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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목고개를 넘으면서 전라북도 익산시로 진입한 이순신 백의종군길 8코스는 여산삼거리에서 1번 국도 아래를 지나면서 여산면 읍내를 가로지른다. 여산면 읍내를 나오면 삼정교를 통해서 강경천을 건넌 다음에 강경천 둑방길을 따라서 강경천과 일월천이 합류하는 지점까지 남쪽으로 내려간다. 강경천을 건너서 일월천을 따라가는 길은 신리 교차로에서 1번 국도 호남로를 가로질러 이후로는 가람로 길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다. 원수 저수지 인근에서는 국도와 바짝 붙어서 내려가다가 연명교차로를 지나서 좌회전하여 호반로를 따라 내려간다. 양동의 고개를 넘으면서 익산시 여산면에서 왕궁면으로 진입하고 왕궁 저수지의 서쪽을 따라 내려가는 호반로 끝자락 보석 박물관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백의종군길이 전라도로 진입하면서 처음 만나는 동네는 익산시 여산면 두여리이다. 월곡마을 정류장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여정을 이어간다. 이곳의 시내버스는 익산시 버스가 아니라 논산시 버스가 여산면 읍내와 논산역을 오가고 있었다.
익산이라는 도시 이름은 조선 시대부터 부르던 이름으로 이로움이 산처럼 쌓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고려 때는 익주라 했고.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을 통합하며 익산시로 출발했는데 필자는 익산의 이전 이름이 이리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원래 갈대밭 속의 마을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인 솜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차음 하면서 이리가 된 것이고 1912년 호남선 이리역이 생기고 이후에는 전라선도 이곳으로 통과하면서 철도 교통의 중심지가 되며 해방 후에 이리시로 분리되었다가 다시 익산으로 통합된 것이었다.
두여리에 들어서면서 만나는 것은 건설하다가 방치된 아파트로 처음에는 서해랑길을 걸으며 만났던 폐 리조트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1996년에 건설하다가 방치된 상태로 다시 짓기고 철거하기도 어려운 상황인 모양이었다. 한때는 경매로 낙찰받은 사업자가 다른 용도로 공사를 재개하려 했던 것 같은데 그 시도도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길은 여산삼거리를 향해서 걸으며 여산 고등학교 앞을 지난다. 고등학교인데 학생수가 23명 교원이 11명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실감이 나면서 과연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자귀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뽐내는 계절이다. 잎은 콩과 식물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밤이 되면 좌우로 펴져있는 잎들이 포개지는 신기한 나무이다. 그래서 부부를 닮았다고 합환수라 부르기도 한다. 수분 증발을 막고 비바람 등 외부 자극으로부터 에너지를 아끼기 위함이라고 한다.


여산삼거리를 지나며 1번 국도 아래를 통과한 길은 가람로를 따라서 여산면의 읍내에 해당하는 여산리를 걷는다. 구석기시대부터 마을 형성하며 살았던 유서가 깊은 지역이다.


읍내로 들어가는 길에서는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도 만난다. 흥선대원군 당시 천주교도들이 참수형 당했던 장소라고 한다. 숲정이는 마을 근처의 숲을 의미하는 순우리말로 보통 군대가 주둔했다고 한다.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한 병인양요가 촉발시킨 천주교 탄압으로 프랑스 신부 9명을 포함하여 약 8천여 명의 신자들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여산면 읍내로 들어온 길은 여산 전통 시장과 여산터미널을 차례로 지난다.

여산면 읍내를 빠져나가면 이후로는 편의점도 없고 식당도 만나기 어려운 구간이라서 이른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편의점이나 식당을 찾았지만 신기하게도 여산면 읍내에는 편의점이 한 군데도 없었다. 웬만한 시골에도 하나씩은 있을법한 편의점이 하나도 없다니! 아무튼 식당을 찾다가 한 식당에서 청국장으로 백반을 먹었는데 주인장이 넉넉하게 끓여 내온 청국장은 과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넉넉한 식사를 하게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이 겨우 오전 11시 정도였는데 사람들이 몰려오고 예약 전화가 빗발치는 맛집이었다.


길은 여산 파출소 앞에서 여강길을 따라가다가 골목길을 통해 강경천 방면으로 이어진다. 전북 삼천리길 표식이 등장했는데 백의종군길은 얼마간 전북 삼천리길과 함께한다.


여산 읍내를 빠저 나가는 길에서 주황색 꽃을 활짝 피운 능소화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로 들판으로 나가는 길이다.


삼정교를 통해서 강경천을 건너 강경천 둑방길로 나간다. 강경천은 미륵산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고 강경 읍내를 지나서 논산천과 함께 금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강경천을 건넌 이후로는 여산면 여산리와 제남리 사이를 흐르는 강경천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밭에는 수확을 끝낸 상태로 어제 내린 비를 맞은 양파들이 줄지어 있었다. 여산면은 익산시 양파 재배 주산지로 보통은 양파와 벼를 이모작 한다고 한다. 익산에 위치한 국가 식품 클러스터에 입주한 기업을 상대로 한 판로가 있어서 괜찮은 재배 환경이라고 보이지만 가격이 낮다고 하니 비 맞은 양파를 제 값을 주고 수매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강경천 둑방길을 따라 전북 삼천리길과 함께 내려가고 있는 백의종군길은 1번 국도 호남로 아래를 통과하여 둑방길 걷기를 계속한다.


강경천을 따라 내려가던 길은 일월천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다시 강경천을 건너고 국도 아래도 통과하여 신리교차로로 나간다.


