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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이 만경강에 합류하는 지점 이후로 전주천과 함께했던 백의종군길은 어느덧 전주시 남쪽 끝자락을 향하고 있다. 이순신 백의종군길 10코스는 풍남문을 한 바퀴 돌아서 남부시장 공영주차장 앞을 지나며 여정을 시작한다. 시장 골목을 나와서 팔달로에 들어서면 싸전다리로 전주천을 건너서 서학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며 전주 교대를 지나고 춘향로에 닿으면 전주천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는 춘향로 도로를 따라서 전주시 경계를 넘어 완주군 상관면 신리로 들어간다. 상관면 주민센터가 있는 곳이다.

이순신 백의종군길 10코스는 풍남문을 한 바퀴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들내미가 학창 시절 전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면서 선물했던 엽서의 그림, 딱 그대로이다. 예전 같으면 전주성의 남문을 통해서 성을 나가는 길이겠지만 이제는 풍남문을 돌아서 나간다. 이순신 장군은 4월 경에 전주성에 도착하여 남문 밖 이의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셨는데 전주 판관과 부윤이 찾아와 대접했다고 한다.


풍남문을 돌아가는 길, 전동 성당 또한 아들내미의 엽서 선물에 있던 그림이다. 순조 당시 있었던 신해박해로 순교한 순교지에 일제강점기 프랑스 신부가 주축이 되어 세운 성당이라고 한다.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가 발생한 곳으로 당시에는 남문 밖에 해당했다고 한다. 사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교동과 풍남동 일대의 한옥 마을도 성밖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성곽을 없애면서 성안 상권을 장악하자 주민들이 현재의 위치에 한옥을 지으면서 한옥 마을이 형성된 것이라 한다.
반대쪽으로 오니 호남제일성 대신 풍남문이 현판에 새겨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파죽지세로 한양을 거쳐 평양까지 밀고 올라갔지만 호남의 길목이었던 전주성에서 막혀 이순신의 수군도 살리고 조선왕조실록도 지켜낸 역사의 현장을 떠난다. 웅치, 이치, 안덕원에서 권율 장군의 관군과 의병, 승병이 왜군을 막지 못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는지 모른다. 반면, 정유재란 때는 임진왜란 때 전라도를 장악하지 못해 패배했다고 판단한 왜군은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궤멸시키고 전라도를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전과를 증명하기 위해 코와 귀를 베는 잔혹한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남원성에서 조명 연합군이 패배하자 전주성 수비 책임이었던 명나라의 진우충은 남원성의 구원 요청도 무시하고 왜군이 도착하기 전에 도망쳤다고 한다.


풍남문을 뒤로하고 팔달로를 향해서 남쪽으로 이동한다.


남부시장 공영 주차장 화단에서 붉은 접시꽃이 강렬한 태양빛을 받아서 더욱 화려하다.

복슬복슬하고 통통한 호박벌이 접시꽃 안으로 들어가 꿀을 따느라 정신이 없다. 호박벌은 꿀벌과 이기는 한데 생태가 많이 달라서 군집도 작고 주로 땅속에 집을 짓는다고 한다.


팔달로 도로로 나온 길은 싸전다리를 넘어서 서학동으로 향한다. 다리 입구에 서학동 예술마을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싸전다리라는 이름은 다리 인근에 싸전 즉, 쌀가게가 많았다고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남부 시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라는 것이 이해가 된다.

싸전다리에서 바라본 전주천의 모습은 동쪽으로 아치형의 다리인 남천교와 그 뒤로 기린봉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전주의 핵심 도로인 기린대로의 이름이 유래한 기린봉 배경도 좋지만 조선후기 무지개다리라고도 불린 남천교의 누각, 청연루도 풍경의 한몫을 담당한다. 다리에 누각이 있는 것은 남천교가 유일하다고 한다.


싸전다리를 넘어온 길은 서학로 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다. 서학이라는 이름은 풍수지리적으로 학이 깃들어 사는 길지라는 의미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서양 학문의 서학으로 오해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서학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는 길에는 예술 공방들도 있었고 가게 앞을 아기자기하게 가꾸어 놓은 모습도 좋았다. 서학동과 한옥마을을 연결하는 남천교 앞도 통과해서 지나간다. 한옥마을에서 넘어온 관광객들이 많아 보였다.


넓지 않은 길이지만 서학로를 따라 걷는 시간은 다양한 볼거리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서학로 도로는 전주교육대학교 앞을 지난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 전북사범학교로 개교한 1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학교이다. 필자의 어릴 적 소망이 교사였던 것을 생각하면서 한때는 교육대학교에 진학할 생각도 했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면 특수 목적 대학에 진학하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임용시험까지 통과해야 되기 때문이다.

