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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안쪽으로 더욱 들어가고 있는 남파랑길은 안골포와 와성만을 지나면 남문동 시내로 진입한다. 주기철 목사 기념관과 웅천 읍성, 웅천 시장을 거쳐서 제덕 사거리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매립 반대 깃발이 걸려있는 해안 도로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지금은 해안 도로 바로 옆으로 바다를 보면서 걷고 있지만 몇 년 후에는 없어질 해안선이다. 흰돌메 공원 좌우로 영길 마을 인근부터 와성만 까지 와성 지구 공유수면 매립 예정지이기 때문이다. 국내 포털 지도에서는 이미 매립이 완료된 상태인 것처럼 매립지의 길까지 표시되어 있다.

 

해안 도로를 따라 언덕을 오르면 흰돌메 공원을 만난다. 흰돌메 공원은 시민 공모로 정해진 공원 이름으로 예로부터 하얀 바위나 흰돌이 많아 백석산, 흰돌메라고 불렸다고 한다. 주변 바다가 매립되더라도 작은 산인 이곳은 그대로 남는 모양이다. 바다를 메워 생긴 부산 신항과 배후 단지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날이 좋으면 대마도도 보인다고 한다.

 

원래의 남파랑길은 공원 아래 해안으로 내려가서 해안 산책길로 가야 하지만 당시에는 태풍 때문에 길이 망가졌다는 공지가 있어서 그냥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걷기로 했다. 여기는 진해 바다 70리 길 6구간 흰돌메길에 해당하는 길이다. 영길 마을에서 제덕항에 이르는 길이다.

 

흰돌메 공원을 지나는 길, 도로 아래로는 태풍 피해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걸었을 해안 산책로가 보인다. 길 양쪽으로 들어선 벚나무들을 보니 지금은 단풍이 들은 잎들이 겨울을 준비하고 있지만 봄이면 새하얀 꽃으로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낼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길을 걷다 보면 얼마 되지 않아 흰돌메 공원 아래 해안으로 이어진 산책로와 만나서 길을 이어간다. 이곳도 매립 예정인 와성만 지역이다. 돌아보니 도로변으로 깃발이 걸린 곳은 모두 조금 있으면 매립으로 없어질 해안선이었다. 이곳에서 어떤 분은 캠핑을 하고 있었고, 어떤 중년 커플은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간식으로 컵라면을 먹다가 내용물과 용기를 한쪽으로 거리낌 없이 던져 버리는 모습을 보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나도 그런 모습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분들에게 양심은 동작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자조적인 질문을 던지며 길을 이어간다. 전면으로 보이는 커다란 다리는 부산 신항과 육지를 잇는 남해고속도로의 일부인 남문 대교이다.

 

얼마간 중장비와 덤프트럭들이 오가면 없어질 해안선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남문동 시가지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남문동 시가지를 가로질러 지나는 길, 길은 아파트 숲 속으로 점점 더 들어간다.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곳을 지날 때는 온통 그늘 속이라 서늘함이 몰려온다. 햇빛이 들어오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길을 이어간다.

 

길은 이 지역을 관통하여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동천을 건넌다. 웅천, 곰내라고도 불렸으나 웅천 읍성 동쪽으로 흐른다고 불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우리는 아들도 있으니 단지 내 상가에서 아귀찜으로 조금은 넉넉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고 남은 아귀찜은 포장해서 집까지 가져왔다는...... 점심 식사를 끝낸 우리는 우회전하여 웅천 읍성으로 가야 했는데 길건너에는 특이한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이름하여 세스페데스 공원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함께 종군 신부로 조선땅을 처음 밟은 유럽인인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 신부를 기념하는 공원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인 세스페데스 신부를 기념하여 스페인 정부에서 기증한 청동비도 있고 여러 가지 스페인 소개 자료도 있지만, 공원 한쪽에서 기와 가마 유적도 소개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웅천은 도자기 가마가 많이 있던 곳으로 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간 현장이기도 하다. 아무튼 세스페데스 신부는 일본 내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군인들과 함께 조선 땅을 밟은 것이고 전쟁 이후에는 일본으로 돌아가 선교 활동을 하다가 일본으로 끌려온 2천 명이 넘는 조선인들을 구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웅천 읍성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2번 국도 진해 대로 아래를 지나면 멀리 주기철 목사 기념관이 보이지 시작한다.

 

진해 출신의 장로교 목사로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 거부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1936년 평양 산정현교회에 초빙목사로 부임한 이후 두 번에 걸친 투옥과 고문으로 감옥에서 순교했다. 원래 이름은 주기복이었는데 세례를 받은 이후에 "기독교를 철저히 믿는다'는 의미로 주기철(朱基徹)로 바꾸었다고 한다. 1939년 평양노회로부터 신사참배 결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사직을 파면당했다고 하니 헛웃음만 나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짜들이 판치는 세상이 씁쓸하다.

 

주기철 목사 기념관 바로 앞에는 웅천 읍성이 자리하고 있다. 세종 당시 축조한 성이라고 한다. 부산포와 함께 왜인들에게 개방하였던 웅천의 내이포가 바로 이곳이다. 제포라고도 했고, 이 두 항구를 포함하여 울산의 염포도 개항했는데 이를 삼포 개항이라 한다. 성의 축조는 이런 배경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왜구의 침입이 잦고, 대마도가 지척이니 당연한 조치일 수도 있겠다 싶다.

 

길은 읍성을 관통하여 웅천 시장으로 나아간다. 웅천 읍성 저잣거리라고 안내하고 있는 캐릭터가 재미있기도 하고 구시가지 길에서 묻어나는 오랜 역사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도 하다.

 

4일, 9일 오일장이 열리는 아담한 웅천 시장은 장날이 아니라 한산하다. 알고 보면 웅천이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있는데 이곳 진해구 웅천동과 함께 보령시 웅천읍, 여수시 웅천동도 있다.

 

남파랑길은 다시 2번 국도 진해 대로 아래를 지난 다음 우회전하여 길을 이어간다. 아들과 함께 걷던 우리는 신발을 잘못 선택한 대가로 발바닥에 심한 물집이 잡힌 아들을 계속 데리고 걸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비상조치로 아들은 7코스 종점 인근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카페에서 기다리도록 일러 주고 우리 부부는 가던 길을 이어서 걸었다. 아무리 젊어도 오래 걷기는 기본적인 준비가 필수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도로를 따라 걷는 남파랑길은 "괴정" 방면의 좌회전하여 길을 이어간다.

 

괴정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제덕 마을 끝자락을 따라 제덕만 매립지 방면으로 걷게 된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한창 공사 중이다. 매립지는 원래는 1995년 수산물 가공단지 건설을 목적으로 매립 허가를 받았지만 이후에는 주류회사 무학이 권리를 넘겨받아 매립을 완료했고  이후에는 용도 변경을 통해 주거지와 상업 시설이 들어선다고 한다. 매립지 입구 사거리에서 6코스를 마무리하고 7코스를 바로 이어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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