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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진입한 백의종군길 11코스는 전주부터 함께해 온 17번 국도 춘향로의 남쪽 끝자락을 함께 걷다가 대율교차로에서 국도를 벗어나 뒷밤재 고개를 넘어가는 밤티재길을 걷는다. 국도는 춘향터널을 통해서 산 아래를 관통해서 내려가고 우리는 산 위의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다. 고개를 넘으며 남원시 광치동으로 진입하여 옛 서남대학교 자리를 지나면서 다시 춘향로 도로와 만나서 시내로 들어간다. 춘향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서부로 국도와 대구광주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며 남원시 용정동 시내를 가로지르고 만인로를 따라 작은 고개를 넘어가면 향교동에 진입하며 남원 충렬사와 남원 향교 앞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17번 국도 춘향로의 옛 국도 자리를 따라가는 길은 남원시의 관광 자원 중에 하나인 버선밭을 지난다. 춘향과 몽룡의 이별 장소라 할 수 있는 곳으로 춘향이 몽룡을 쫓아가다가 버선이 벗겨져 밭이 되었다는 장소이다. 지형도 버선 모양이라고 한다. 옛 국도 자리도 어느덧 끝나가고 오리정 교차로에서 다시 춘향로 국도와 만난다.


오리정 교차로에 붙은 백의종군길 안내에는 다음 이정표로 뒷밤재 고개가 2.6Km 남았다고 한다. 길건너로 한국 전쟁 이후 세웠다는 남원 오리정이 보인다. 춘향과 몽룡이 이별의 정을 나누었다는 장소이다. 사실 춘향전을 바탕으로 여러 관광자원들이 존재하지만 춘향전은 엄연히 허구인 소설이다. 이몽룡이 아버지가 남원 부사였고 본인이 암행어사로 활동한 성이성을 모델로 했다는 역사적 배경이 존재할 뿐이다.


오리정 휴게소에서 편의점식으로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다시 춘향로 국도를 따라서 길을 나선다. 국도변이지만 인도가 마련되어 잇는 경로라서 걷기에 무리가 없는 길이었다. 아마도 백의종군길을 배려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국도를 따라가던 길은 대율교차로에서 국도를 벗어나 뒷밤재 고개로 향한다.


뒷밤재 고개로 향하는 길에서 색 바래고 망가진 백의종군길 리본을 만났는데 그래도 반갑다. 백의종군길 종점까지 우리와 함께할 실체를 가진 존재는 리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해파랑길이나 서해랑길처럼 리본이 잘 관리되면 좋겠지만 아쉬워도 가끔씩 가지는 만남의 순간이 좋다. 길은 아마도 옛 국도 자리였는지 상당히 넓은데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밤티재길로 들어선다. 이렇게 춘향로 국도 인근으로 옛 국도 자리들이 있는 이유는 17번 국도 춘향로가 개설된 이후에 급커브나 도로의 선형이 좋지 않아서 사고가 많아 죽음의 도로로 불린 것이 계기라고 한다. 화물차를 비롯한 차가 많은 곳에 사고가 잦으니 도로 설계를 다시 해서 2천 년대 이후로는 상황이 좋아졌다고 한다.


백의종군길 표식과 함께 오르는 밤티재길은 3Km가량 이어지는 배롱나무꽃길이기도 하다. 수령이 상당한 배롱나무 숲 사이를 걷는 느낌이다. 무더위 가운데 걷는 약간의 어려움은 있지만 대표적인 여름꽃인 백일홍과 함께하는 환상적인 길이다.


배롱나무가 얼마나 많고 울창한지 비에 떨어진 백일홍 꽃잎을 밟으며 걷는 길이다. 어디에서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환상적이다.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으니 더욱 걷기에 좋다.


전국 곳곳에 배롱나무 가로수를 심은 길이 적지 않지만 이곳만 한 길이 또 있을까 싶다. 1988년 춘향터널과 함께 춘향로 국도가 개설되기 전에는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려면 이 고갯길을 넘어가야 했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2차선 도로 옆에서 수줍게 꽃을 피웠을 배롱나무는 이제는 길의 주인이 되어서 새로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배롱나무의 수명이 최소 2백 년 이상된다고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의 여름은 장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백일홍은 감상하며 걷다 보니 내가 지금 오르막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잊을 정도이다.


고갯마루 부근으로는 뒷밤재 솔바람길이라는 이름의 트레킹 코스도 만들어 놓았다. 대율교차로 부근에서 시작하여 이곳을 거쳐 옛 서남대 자리 부근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뒷밤재 고개를 넘어선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을 통해 가벼운 발걸음을 이어간다. 지역도 남원시 광치동으로 넘어왔다. 오락가락하던 비도 그치고 습기 가득한 무더위가 숲 속 날벌레와 함께 우리를 괴롭힌다. 요양원을 지나면 가끔씩 자동차들이 지나가므로 주의해야 한다.


길이 옛 서남대 캠퍼스 인근에 도착하니 느티나무 터널 숲이 탄성을 지르게 한다. 역시 후대를 위해서는 나무를 심는 것이 최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느티나무 터널 숲을 지나면서 캠퍼스의 울타리를 살펴보니 JBNU라는 로고가 있었다.


