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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마을에서 수철마을까지 걷는 지리산 둘레길 5코스는 난이도 중급이지만 왕산 자락의 쌍재와 고동재를 넘어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경로이다. 그렇지만, 고갯길을 넘는 과정에서 숲길을 통과하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위의 고도 변화 그림과 같이 완만하게 고도를 올리다가 고개를 지나면 완만하게 내려오는 걷기에 좋은 길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함양 터미널에서 마천, 추성행 농어촌 버스를 타고 동강마을로 향한다. 오늘은 5코스, 6코스를 이어서 걸을 예정이라 조금 일찍 여정을 시작했다. 지방을 다니면 보통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농어촌 버스를 타기 마련인데, 함양군은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이기는 하지만 약 2백 미터 정도 걸어가야 하는 위치에서 별도로 출발한다. 

 

동강마을 정류장에서 내리면 엄천교를 통해서 유유히 흐르는 임천을 건너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다. 다리에 엄천교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임천을 엄천이라고도 부른 까닭이었을 것이다. 

 

동강마을의 고요한 아침 기운을 가르며 여정을 시작한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그런지 화창했던 어제와 달리 조금은 쌀쌀한 날씨이다. 스틱을 잡은 손이 시려서 손을 번갈아 가며 주머니에 녹여 주면서 걷는다. 동강마을 이름에 오동나무 동(桐)이 쓰인 이유가 마을에 오동나무가 많기 때문이었다고 그러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임천이 굽이쳐 흐르고 오봉천이 합류하는 마을 앞은 넓은 평야 지대가 만들어져 있다. 논 사이를 가로질러서 왕산과 와불산 사이의 계곡을 향해서 나아간다. 

 

오봉천을 따라 올라가는 계곡 입구에는 점촌마을, 방곡마을 표지, 다양한 사찰들의 이름, 오봉계곡과 더불어 산청, 함양 사건 추모공원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오봉천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방곡마을까지 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를 따라 걷지만 차가 많지 않아 위험하지는 않았다. 동쪽으로 아침 태양이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은 그 온기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방곡마을까지 가는 길은 좌측으로 방곡저수지를 두며 걷는다. 동쪽으로 떠오르는 아침 태양이 저수지 수면을 조금이나마 붉게 물들인다. 길은 어느덧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에서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로 넘어간다.

 

길을 걷다가 산청, 함양 사건 추모공원이라는 의외의 장소를 만난다.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야기는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리산 무장 공비 토벌에 나선 국군 3개 대대가 5코스의 종점인 수철마을 인근에 주둔하며 작전을 수행했는데 소위 "청야"라는 작전 이름으로 무고한 양민 7백여 명을 죽인 사건이다. 그들의 죄라면 지리산 기슭에 살았던 죄가 아닐까 싶다. 제주 4.3과 겹쳐지며 마음이 씁쓸하다.

 

방곡마을 이후로는 도로를 벗어나 저수지 상류의 오봉 계곡에서 내려오는 골짜기를 가로질러 임도를 통해 왕산 계곡으로 향한다.

 

오봉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은 너무 맑아서 눈이 시릴 정도이다. 이런 물을 가진 이곳 주민들이 부럽다.

 

저수지 건너편의 방곡마을과 산청, 함양 사건 추모공원을 뒤로하고 임도를 따라서 왕산 자락의 상사골 계곡으로 향한다.

 

상사골 계곡 초입의 겨울 얼음은 지금의 서늘한 날씨를 대신 표현하는 듯 보인다.

 

힘차게 흘러 내려가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왕산 상사폭포를 향해서 계곡길을 오른다.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하고 올라간 전설이 있을 것 같은 맑은 계곡물에 감탄사를 던지고 길을 이어간다. 실제로 이 상사골 계곡은 신라에게 나라를 빼앗긴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여생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길이 경사가 급해지고 계곡이 좁아지는 것을 보니 상사 폭포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계곡 주위로는 얼음들이 맺힐 정도로 날이 춥지만 오르막길은 체온을 올리며 추위를 잠시나마 이기게 해 준다.

