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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과 전주시를 거쳐서 슬치 고개에서 임실군으로 들어선 백의종군길은 임실읍내를 가로지르며 남쪽으로 이동하여 말치고개로 향하고 고개를 넘으면서 임실군 오수면으로 진입하여 평야 지대로 내려간다. 오수면 봉천리와 오암리를 차례로 지나면 잠시 춘향로 국도를 만나기도 하지만 이내 국도를 벗어나 둔남천 둑방길을 걷는다.


백의종군길 10코스를 끝내고 원래의 계획은 임실읍 읍내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 휴식을 취하고 11코스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읍내 숙소에 방이 없다는 것이다. 지방에서 걷기를 하면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 무슨 행사가 있냐고 물어보니 사격 대회가 있다고 하신다. 국가대표 후보 선발을 겸한 전국학생사격대회가 임실군에서 열리고 있었다. 임실읍에서 조금 떨어진 청웅면에 전북특별자치도 종합사격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임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시내로 나가서 하룻밤 휴식을 취하고 다시 돌아와서 길을 이어가기로 했다. 봉황교 다리로 임실천을 건너서 임실 터미널로 향한다.


임실 터미널 인근으로는 임실 전통시장과 함께 맛잇길 음식상가라는 것이 있었는데 작년 9월에 개장했다고 한다. 임실의 특색 있는 먹거리를 판다고 하니 들러볼 만할 것으로 보인다. 임실읍내에서 숙소를 찾지 못했다면 전주나 남원으로 가는 선택지가 있었는데 전주가 거리가 짧은지 버스비가 조금 더 저렴했다. 임실에서 전주 가는 버스가 자주 있어서 다행이었다.


전주에서 하룻밤 쉬고 다시 돌아온 임실에서 상통 교차로를 지나 감천로를 따라 내려가는 것으로 여정을 이어간다. 전주 숙소에서는 밤새 장대비가 요란하게 쏟아지고 버스 터미널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비가 내렸는데 임실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비가 없을 때 부지런히 길을 가야 한다. 임실군보건의료원 앞을 지난다. 보건의료원은 보건소와 뭐가 다른가? 했는데 보건의료원은 진료와 입원 기능이 있다고 한다. 보통 병원급 시설이 부족한 군 지역에 설치된다고 한다.


길은 임실 소방서 앞을 지나면서 읍내를 빠져나간다. 임실읍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형태이면서 고도 240미터 내외의 작은 고원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임실읍내를 빠져나간다는 말의 의미는 평탄한 고원을 지대를 벗어나서 말치 고개부터는 산을 내려간다는 의미인 것이다. 길은 남쪽의 말치 고개를 향한다.


감천로를 따라 말치로 향하는 길은 군부대로 향하는 길에서 좌측으로 갈라져 입실읍 감성리의 서쪽 경계를 따라 내려간다. 임실 치즈가 생산되려면 우유가 있어야 하는데 감성리 마을길에서는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다.


대규모 한우 농가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이곳처럼 젖소 농가가 이어지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임실로 들어오면서 그리고 오랜 시간, 왜 임실에서 치즈가 유명한가? 하는 호기심이 있었다. 찾아보니 1964년 임실 성당에 부임한 지정환 신부가 그 시작이었다. 그의 본명은 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로 벨기에 출신이다. 산악 지형으로 농사로 생계를 꾸려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던 임실 주민들을 위해서 산양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고 벨기에 부모님의 도움으로 치즈 공장을 세워서 산양유로 치즈를 만들었다고 한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치즈 생산에 성공하여 국내 호텔들에 납품했는데 1972년부터는 대량 생산을 위해서 젖소 사육을 시작한 것이 오늘날에 이른 것이라 한다. 산양에서 홀스타인 젖소로 요즘에는 고급화 전략에 따라 저지종 젖소를 많이 키우고 있다고 한다.


임실읍내를 빠져나가는 감천로 길은 아주 완만한 오르막길로 남쪽 말치 고개를 향한다. 전봇대에도 말치가 등장했다.


길 인근 밭에서 젖소들이 먹을 옥수수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한 젖소 농가 앞을 지나는데 옥수숫대를 통째로 잘라서 소에게 주는 모양이었다. 옥수숫대 통째로 주어도 먹지만, 잎과 줄기를 통째로 잘라서 발효시키는 사일리지 방식으로 주면 소도 좋아하고 소화율도 높다고 한다. 임실읍을 남쪽에서 막아주고 있는 봉화산의 봉수대로 가는 길도 있었다. 가야시대의 봉수대라고 한다.


