹고, 남은 것은 사람도 먹는구나”하는 태평한 생각이 든다. 땅은 사람의 마음을 넓게 만드는 모양이다. 철새들이 하늘을 수놓는 가을 올해도 땅은 풍성한 결실로 초보 농사꾼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다. 장마철 장대 같은 장맛비에도 쓸려가지 않고 한겨울 살을 에는 바람에도 불려가지 않고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는 땅이 고맙다. 볏짚이든 잡초든 위에 덮어만 주어도 포송포송 고슬고슬하니 스스로 살아나는 땅이 고맙고 위대하다.


  땅을 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미소 짓곤 한다.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는 땅이 아닌가 싶다. 요즘 시골은 50대가 젊은이에 속할 정도로 노인 위주의 가정이 많다보니 관행 영농이 더해져 제초제의 사용이 늘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잡초를 뽑아본 사람은 공감하지만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농민들을 힘들게 한다. 넓은 땅을 경작하는 농인 분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뙤약볕아래 잡초를 뽑는 일이란 생각만해도 아찔한 일이다. 그러니 봄만되면 풀이 무성해지기 전에 제초제를 뿌리시는 그분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만하다. 그분들의 사정이야 그렇지만 조금만 논 밭에 자급자족하는 수준의 우리에게 잡초는 하나의 자원이다. 닭에게 채소 찌꺼기와 기타 부산물을 먹이기는 하지만 사료 없이 키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닭을 먹이기 위해서 바다 건너 곡물을 수입해야하는 국가적 상황을 생각하면 초록의 계절, 풀이 있을 때 풀을 부지런히 잘라서 닭을 주는 것은 땅과 닭과 사람을 모두 위하는 방법이다. 풀은 논둑같이 비나 바람의 풍화로 쉽게 무너질수 있는 땅을 붙잡아 주고 땅속 양분을 끌어올려 타 작물을 살찌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닭은 곡물을 무지 좋아하지만 푸른 풀도 참 좋아한다. 닭의 먹이로 줄 풀이라 생각하고 나니 잡초도 자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땅은 사람의 시선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 정신 노동을 하는 사람은 육체를 움직임으로 참 휴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등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사람에게 참 휴식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갖고 싶다면 땅과 만나야 한다. 내손에 쥐어진 한 줌의 흙은 수천년에 걸쳐 산의 바위가 빗물에 풍화되었을 수도 있고 고목 나무가 벌레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생겼을 수도 있고 저멀리 사막에서 발생한 모래 태풍이 대기를 타고 흘러 왔을 수도 있다. 한줌의 흙과 함께 하면 땅도 살도 나도 살 수 있다. 아이들에 넌지시 물어본다. “도시로 다시 돌아가 살까?”그러면 절래 절래 고개를 흔들며 “안돼요!”한다. 아이들에게도 땅이 주는 평안, 깨달음, 기쁨이 있었으리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늘 그 자리에 있는 땅, 어머니의 품 같은 땅도 살고 나도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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