 

줄을 잡고 상사 폭포 위를 오르니 작은 폭포가 아니다.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여름철 수량이 많을 때면 더욱 장관의 모습을 가진 상사 폭포를 상상해 본다.

 

상사 폭포를 지나면 숲길 오르막을 통해서 쌍재 고개를 향한다.

 

비스듬히 길을 막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 한그루 덕택에 고개를 숙이고 길을 지나간다. 겸손하게 길을 마무리하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었다.

 

숲길 이후로는 임산물을 재배하는 농가를 지나서 임도를 따라 쌍재 고개를 향한다. 

 

쌍재 고개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에서 특이한 광경 앞에 발길을 멈춘다. 전깃줄에 매달린 나뭇가지. 다시 봐도 신기한 그림이다. 전깃줄 근처에서 나뭇가지가 떨어져서 저런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이해하더라도 바람이 불어도 중심을 잡고 있는 모습이 기묘하다.

 

쌍 고개에 올라선 둘레길은 임도를 벗어나 우측 숲길로 방향을 잡고 이동한다. 고동재로 향하는 능선길이다.

 

능선길에서 바람이 그나마 덜 부는 지점을 찾아 돗자리 깔고 휴식을 취하며 이른 점심을 먹었다. 겨울에는 길을 걷다가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추워도 먹어야 전진할 수 있으니 하는 수 없다.

 

5코스의 절반을 넘어선 지점 길 표식의 거리가 재미있게도 동강으로부터 6.6Km, 종점인 수철마을까지 5.5Km가 남았다. 5코스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 고도를 높이면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정상부에 이른다. 

 

정상부에 이르니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 다가왔다. 전망대와 산불감시 초소가 있었고 초소 안에서는 감시원이 찬바람을 피하며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하면서 지나갔는데 쌍재 부근에 세워져 있던 차량의 주인이 산불 감시원인 모양이었다. 차를 세워두고 이곳까지 다니는 것이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코스의 가장 높은 정상부에 도착하니 기대하지 않는 전망이 우릴 반겨준다. 마치 지리산 노고단에서나 볼법한 풍경이다. 주변 봉우리들의 모습도 장관이지만 지리산 천왕봉은 이곳에서 남서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정상부에 하얀 눈이 남아 있는 곳이 지리산 천왕봉 주위가 아닌가 싶다.

 

전망이 좋아서 북쪽으로는 우리가 길을 시작했던 방곡마을과 산청 함양 사건 추모공원이 시야에 들어오고 앞으로 길을 내려갈 동쪽으로는 수철마을과 함께 멀리 산청 읍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산불감시 초소를 지난 능선길은 고동재 고개를 향해서 완만한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한다.

 

수철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마을이 가깝게 보이기 시작하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수십 년을 이곳에서 살아왔을 나무들의 나이테를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인생무상의 감정도 슬그머니 들어온다. 같은 지역에 살아도 나무 종류마다 다른 나무의 단면도 신기하다. 참나무에게 있는 코르크 층은 더욱 눈길이 간다.

 

능선을 따라 고동재로 향하는 내리막 길은 가볍다. 모든 길을 이렇게 가벼운 걸음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삶이 마냥 꽃길이 아니듯 둘레길도 이런 가벼운 길이 있으면 오르막과 거친 길이 있기 마련이다.

 

저 아래로 포장길이 보인다. 고동재 고개에 도착했다. 익살스러운 천하대장군이 있었는데 가슴에 긴급호출 버튼도 가지고 있었다.

 

길은 동고재 고개에서 좌회전하여 임도를 따라 마을까지 쭉 내려간다.

 

길은 가재길 도로를 따라서 터벅터벅 길을 재촉한다. 멀리 아파트가 보이는 것이 아마도 산청읍내가 멀지 않은 모양이다.

 

드디어 수철마을에서 5코스를 마무리한다. 철을 다루던 대장간이 있어서 생긴 마을 이름이라고 한다. 역사가 철기 강국이었던 가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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