길이 말치 고개를 지나는 지점부터는 걷기에 너무 좋은 완만한 내리막길이 4Km 정도 이어진다. 숲 속 날벌레만 아니라면 무더위 속에서도 가볍게 내려갈 수 있는 아주 좋은 길이 이어진다.


말치에서 내려가는 길은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들과 함께하는 길이기도 한데 그 옛날 초등학교 교실에서 있었을 법한 나무 의자와 나무에 걸린 김현승 님의 "낭만의 플라타너스" 시 앞에서 잠시 감상의 시간을 갖는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플라타너스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잠시 열린 나무숲 사이로 산 아래 들판과 들판을 가로지르는 전라선 철길이 시야에 들어온다. 길은 이미 말치를 지나면서 임실군 임실읍을 지나서 오수면 봉천리를 걷고 있다.


봉화산의 산허리를 가르며 내려가고 있는 길은 어느덧 마을 인근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고도를 고작 150여 미터 내려왔는데도 느낌이 다르다.

오랜만에 만난 색 바랜 백의종군길 리본도 반갑다.


길이 마을 가까이 내려오니 길가에 핀 꽃들도 만나기 시작한다. 주황색의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참나리가 줄기 사이사이에 검은 옥구슬 같은 주아를 품고 있다. 참나리 꽃은 줄기 사이에 있는 검은 주아로 번식한다고 한다. 키가 큰 참나리 아래로는 금잔화라고도 불리는 메리골드가 참나리와 사이좋게 공간을 빛내고 있다.


길 아래로 봉산마을과 냉천마을을 두며 길을 이어간다.



길은 냉천마을에서 올라온 길과 합류하여 오촌마을로 향한다. 중간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길을 이어간다. 바람이 불어오면 좋으련만 무더위는 피할 수 없다.


길이 오수면 봉천리를 지나서 오암리로 넘어서면 오촌마을을 만나는데 이곳에서는 특이한 가로수가 우리를 반긴다. 나무 끝에 커다란 꽈리들이 대롱대롱 달렸다.


바로 모감주나무였다. 노란 꽃들이 지면 꽈리 모양의 열매가 달리는데 마을의 가로수가 모두 모감주나무이다 보니 아직 꽃이 있는 나무와 열매가 달린 나무를 함께 볼 수 있었다. 노란 꽃이 화려해서 황금비나무라고도 불린다.

떨어진 꽈리를 주어서 열어보니 염주 모양의 열매가 있었는데 실제로 열매가 검게 익으면 아주 단단해서 염주를 만드는데 쓰인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서 커다란 나무가 반겨주는 오촌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젖소가 치즈 모양을 버스 정류장에 붙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옆지기는 기어코 임실 치즈를 맛보리라 결심이 대단하다. 수입산이 치즈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실 치즈는 3%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모감주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이었던 오촌마을을 빠져나가면 오암교차로에서 옛 춘향로 국도와 만나는데 그곳에는 오수의견상이 세워져 있었다. 임실에 들어오면서 처음 보았던 오수의견공원과 이어지는 이야기로 술에 취해 잠든 주인이 불이 난 줄도 모르고 들판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키우던 개가 냇가에서 자신의 몸에 물을 적셔서 주인 주변으로 불이 번지지 않도록 하고서는 기진하여 죽었다는 이야기다. 통일신라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이고 오수면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라고도 한다.


엣 춘향로 국도를 따라 걷다가 국평삼거리에서 오수면 읍내 중심부로 연결되는 오수로로 진입한다.


오수면 읍내로 들어가는 오수로 도로 인근 논에는 7월인데 벌씨 벼이삭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여름의 절정을 통과하고 있지만 가을이 오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비석에 새겨진 "충효와 의견의 고장" 오수라는 문구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오수로 도로를 따라가던 길은 도로를 벗어나 인화초중고등학교 옆길을 따라서 둔남천 둑방길로 나간다. 학교가 작고 낡았는데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있다는 이름처럼 대부분의 학생이 60대 이상인 어르신들을 위한 학교라고 한다.


임실군 성수면에서 발원한 둔남천은 남쪽으로 흘러 오수천과 합류하고 오수천은 다시 섬진강으로 합류한다. 오수면 읍내까지는 둔남천 둑방길을 따라서 이동한다. 둔남은 오수면의 엣 이름인데 이름이 오수면으로 바뀐 것은 오래지 않은 1992년이라고 한다. 아마도 오수 의견을 내세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기 최자의 보한집에 실명과 함께 실린 이야기이니 이 고장에서는 충분히 활용할만하다. 주인을 불에서 구한 개를 위해 무덤을 만들어 주고 그것에 지팡이를 꽂아 두었는데 그것에 싹이 나서 큰 나무로 자랐다는...... 그래서 개 오(獒)에 나무 수(樹) 오수면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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