신리교차로로 나온 길은 여산면 읍내 진입 시에 만났던 가람로 도로를 따라 원수리의 마을들을 가로질러 내려간다. 가람로는 쟁목고개부터 여산면 읍내를 거쳐서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원수 저수지까지 이어지는데 이 근처에 이병기 생가와 가람 문학관이 있어서 그를 기리며 붙인 길 이름으로 보인다. 근현대 시조 작가이자 국문학자이며 독립유공자인 이병기 선생의 호가 가람이다. 그 대표작들을 중에서 "농촌화첩"이라는 시를 하나 남겨 본다. 시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농가의 일상이 그려진다.
웅덩마다 물 괴이고 밤에는 개구리소리
둥산에 숲이 짙어 낮이면 꾀꼬리소리
그 바쁜 마을 집들은 더욱 적적하여라
앞뒤 넓은 들이 어느덧 검어졌다
모기와 벼룩 거머리 뜯기다가
겉절인 글무 김치에 보리밥이 살지운다
일심은 오려논에 기심이 길어있다
헌 삿갓 베 잠방이 호미 메고 삽 들고
내 일은 내가 서둘러 새벽부터 나간다
올마다 호박넌출 그 밑에 가지 고추
비는 오려하는 무더운 저녁날에
똥오줌 걸찍한 냄새 온 마을을 적신다
몇만년 걸고 걸은 기름진 메와 들을
갈고 고르고 심고 거두고 하여
일찍이 우리 조상도 이 흙에서 살았다


여산면 원수리의 신리마을, 신막마을, 독양마을을 차례로 지난다. 마을 교회의 예배가 끝난 시간인지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을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신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잠시 쉴 자리를 찾기도 어렵다. 원수리라는 말은 여산면의 북쪽으로 가르며 흘러가는 강경천의 발원지라는 의미이다.


길은 신막마을과 독양마을을 지나서 가람로가 1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으로 나아간다. 1번 국도가 지난다는 점에서 이곳이 오랜 옛날부터 교통 요지였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신막마을이라는 마을 이름도 새로운 주막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하니 교통요지에서 길손들의 쉼터 역할을 했었음을 알 수 있다.

밭에 뒹굴던 양파 더미를 보다가 길가에 모아놓은 양파를 보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서 힘들게 수확한 양파일 텐데 제 값을 받았으면 좋겠다. 2026년 양파 수매가로 농민들은 20Kg에 최소 16,000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1Kg에 8백 원 정도이니 양파 가격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실감할 수 있는 가격이다.


가람로가 1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은 도로의 구조가 조금 특이한 장소인데 길은 국도 좌측의 호반로를 따라 이어간다. 이 길은 자동차가 나오기만 하고 진입할 수 없는 일방통행로이다.


1번 국도 건너편으로 원수 저수지를 두고 있는 이곳은 연명 마을로 연명 교차로 표지판에는 이번 코스의 목적지인 보석 박물관도 등장했다.


1번 국도 옆의 호반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에서 빨갛게 익은 산딸기 군락을 만나서 한두 개 맛도 보고 옆지기에 상납을 하고 있는데 교차로 부근을 혼자서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는 남성을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1번 국도변을 따라 걷는 모양이었다.


연명 교차로 옆길로 내려온 길은 호반로를 따라서 야트막한 고개를 오르기 시작한다.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와 왕궁면 동봉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고개를 넘은 길은 양동길 갈림길을 지나서 이름도 특이한 왕궁면으로 진입한다. 왕궁면이라는 이름은 서동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 시절 왕궁을 조성했던 곳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무왕은 익산 출신으로 익산으로의 천도를 추진하고 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했다. 백제의 마지막 부흥을 이끌었지만 그의 아들인 의자왕 때에 백제는 멸망하고 만다.


호반로 도로변으로는 계란꽃이라고도 불리는 개망초가 강렬한 태양이 열기를 내뿜는 여름의 길목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뽐낸다. 큰 금계국처럼 귀화식물인데 그냥 잡초라고 천대를 받지만 어린순은 식용할 수 있고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며 토양을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조물주 아래 세상에는 무의미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개천을 지나는 동봉교를 지나는데 다리 장식으로 왕궁리 5층 석탑을 올려놓았다. 석탑은 왕궁면이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이 되는 왕궁리 왕궁터에 있고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왕궁 저수지 서쪽으로 이어지는 호반로 도로를 따라서 길을 이어간다. 옆지기는 왕궁 저수지를 보며 바다 같다는 소감을 내놓는다. 왕궁 저수지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것으로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호수 서쪽을 다라 내려가는 호반로는 주위의 나무들 때문에 갓길 넓지 않아서 걷기에 조금은 위험한 측면이 있지만 차량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가끔씩 주어지는 나무 그늘이 좋을 뿐이다.


왕궁 저수지 주변으로는 다양한 음식물과 위락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식물원인데 물놀이 시설도 있는 왕궁포레스트 쪽으로는 자동차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익산시가 전북에서 전주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곳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26만 명 정도라고 한다. 멀리 종점인 보석박물관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제방 위로는 함벽정이라는 누각이 풍경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1920년 이곳에 저수지 제방이 완공된 것을 기념하며 지었다고 한다. 아래쪽으로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유리 피라미드가 저곳에 보석 박물관이 있음을 알려준다.


호반로를 내려온 길은 보석교를 건너며 보석 박물관 앞에서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땡볕이지만 푸른 하늘과 흰구름이 한 폭의 경치를 완성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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