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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읍내에서 하룻밤 휴식을 취한 우리는 벌교 역전과 시장을 지나 시가지를 빠져나가 벌교천 강변 둑방길을 걷는다. 예전에는 칠동천을 건너기 위해서 조금 돌아갔으나 지금은 선착장 보도교를 통해서 조금 짧게 길을 갈 수 있다. 벌교대교 인근에서 갈대밭 사이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데크길을 걷는다. 데크길은 벌교 생태 공원 건너편까지 이어진다. 이후로는 둑방길을 걸어 남해고속도로가 지나는 벌교대교 아래를 통과하고 봉황마을에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장암리에 이른다.

 

촉촉한 비가 내리는 가운데 벌교역전에서 좌회전하여 63코스 걷기를 이어간다. 이른 아침부터 역전 인근 시장 인근은 활기가 넘친다. 벌교역을 통해서 이동하는 방안도 여러 번 검토했지만 군내버스 연계등을 감안하면 순천을 거쳐 벌교 버스 터미널을 이용하는 것이 나았다.

 

벌교 시장은 5일장이 아니라 매일 문을 여는 상설 시장이다. 자동차를 가져왔다면 참꼬막이나 낙지를 사지 않았을까 싶다.

 

고무대야에 담긴 큼지막한 칠게를 보니 이곳이 갯벌의 고장인 것이 실감이 난다.

 

길은 부용교 앞에서 우회전하여 둑방길을 걷는데 바로 옆 철교로는 때마침 벌교역을 떠나 순천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기차가 달려가고 있다.

 

둑방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벌교천으로 합류하는 칠동천을 만나는데 예전에는 하천을 건너기 위해 우측으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선착장 보도교를 통해서 바로 건널 수 있다. 다리 이름에 "선착장"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지금은 배를 거의 볼 수 없지만 옛날에는 배가 이곳까지 많이 들어왔다는 것이 맞는 모양이다. 지금도 철교 아래쪽에 작은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이 있기는 하다.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지만 우비와 판초우의를 뒤집어쓴 우리는 사진 찍기를 포기할 수 없다.

 

갈대밭 사이로 흐르는 칠동천을 건넌다.

 

선착장 보도교를 통해서 칠동천을 건너면 가로수가 가지런히 심긴 둑방길을 따라 갈대밭 강변을 걷는다. 보슬비가 내리지만 풍경만큼은 결코 빗속에 가려지지 않는다.

 

빗속에서도 하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 이팝나무 향기가 감미롭다.

 

둑방길을 이어가던 길은 촉촉하게 젖은 해상 데크길로 내려간다. 일반적인 데크길에는 빗살무늬의 방부목을 까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에는 아주 두꺼운 통나무를 깔아 놓아 걷는 느낌이 남다르다. 순천만 갈대 군락지의 갈대숲을 걷는 것과는 판이한 느낌이다. 이곳이 더 자연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갈대숲 사이를 관통하는 환상적인 산책로는 벌교 생태 공원 건너편까지 이어진다.

 

때로는 인증숏도 남기도, 때로는 갯벌의 생명들에 눈길도 주면서 이른 아침에 만난 훌륭한 풍경 덕택에 비가 내림에도 발걸음만은 가볍다.

 

갈대숲을 가로질러 내려오던 산책로는 벌교천 건너편 벌교 생태공원에서 넘어오는 다리와 합류하면서 끝이 난다.

 

이제는 멀리 남해고속도로가 지나는 벌교대교를 보면서 둑방길을 걷는다. 어제 벌교천 건너편의 중도방죽길만큼 산책길이 화려하지 않으나 가지런히 가로수라도 있는 이 길이  정갈하니 더 마음에 든다. 

