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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나누어 걸어온 해파랑길 걷기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다. 장마를 앞둔 시기, 비가 살짝 갠 며칠 사이에 남아 있던 3개 코스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지난번 여행에서 따뜻한 청년을 만났던 가진리에서 걷기를 시작하여 남천을 건너 동호리에 이른다.

 

중부 지방에서 고성군으로 가는 방법을 여러모로 찾아보았지만 자동차로 가지 않는 방법으로는 서울의 동서울 터미널을 거치는 방법이 제일 좋았다. 며칠 전부터 예약할 수 있는 좌석이 없어지는 모습이었는데 실제 당일에도 동서울을 출발하는 버스는 좌석을 꽉 채웠고 혹시 예약해놓고 출발시간까지 오지 못하거나 취소하는 좌석에 타려고 버스 앞에서 줄 서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KTX로 서울역에서 내려 전철을 타며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강변역에 내리며 화장실도 다녀왔는데 버스 출발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다. 다행히 옆지기가 서두른 덕택에 늦지 않게 버스에 승차할 수 있었다.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옆지기가 왜 이렇게 서두르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 착각 때문이었다. 홍천을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차했고 간성 이후로 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늦은 시간 간성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터미널 근처 모텔에 숙소를 잡아 놓고 순댓국으로 출출함을 달랬다. 식당은 주말을 맞아 퇴근한 군인들로 회식하느라 시끌벅적했다. 이곳이 전방임을 분위기로 실감하는 상황, 이제는 아들도 군을 제대한 상태라 주말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음날 아침 숙소 창문으로 바라본 간성의 아침 풍경은 어제저녁 간성읍내의 시끌벅적함은 사라지고 그저 고요할 뿐이다. 붉게 떠오른 태양 빛에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를 가져본다. 숙소를 나오며 입구에 걸린 공중위생 서비스 평가표를 보며 황색 등급 저게 뭐지? 하는 의문을 가졌다. 저렴한 비용의 숙소이니 황색이면 나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방 자치 단체에서 공중위생법에 따라 2년 주기로 숙박업, 이용업, 미용업, 목욕장업, 세탁업 등에 대해 평가를 수행하는 것이고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이면 최우수로 녹색등급, 80점 이상이면 우수로 황색등급이고 그 아래는 백색 등급이었다. 황색 등급이니 우수 등급이었던 것이다. 

 

숙소를 나오는 길에 만난 제비 한 마리가 보안 장비 위에다가 집을 지으려 하는지 사람이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도망가지 않는다. 흥부놀부 이야기가 아니어도 제비는 사람과 아주 친숙한 조류이다. 제비가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공감이 되는 것은 제비의 천적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이유이고, 뻐꾸기의 탁란을 피할 수 있다는 것도 공감이 되었다.

 

진부령으로 가는 방향의 간성 읍내의 모습이다. 동서울까지 가는 버스는 대진리에서 출발하여 거진, 간성을 거쳐 46번 국도를 따라 진부령을 넘고 백담사, 홍천을 거쳐 서울로 들어간다. 버스에 따라 경유지가 적으면 30분 정도 빨리 갈 수도 있다. 터미널 인근 김밥집에서 아침 식사를 든든히 하고 김밥도 넉넉히 구입해서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그런데, 숙소에서 너무 일찍 나온 덕택에 가진항으로 가는 버스 시간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서 택시들이 줄지어 서있다. 간성 터미널에서 가진항까지 거리도 멀지 않은데 택시를 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 30분이라도 아끼자는 마음에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분은 우리가 타자마자 쉬지 않고 수다를 쏟아낸다. 요즘 애들은 돈이 아까운지를 몰라, 버스를 타지 않고 택시를 타고 속초를 나가, 그게 말이되요? 학생들도 군인들도 주말이면 택시를 타고 속초를 나간다는 말이었다. 말씀인즉,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버스도 많은 편이고 그 버스들이 모두 속초까지 가는데 버스는 타지 않고 값이 비싸도 택시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이 조금 이른 시간이라서 그렇지 택시를 잡기도 어렵다는 말씀이었다. 아마도 가진항까지 가는 택시 값도 물어보고 어렵사리 택시 승차를 결정한 우리 때문이 아닌가 싶다.ㅎㅎ

 

택시를 내려 가벼운 마음으로 가진항에서 해파랑길 48코스 걷기를 시작한다. 

 

장마가 예고된 가운데 이곳은 쾌청한 하늘이다. 이른 아침 우리보다 앞서 걷기에 나선 분도 계신다. 길은 가진리 마을을 가로지른다. 