길은 캠퍼스 정문 앞을 지나서 다시 춘향로로 합류한다. 2018년 사학비리로 폐지한 서남대부지에 대해서 남원시와 전북대학교가 부지를 교환을 통해서 이곳을 전북대 글로컬 캠퍼스로 만들어서 2027년에 개교할 계획이라고 한다. 외국인 유학생을 대거 모집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외국인 유학생이 3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상상 이상의 세계인 것이다. 국내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수가 30만 명이라고 하니 외국인 유학생의 규모가 상당해 보인다.


광치동에서 터널을 빠져나온 춘향로를 다시 만났는데 이곳의 가로수는 마로니에라고도 부르는 칠엽수였다.


봄에 꽃을 피운 칠엽수는 지금은 꽃이 지고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다. 칠엽수 열매를 보니 여름이 한창이지만 분명 가을은 올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된다. 칠엽수 열매는 밤처럼 생기기는 했지만 독성이 있어서 식용할 수 없고, 의약품이나 화장품 원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춘향로가 17번 국도로 내려왔다면 춘향터널을 지난 다음에는 17번 국도는 춘향로 대신 서부로로 갈아탄다. 길은 춘향로 도로를 따라서 서부로 아래를 통과하여 지나간다. 남원시 서부로 내려가는 도로라서 서부로라는 이름을 붙였던 모양인데 지금은 황진장군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황진 장군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황진"이라는 말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남원에서 태어난 황진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호남 남하를 막은 웅치전투, 이치전투를 치른 다음에 제2차 진주성 전투를 벌이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춘향로를 따라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서 헛웃음이 나오는 장면을 만났다. 간선도로 옆에 인도가 있는 것은 좋지만 사람이 너무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블록 사이에 싸리나무가 뿌리를 내려서 자리를 잡았다. ㅠㅠ


춘향로를 걸으며 남원시 광치동에서 용정동으로 들어온 길은 한국 폴리텍 대학 인재원 앞을 지나고 광주대구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한다. 길가에는 신주유천하라는 이름의 배달 주유 사업을 하는 이비티에스협동조합이 있었는데 고수익을 약속하며 출자금을 끌어들이는 금융다단계 의혹이 있다고 한다. 필자도 지상파 TV 광고에서 본 적이 있는데 고령층과 은퇴자를 대상으로 말썽이 있다고 하니 주의해야 할 듯 보인다.

전주부터 함께 했던 춘향로 도로와는 이제 안녕이고 길은 만인의총이 있는 만인로를 따라 시내로 들어간다. 춘향로는 직진하여 남원 시내를 가로질러 남원 시내를 동서로 흐르는 요천 앞에서 끝난다.


만인로 우회전하는 길에서는 계란꽃이라고도 부르는 개망초가 아무도 가꾸지 않는 정원에서 이름 없이 길을 밝히고 있다.


만인로 도로 초입으로는 도로 좌측으로 광치천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쾌적하게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빨간 백의종군길 리본을 만난다.


만인로 따라 이어지는 데크길을 걸으며 좌측으로 광치천 생태공원을 감상하지만 2013년만 해도 상류의 축사와 농경지 때문에 악취가 풍기던 곳이라고 한다. 시민들이 살기 좋은 곳이 관광객에게도 매력 있는 도시라는 것은 불문율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운 광치천 생태공원을 보며 이곳이 주민들이 악취로 고생하던 곳이었나? 하는 질문이 던져질 정도이다. 돈을 잘 썼다. 하는 말을 해주고 싶다.


공원으로 조성된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남원 아트센터와 함께 남원 시내의 그림이 우리를 맞아준다. 여정의 끝이 보인다. 남원시 향교동으로 들어왔다.

남원 아트 센터는 남원 KBS방송국 자리였는데 남원시가 매입하여 문화 공간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군산 KBS와 남원 KBS가 있었으나 전주로 통합되었다.


남원 시내를 바라보면서 내려가는 길에서는 남원 충렬사를 지난다. 광해군 당시에 창건한 사당으로 정유재란 당시의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바로 옆에 만인 의총이 있는데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한 조선군, 남원성 주민, 명나라 군인들의 시신을 합장한 무덤인데 1만 명이 넘는 전사자 중에 압도적인 숫자는 역시 주민들이었다.


남원 향교는 길에서는 지붕만 보일뿐 안으로 조금 들어가야 한다. 길 좌측 작은 언덕 위에 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산림녹화탑이라고 한다. 어릴 적 봄이면 휴일이기도 했고 중요 행사 중에 하나가 식목일이었는데 그때가 떠오른다. 저 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인 백세청청(白世靑靑)이 새겨 있다고 한다. 통상 국토의 70%가 산지라고 하는 대한민국에서 목재 자립률은 20%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니 좋은 산림을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활용도를 높이는 제도와 인식 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만인로를 따라가는 남원 향교 앞에서 여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 아침 오수면을 떠날 때만 해도 비가 주룩 주록 내렸는데 남원 시내는 비가 내린 흔적이 없다. 장맛비를 맞을 각오로 출발한 여행이었지만 결국 비를 거의 맞지 않고 여행을 마무리하게 된다. 여행길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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