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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 수문동을 출발한 남파랑길은 해안 데크길을 통해서 득량만 바다를 감상하고 산을 넘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산을 넘어 동서로 도로로 내려왔다가 중간에 다시 사찰이 있는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임도를 걷는 구간이 있었는데 그냥 우리는 계속 도로를 걸어서 장선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동서로 해안 도로를 따라 계속 북쪽으로 걸으면 장선 해수욕장, 장선포를 지나 득량만 방조제를 만나 둑방길을 걷는다.

 

다이아모든 형의 고흥반도를 돌아온 남파랑길은 이제 그 끝자락을 걷는다. 동쪽 바다 건너편은 75코스로 걸었던 송림 방조제와 장사 마을 해변이다.

 

서쪽으로는 수문동 포구와 득량만 바다 건너 보성 땅이 조금 더 눈앞으로 다가왔다.

 

신기 수문동 포구를 지나니 물이 가득 들어온 득량만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맑은 날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온다. 소나기라도 내릴 모양이다. 길은 우측으로 보이는 해상 데크길로 이어진다.

 

산 위에는 안뜰 거북이 마을에서 운영하는 별나라체험장이라는 이름의 천체 관측소가 있다. 안내판은 낡아 글씨를 볼 수 없을 정도인데 지금도 운영하는지는 모르겠다.

 

물이 가득 들어온 득량만 바다는 심원의 깊이가 느껴지는 바다처럼 느껴진다. 남파랑길 표지에는 종점이 6Km가 남았다고 하는데 76코스 전체의 종점이 아니라 득량만 방조제에서 끝나는 고흥군 구간의 종점을 의미한다.

 

길은 해상 데크길로 이어진다. 수심에 따라 다른 색깔을 보이는 득량만 바다가 신비하게 느껴진다.

 

해상 데크길에서 득량만 바다를 감상하던 관람객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 가지만 우리는 데크길 끝에서 산을 오른다. 데크길도 길지 않지만 산도 높지 않다.

 

높지 않은 산 정상에도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천체 관측소가 있는 별나라체험장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남파랑길은 체험장으로는 가지 않는다.

 

길은 남파랑길 리본을 따라서 산을 내려간다.

 

대나무 숲길을 지나는데, 땅을 뚫고 올라오는 죽순들이 길을 없애는 것 아니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산을 내려온 길은 동서로 도로를 만나서 북쪽으로 이동한다.

 

길은 원래는 중간에 사찰이 있는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임도를 걷다가 다시 도로로 내려오는데 우리는 그냥 계속 가던 도로를 계속 걷기로 했다.

 

높지 않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고개 아래에서 작은 공원을 만난다.

 

공원에서는 택시를 운전하시는 노년의 부부께서 호젓하게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이곳은 장선 해수욕장은 아니지만 작은 모래 해변도 있고 높다란 소나무 숲이 그늘을 주는 최고의 휴식 공간이었다. 수돗물도 있었다. 신발을 벗고 잠시 쉬어 간다.

 

남쪽으로는 갑자기 몰려온 먹구름이 득량만 바다를 보는 시야를 어둡게 하는데, 북쪽 장선포 방향으로는 햇빛이 쨍쨍하다.

 

득량만 바다 끝자락에 있는 장선 해수욕장에 들어선다. 크지 않지만 깨끗한 모래 해변과 아담한 솔숲을 가진 해수욕장이다.

 

평일이란 그런지 한적했지만,  조용한 휴식 시간을 가지기에는 최고의 장소 아닌가 싶다. 편의점도 변변한 슈퍼도 없지만 그만큼 조용하고 깨끗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안뜰 거북이 마을에서 운영하는 오토캠핑장인 득량만 풍광 휴식 센터라는 곳도 있었다. 장선 마을이라는 이름은 송림리의 장사 마을처럼 마을 앞의 긴 모래사장이 있다고 장사포라 불리던 것을 장선이란 바꾸어서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땡볕과 솔숲 그늘을 번갈아 맞으며 길을 이어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교통편 시간만 아니라면 솔숲에 들어가 넉넉히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편의 시설이 넉넉한 해수욕장은 아니었지만 기본 시설만으로도 장선 해수욕장은 훌륭한 곳이었다.  

 

마을 앞 길을 걸어가다 보면 좌측 바다로 작은 섬과 섬으로 이어지는 데크길이 있는데 데크길은 망가진 지 오래되어 보인다. 섬 이름도 마을 이름처럼 장선도이다.

 

이번 여정은 장선포에서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교통편을 생각하면서 북쪽으로 계속 걸어서 조성역에서 기차를 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다행히 군내버스가 제시간에 와서 벌교 터미널을 거쳐 집으로 잘 돌아갈 수 있었다.

 

장선포에서 여정을 이어가는 사이의 시간 간격은 거의 20일의 차이가 난다. 장선포를 떠날 때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때도 벌교 터미널에서 고흥 군내 버스를 이용했는데 그동안 고흥 여행에서 우리에게 발이 되어 주었던 고흥 버스도 이제 안녕이다. 그동안 필자는 집에서 보리도 베고, 손 모내기도 하고 많은 일이 있었다. 그동안 정신없이 일했던 스스로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모든 것은 잊고 이제 온전히 걷기에만 시간과 마음을 쏟는다. 6월 중순의 남해안 걷기 여행은 어떤 감격과 즐거움으로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장선포를 떠난 길은 눈앞으로 다가온 득량만 방조제를 보면서 걷는다. 소용을 다한 폐선박들이 뭍에 쌓여 있는 보면서 나의 노후를 생각해 본다. 세상 떠나는 날까지 소용이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고흥군과 보성군의 경계 지점에 가까워지지 두 지역에서 내세우는 것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주를 내세운 고흥, 녹차를 앞세운 보성. 지역의 중점 브랜드가 어떻게 이 지역들을 바꾸어 갈지 모를 일이다. 보성의 녹차 해안 도로는 이곳에서 시작하여 보성 해안을 따라 남서 방향으로 내려가서 장흥 경계까지 이어진다. 길은 좌회전하여 둑방길 위를 걷는다.

 

5월 여행에서 짙은 향기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하얀 찔레꽃이 둑방에 가득하다. 득량만 바다는 지금은 썰물 때인 모양이다. 푸른 하늘 아래 상쾌하게 둑방길을 걸어간다.

 

득량만 방조제 안쪽의 담수호에는 엄청난 규모의 수상 태양광 발전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산을 깎는 것보다는 나아 보이지만 여러 우려도 있으니 이왕 설치했다면 패널을 세척하는 과정이나 기타 과정에서 환경오염 없이 잘 운영되었으면 좋겠다.

 

"고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작별 멘트가 등장했다. 이제 고흥 땅이 끝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1호, 2호 배수 갑문을 차례로 지나면 고흥군에서 보성군으로 넘어간다. 득량만 방조제가 완공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이다. 일제가 식량 수탈을 위해 농지를 확대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변변한 트럭도 없던 시절, 이 방조제를 만드는데 한국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중국인 노동자도 투입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수, 광주 간 철도 부설을 위해서 텐진에서 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우리나라로 원정을 왔는데 그 인원들이 득량만 방조제 공사에도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백 년을 바라보는 역사를 가진 방조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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