 

마을길 화단에 송엽국이 수줍게 자리를 잡았다. 잎이 소나무 잎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보라색 꽃은 6월에서 9월까지 핀다.

 

가진 해변길 도로를 따라서 길을 이어간다. 별도의 인도가 없기는 하지만 한적한 도로라서 다행이다.

 

가는 길에 독특한 디자인의 카페가 있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사각형의 단순한 디자인보다는 녹슨 철의 빈티지한 느낌을 간판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적으로 적용했다는 것이다. 호기심에 정보를 찾아보니 나의 착각이 많이 있었다. 녹슨 철, 또는 부식 철의 느낌을 주기 위해 철판을 사용해서 표면에 특수 처리를 하는 줄 알았다.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에 장식을 위해 부식 처리하는 것과 같은 비슷한 공법이 동원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철 부식 페인트를 사용한 것이었다. 굳이 철판이 아니어도 벽면에 철 부식 페인트 하도를 칠하고 상도 처리하면 깔끔하게 시공이 완료되는 것이었다. 만약 녹슨 철판을 달아 놓는다면 녹물이 뚝뚝 떨어졌을 것이다. 참 모르면서 얕은 지식으로 착각하는 것도 많다. 두꺼운 철판을 레이저로 구멍을 뚫어 글자를 새기듯 나무판자에 구멍을 뚫어 글자를 파내고 철부식 페이트로 처리해 놓으면 정말 깜쪽같다.

 

가진리에서 남천으로 가는 가항길 도로는 그냥 직선이다. 도로에 그려진 선, 도로를 따라 세워진 전봇대와 전선, 보행자를 위한 난간이 멀리 앞에서 모두 만난다. 미술 시간 원근법을 적용해서 그림 그리기 딱 좋은 풍경이다. 

 

죽왕면 가진리에 향목리로 넘어가는 길에서는 건물들은 사라지고 푸른 들판과 소나무 숲이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논의 벼와 수로의 잡초가 솔숲을 배경으로 푸른 언덕을 상상케 하는 풍경을 만든다.

 

간성읍내를 가운데 두고 북천과 남천이 각각 위아래를 흐르는데 그중에 남천을 먼저 건넌다. 도로 옆 축산 농장을 위해 설치된 투명 방음벽에서 독수리 사진을 붙여 놓았다. 버드 세이버라 불리는 스티커인데 그리 효과가 좋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새들에게 여기에 와서 부딪히지 말고 다른 곳으로 도망하라는 인간의 배려인 듯 보이지만 사람들의 생각 같지 않다. 풍력 발전과 태양광 발전 장치가 있는 가로등이 설치된 다리를 지나 남천을 넘는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남천의 상류와 하류의 모습이다.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풍력 발전기는 쌩쌩 돌고 있지만 한컷 남기기에도 버거울 정도다. 

 

다리로 남천을 건너면 좌측으로 돌아 다리 아래를 통과해서 길을 이어간다. 이제는 간성읍 동호리를 걷는다.

 

다리 아래를 빠져나오는데 유실수 한그루가 길가에서 발걸음을 붙잡는다. 나무의 수형은 복숭아처럼 보이고 잎사귀는 사과나무와 비슷한데 열매에 사과와 같은 꼭지가 없다. 자두일까 싶은데 자세히 보아도 애매하다. 그렇다고 따먹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얏 나무 아래에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하지 않았는가! ㅠㅠ

 

남천이 동해와 만나는 지점에 생긴 동그란 형태의 모래톱도 특이하다.

 

동호리 해변에는 체육 시설과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간성 읍내 아파트 단지에서 1.5Km 거리이니 주민들의 편의 시설과 관광객들을 위한 포토존이 함께 있는 풍경일 수밖에 없다. 멀리 북쪽으로는 해파랑길 48코스의 종점인 거진항도 눈에 들어온다.

 

해파랑길에서 만나는 동해의 은빛 물결은 언제 만나도 반갑다. 아침 해파랑길에서만 누리는 특권이다.

 

동호리 해변 공원을 벗어나 동호리 해변 숲길로 향한다. 이곳 해당화는 꽃이 지고 열매를 맺고 있다. 지난 여행만 해도 해당화가 꽃이 만발했었는데 이제 꽃이 지고 열매를 맺었다. 흐르는 시간은 해당화에게도 나에게도 공평하게 흐른다.

 

한때는 멸종 위기종이었던 해당화가 이제는 식용으로도 약용으로도 쓸모가 많은 열매가 맺혀도 별 관심을 받지 못한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다행일지, 몸에 좋다며 뿌리까지 캐가는 사람들의 열렬한 관심이 좋을지 웃픈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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