 

순천만 국가 정원과 함께 순천만 갯벌이 유명하지만 실상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에 등재된 것은 순천만 갯벌과 보성 벌교 갯벌도 함께 등재되었다. 벌교읍 호동리, 장암리, 대포리, 장도리 일원이다. 그런데 이 지역은 이미 2006년부터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에는 해양수산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갯벌 보전을 위한 이중 삼중의 제도적 준비는 되었으나 실행하는 것은 사람이니, 마음이 모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아름다운 풍경이 유지되고 이곳 사람들에게 풍성함을 주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둑방길을 한참 걷고 있는데 둑방길에 웬 등나무가 등장했다. 그것도 하얀 등나무꽃과 향기를 동반하며 발걸음을 붙잡는다.

 

갯벌과 등나무라니 생경스러운 조합이지만 등나무가 왜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왕 자리 잡은 것, 덩굴이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난간이 없는 곳이니 난간 삼아 기둥을 몇 개 세워주거나 비닐하우스 골조를 주면 등나무 터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멀리 남해고속도로가 지나는 별교대교가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이번에는 등나무가 산을 이루었다. 

 

길에 향기를 가득 뿌리고 있는 등나무가 무엇을 감고 올라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포탈의 거리뷰로 잎이 없을 때의 사진을 보면 전봇대는 아니고 어떤 기둥이 있는 모양이다. 지금은 정글 수준이다. 논둑이 바로 옆인데 등나무가 바로 옆에서 자라도록 용인하는 농부의 마음도 참으로 넉넉하다는 생각이 든다. 등나무가 씨로도 번식하니 멀리 떨어지지 않은 둑방에서 자라는 등나무는 아마도 이 등나무의 후손이 아닌가 싶다. 수백 미터 까지도 자라는 등나무는 통상 백 년 정도의 수명을 갖는데 우리나라에서는 50년 정도 산다고 하니 몇 년 후에 이곳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보슬보슬 비를 맞으며  벌교대교를 향해 길을 이어간다. 어찌 보면 강렬한 태양 아래서 걷는 것보다는 이런 우중 걷기가 조금은 불편하지만 걷기에는 낫지 않나 싶다. 강한 비가 내렸다면 사진도 찍지 못했을 텐데 보슬비라서 다행이다.

 

육중한 트럭이 지나는 남해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길을 이어간다. 940미터에 달하는 다리이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곳은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보성 갯벌인데 람사르는 사실 카스피해 남부에 있는 이란의 도시 이름이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도 멀지 않은 도시인데 1971년 줄어드는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국제 환경 조약이 람사르에서 이루어졌다. 공식 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이다. 우포늪이나 보성 갯벌처럼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다는 것은 철새 서식지나 생태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나라는 1997년 느지막이 가입했는데 협약에 가입하면 지정한 습지 보전하고, 습지의 적절한 사용을 위한 지침을 두며 습지를 자연보호구로 지정하는 등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갯벌 저너머로는 보이는 것은 바다로 툭 튀어 나간 장암리 지역이고 중간에 우뚝 솟은 것은 봉황산이다. 벌교천과 여자만이 만나는 이곳 벌교 갯벌이 2006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람사르 해안보존습지로 지정된 곳이라고 하니 더욱 새롭게 보게 된다. 습지는 연안습지와 내륙습지로 구분하는데 갯벌은 연안 습지에 속한다. 이 갯벌이 물도 정화하고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터전도 되고 태풍 피해도 줄여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산림의 3분의 1 수준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니 그 가치를 다시 반추할 일이다.

 

길은 둑방길 끝에서 우회전하여 봉황마을로 들어간다. 봉황마을이라는 이름은 마을의 지형이 학의 모양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길은 마을외곽의 농로를 따라 이어간다.

 

마을의 아주 작은 고개를 넘어가는데 급한 용무로 참으로 난감한 시간이었다. 산 구석에서 급하게 일을 보고 옷을 추스르는데 딸내미는 "벌써 끝났어요?" 한다. 약간은 놀림을 받는 느낌이지만 급한 일을 해결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다른 것을 안중에 둘일이 아니었다. 남파랑길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정말 용무 해결이다.

 

길은 장암리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농로를 따라 대포리 방면으로 남쪽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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