학교 앞 "좋은 교사를 꿈꾸는 사람들" 모임 공간 앞에 있는 포토존 앞에서 옆지기는 인증숏을 하나 남긴다. "한 명의 좋은 교사가 천 명의 아이들을 행복하게 합니다"라는 말에 깊은 공감을 간다. AI가 시대를 바꾸고 있는 현시점에서 돌아보면 학교라는 것이 없어지지 않는 다면 교사, 학생, 학부모의 관계는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교사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주 교대는 기존 도서관을 허물고 새로운 도서관을 2026년 2월에 준공했는데 우리는 정오의 뜨거운 태양도 피할 겸 도서관 1층에 있는 카페에서 넉넉한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시원하고 깨끗한 공간에서 가벼운 잡지를 보면서 쉬어가지 정말 좋았다.

전주 교대를 떠나면 길은 국립무형유산원을 지난다. 필자는 처음 만나는 기관이었는데 국립 유산청 소속으로 우리나라 무형 문화유산의 보존, 전승, 연구, 조사, 보급 및 진흥 등을 담당한다. 대표적인 무형 문화유산에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택견, 아리랑, 김장 문화, 농악 등이 있다고 한다.


서학로는 산성 2교로 남고사 개울을 건너는데 산성은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남고산성을 의미하는 모양이었다. 남고산성은 고덕산성이라고도 부르는데 백제 시대의 성곽이라고 한다. 남고산성과 한옥마을을 포함한 주변의 길을 걷는 약 12Km의 도란도란 시나브로길이라는 트레킹 코스도 이곳으로 지나고 있었다.


서학로를 빠져나온 길은 춘향로 도로를 만난서 전주천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간다.


춘향로는 도로 이름처럼 전주 한옥마을에서 남원까지 이어지는 간선도로로 울창한 가로수 덕분에 드라이브 코스로는 훌륭해 보이지만 걷기에는 어려운 길이었다. 인도는 고사하고 갓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구간이 상당하기 때문에 걷기에 주의해야 한다. 덤프트럭도 생생 달리는 간선 도로이다 보니 운전자의 양심과 매너를 믿고 걷는 수밖에 없다.


춘향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에서는 완산구 대성동을 지나며 멀리 전주 새만금 고속도로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단풍나무 가로수가 버스와 같은 대형 차량에 의해 자연스럽게 가지치기되며 독특한 모양새를 가졌다. 나무 덕분에 갓길도 좁아져서 걸음을 빠르게 지날 수밖에 없다.


길 건너로 색장 정미소라는 표식을 보니 완산구 대성동에서 색장동으로 진입한 모양이다. 색장이라는 이름이 특이한데 색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적을 막는 울타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색장동 마을은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진 마을로 지금은 원색명화마을이라 부른다고 한다. 도로 표지판에 동부대로가 등장했는데 17번 국도가 북쪽으로 이어져 전주역 앞을 지난다. 10코스의 종점인 임실도 등장했다.


춘향로를 따라가는 길은 전주 새만금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이어진다.


갓길이 거의 없는 구간을 지날 때는 우리를 피해서 가는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괜히 미안함 마음조차 든다. 부남마을을 지나는데 이곳에는 카풀 주차장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전주에서 남원이나 임실 방면으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전국 곳곳에 간선도로나 고속도로 인근에 이러한 카풀 주차장을 마련하고 있는 모양이었고 전주에도 네 군데라고 한다.


LPG 충전소 옆에 설치한 수소 충전소를 보니 전국에 270여 개가 넘는다고는 하지만 아직 까지는 거리감이 있다. 수소로 전기를 만들며 물만 배출한다고 하니 참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아직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충전은 전문가가 할 수 있고 5Kg 정도 충전하는데 5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길은 어느덧 전주시 경계를 앞두고 있다. 완주군 상관면 표지가 등장했다.


길은 울창한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지나서 전주시 남쪽 끝자락의 덕산 마을에 닿는다. 마을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았다. 땡볕 아래 걷기에서는 편의점은 최고의 휴식처 맞다.


춘향로를 걷던 길은 횡단보도를 통해서 신리로를 걸으며 전주시를 떠나 완주군 상관면 신리로 들어간다.


월암교로 전주천을 다시 건너는데 남쪽 임실 방면으로는 산들이 길을 막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에 고개를 넘어가야 함을 미리 알려주는 것 같다.


신리로를 따라서 읍내로 들어가는 길에는 월암마을 표지와 함께 정여립공원 표지가 있었는데 조선 중기의 사상가인 정여립은 이곳 월암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천하는 공물이니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 "누구라도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당시에는 혁명적인 주장을 편 인물이다. 선조 22년 역모자로 몰리자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신리로는 상관초등학교 지나서 읍내로 들어간다. 좌측으로는 전라선 철도와 함께 내려간다.


길은 상관면 행정복지센터를 지나서 지금은 폐역으로 신리역공원으로 변모한 곳에 이른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 기린대로를 거쳐 전주역을 통해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여정을 이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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