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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드룩(Landruk) 끝자락에서 톨카까지는 3Km 내외로 가끔 오르막 산길로도 가지만 대부분은 완만한 큰길을 걷습니다. 지도에서 보듯이 중간에 큰길과 작은 산책로가 갈라졌다 만났다 하므로 어떤 길을 선택해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산책로로 가면 거리가 조금 짧아질 뿐입니다.
란드룩에서 톨카로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서 만난 환상적인 풍경입니다. 페디나 칸데에서 트레킹을 시작하여 란드룩을 거쳐 촘롱으로 가는 트래커들이 트래킹 초반에 누릴 수 있는 전경이겠지요. 트래킹 초반에 이런 풍경을 만나니 이후 일정이 얼마나 설레었을까요? 촘롱에 가까이로 가면 볼 수 없는 풍경을 이곳에서 누립니다. 란드룩으로 오는 길을 찾지 못하고 간드룩에서 그냥 포카라로 빠졌으면 저희는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길 찾기 하기를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물소들이 수확이 끝난 다랭이 논에서 남은 풀을 뜯고 있습니다.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평화롭습니다.
맑은 가을 하늘에 얼마간의 흰구름이 오후의 햇살과 어울리면서 신비한 광경을 연출합니다. 흰 눈을 머리에 쓰고 있는 고봉들이 마치 천상의 세계처럼 보입니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에는 지금이 겨울을 앞두고 있는 11월 말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꽃은 만발하고 녹음은 여전했습니다. 아무리 위도가 낮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해발이 1,600m가 넘는 고도임에도 날씨가 이 정도이니 이곳 사람들이 이렇게 산중에 논과 밭을 만들어 가며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지역을 지나는데 길 바로 옆에 있는 민가에서 잘 차려입은 성인 여성 한 명이 갑자기 저희에게 "기브 미 초콜릿!" 하는 것이었습니다. 으잉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지금 들은 말이 실제야? 하며 당황스러웠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에게 하던 멘트를 이곳에서 듣다니,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후로도 여러 가지 멘트를 쏟아냈는데, 만약 그녀와 우리 사이에 언덕이 없었다면 우리는 참 많이 곤란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직전에 만난 소녀들은 우리의 허세를 깼다면 이곳에서 만난 그분은 사람 사는 곳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곳이나 저곳이나 큰 차이가 없다 하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네팔은 전형적인 몬순 기후로 10월에서 5월까지는 건기, 6월에서 9월은 우기입니다. 11월 말 한창 건기이지만 높은 지대에도 곳곳에 물이 많습니다. 이런 물 때문에 그 수많은 다랭이 논에서 작물을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톨카(Tolka)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안나푸르나 쪽의 광경도 조금씩 가려집니다.
톨카로 넘어가는 출렁다리가 최근에 새로 지어진 모양이었습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여러 산장들을 가로질러 길을 가게 되고 지금까지 걸어온 큰길을 따라 계속 가면 조금 돌아서 톨카 마을 위에서 산책로와 합류하게 됩니다. 사실 이길이 없다면 산장들 영업은 큰 차질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출렁다리에 올라서면 아래로 이전에 사용하던 다리와 계단들을 볼 수 있습니다. 새 출렁다리로 길이 더 단축된 것입니다. 계단을 올라 톨카 마을로 진입합니다.
톨카 마을에 올라서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쪽 풍경과 저희가 건너온 출렁다리의 모습입니다. 저희가 여러 산장이 모여있는 톨카(Tolka)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각이었는데 막상 이곳에 도착하니 숙소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와이파이도 되고 핫 샤워도 된다며 우리 집으로 들어오라는 아주머니의 호객 행위도 있었지만 마음에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옆지기의 마음에 드는 산장이 없었습니다. 시간도 조금 이르고 길을 따라서 드문 드문 산장이 이어지니 조금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톨카 마을을 통과해서 언덕을 올라오면 다시 큰길과 합류합니다. 큰길과 합류하는 곳에는 히말라야 중학교(Shree Himalaya Secondary School)가 있었습니다. 네팔은 초등 7년, 중등 3년, 고등 2년의 학제이기는 하지만 사립학교 중심으로 초등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여전하다고 합니다. 많은 NGO들이 초등 교육을 돕고는 있지만 결국 나라가 부유해져야 최소한의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줄어들 것이고 연속성 있는 지속 가능한 교육이 될 것입니다.
히말라야 중학교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배구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란드룩 초입에도 마을 공동의 야외 배구장이 있었는데 이곳에도 배구장이 있었습니다. 이거 뭔가 있구나 하고 자료를 찾아보니 네팔은 2017년에 배구를 나라의 스포츠, 즉 국기(國技)로 선언했다고 합니다. 실내 체육관처럼 화려하게 공간을 마련하지 않아도 작은 공간으로도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청소년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므로 나라 차원에서 배구를 국기로 선언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세계적인 랭킹을 높이거나 대회 우승에 온 신경을 쏟지만 최우선으로 국민의 건강을 위한 배구의 국기 선언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구를 나무 바닥이 깔린 실내 체육관에서만 하란 법은 없으니까요. 한 가지 드는 우스운 생각은 힘센 친구가 잘못해서 공을 세게 쳐서 울타리를 넘기면 공 찾기가 쉽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산중에서 동그란 배구공이 얌전히 있을 리가 만무하니까요.
다시 만난 갈림길. 표지판에는 이쪽으로 가면 좀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말을 써 놓았습니다. 내심 이 길은 산장에 들러가라는 영업 전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속는 셈 치고 산을 오릅니다. 실제 지도를 보면 오히려 큰길이 빠를 수가 있습니다.
큰길보다는 조금 느리고 힘들 수 있지만 산길을 올라오면 얻게 되는 선물과 같은 풍경이 있습니다. 란드룩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한 손에는 낫을 들고 어깨에는 바구니를 메고 누런 밭을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한 폭의 유채화와 같았습니다. 이젤을 세워놓은 당장이라도 붓을 들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풍경입니다.
길가에 세워진 작은 사원 앞을 지프 한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비씨클레타"하는 소리에 사이클을 피하면 되고, ABC 트레킹에서는 가끔씩 지나가는 당나귀나 큰 짐을 이고 가는 포터를 피하면 되지만 란드룩 이후에는 지프를 피해야 합니다.
전방으로 보이는 수많은 다랭이논과 민가들의 모습을 보면 그냥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비탈에 다랭이 논과 집을 짓기 위해 수많은 세월과 많은 이들의 땀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히말라야 산중에서 마지막으로 묵은 나마스떼 투어리스트 게스트 하우스(Namaste Tourist Guest House)입니다. 지도에는 호텔 나마스떼라고 적혀 있더군요. 길가에 있는 쉼터에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어떤 산장으로 가야 하나 잠시 고민했습니다. 입구에는 보랏빛 꽃이 만발하고 있었고 정원은 화려했습니다. 표지판에도 이 근처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비쌀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오늘 하루 걸은 양도 많고 오후 3시 정도이니 쉬어 갈만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숙박비도 음식도 비싼 가격은 아니었습니다. 나름 만족한 숙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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