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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오랜 시간 남을 추억과 풍광들을 가슴에 안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숙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공항으로 나섭니다. 숙소(Hotel NH Geneva Airport)가 제네바 공항 바로 옆에 있고 무료 셔틀버스가 제공되다 보니 공항 이동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에티하드 항공은 온라인 체크인을 하면 인천 공항에서도 제네바 공항에서도 "Baggage Drop" 라인에서 빠르고 편리하게 짐을 붙이고 탑승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메일로 받은 온라인 탑승권을 제시하니 제네바-아부다비, 아부다비-인천 탑승권을 모두 주었습니다. 짐을 부칠 때 "Transfer" 태그를 붙이는 것만 확인하면 짐도 안전하게 한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지 제네바 공항은 한산합니다.
빠른 보안 검사와 출국 심사 덕택에 제네바에서 아부다비로 가는 탑승구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남아 있는 유로화로 커피도 마시고, 짧은 글도 쓰면서 여유를 즐겼습니다. 제네바 공항은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식이 독특했는데 키오스크에 가서 자신의 탑승권을 스캔하여 인터넷 접속을 위한 코드를 발급받아 기기에 입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공항 이용객을 위한 합리적인 방식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제네바-아부다비 구간은 B787-9기를 운용하고 있었는데 아부다비에서 제네바로 올 때도 그랬지만 비행기에는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3인 좌석을 두 명이서 여유롭게 앉고 누워서 갈 수 있었습니다.
스위스의 론 빙하에서 발원하여 제네바의 레만호를 거쳐서 프랑스 리옹를 지나 지중해로 흘러가는 론강(Rhône)을 보니 TMB 걷기 내내 계곡을 흐르던 파스텔톤의 빙하수가 떠오릅니다.
비행기가 고도를 조금 높이니 저 멀리 흰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고봉들과 지상의 들판이 마치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경계가 나누어집니다.
산과 산사이 계곡에 자리한 도시들이 까마득해집니다.
뾰족뾰족한 침봉들 위로 흘러가는 흰구름도 한 폭의 그림입니다.
한 여름으로 달리고 있는 7월 하순 초록빛으로 옷을 갈아입은 산들과 여전히 흰 눈을 벗을 생각이 없는 고봉들이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밤 비행기를 타다가 한낮의 비행기를 타니 이런 호사도 누립니다.
어디가 몽블랑인가? 둘러보지만 하늘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익숙지 않으니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아름답다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로상 몽블랑 자락은 맞습니다.
몽블랑이여 굿바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수 모양으로 찾아보니 프랑스 안시 근처의 호즐렁 호수(Lac de Roselend)였습니다. 북쪽으로 호수에 닿아 있는 산을 넘으면 TMB 걷기 2일 차 숙소였던 본옴므 산장(Refuge de La Croix du Bonhomme, 2,477m)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눈이 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민둥산 침봉들도 아래에서부터 위로 조금씩 초록옷으로 갈아입고 있습니다. TMB 걷기를 통해 지나왔던 저런 산들을 보면 온통 자갈과 돌 뿐이었는데 그런 곳에서도 생명이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면 자연은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TMB 걷기가 동쪽의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시작하여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거쳐 서쪽의 프랑스에 이르는 알프스 산맥 중에 서쪽 일부를 걷는 것이지만 알프스도 이제 안녕입니다. 굿바이!
아부다비-제네바 구간에서는 1회, 아부다비-인천 구간에서는 2회 만나는 에티하드의 기내식은 나름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대낮에 운행하는 아부다비-제네바 구간은 빈자리가 있는 비행기에서 여유 있는 공간으로 여행하다 보니 영화도 보고 즐기는 비행이었습니다.
반면, 아부다비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 편에서는 열정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아랍 청년 덕분에 잠도 못 자고 고문 아닌 고문을 당했습니다. 비행기를 환승하면서 면세점에 있는 약국에서 콧물약을 구입해서 먹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앉은 아랍 청년은 스마트폰 앱을 보여 주며 이 발음 저 발음이 맞냐에서부터 시작하여 언어 간 특성까지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인천-아부다비 간에는 2층 객실로 운항하는 A380 대형 비행기를 투입하고 있었는데도 빈자리 없이 꽉꽉 채워서 갔습니다.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공학 교수를 하고 있다는 그와는 아랍어의 기원부터, 한국말의 존댓말, 컴퓨팅 언어까지 다양한 분야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대화를 멈춘 것은 기내식 시간이었습니다. 식사 후에 자연스레 취침에 들었고 한국에 거의 도착할 무렵 기내식 이후 저와 뭔가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냥 모른 체 한 것이 마음 한 구석 미안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태원으로 간다는 그가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는데 제가 해가 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검게 탄 얼굴은 엉망이고, 수염은 덥스룩하게 자랐고 손등과 무릎에는 눈 비탈에서 구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지만 안전하게 한국 땅을 밟았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도 맛보았고, 남은 생애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을 위기도 넘긴 여행. 다시 간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걸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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