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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단다에 도착하면 트레커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287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출렁다리입니다. 엄청난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워낙 다리가 길다 보니 다리 자체로도 내리막과 오르막이 있었습니다. 아래가 뻥 뚫린 철제 다리는 비가 올 때면 미끄러워서 공포감이 극대화되겠구나 싶었습니다.

 

트래커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현지인들을 위한 다리인 만큼 다리의 이용자는 사람뿐만 아니라 짐을 나르는 당나귀도 있습니다. 다리 앞에 있는 표지판이 인상적입니다. 당나귀가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는 멈추어서 당나귀가 다리를 모두 건널 때까지 기다리라는 안내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리를 건너다가 다리 중간에서 당나귀를 마주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아슬아슬한 장면입니다. 실제로 나귀를 모는 마부는 사람이 없을 때를 골라 당나귀들을 몰아서 다리를 건너더군요.

 

다리가 시작하는 비탈에는 여러가지 꽃들이 만발하고 있었습니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다리를 건넙니다. 다리 아래로 아찔한 계곡의 모습이 펼쳐지는데 혹시나 떨어뜨릴까 봐 카메라를 꺼내는 것은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다리를 무사히 건너서 옆지기를 기다리며 반대편 지누단다를 바라봅니다. 다리 하나 건넜는데도 거리가 엄청납니다.

 

다시 돌아보면 이 표지판을 보며 길을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분명 뉴 브리지와 란드룩으로 가는 이정표를 표시해 놓았는데 화살표의 방향이 오던 방향을 거꾸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의문점을 던지고 길을 바로 잡았다면 이 글의 제목과 같은 "란드룩 찾아 삼만리"란 글은 등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길을 놓치고 엉뚱한 길로 갔던 것입니다. 엄청난 규모의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마침 어제부터 자주 마주친 인도인 트래커들이 있었는데 그냥 그들을 따라 걸었던 것입니다. 바람에 표지판이 돌아갔나? 했는데 표지판은 정상이었던 것입니다. 정교하지 못한 계획 단계의 실패와 성급함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물론 이 당시에는 이 문제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다리 끝에서 우리(Uri), 간드룩(Ghandruk), 뉴 브리지(New Bridge)로 가는 세 갈래 길이 있고 일단 각 갈래 길로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길을 잘 선택해야 했던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표지판처럼 다리를 건너면 뒤로 돌아서 다리 아래 길로 갔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걸 모르고 앞선 인도인 친구들을 쫓아갔던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긴 다리를 건넌 흥분감에 길을 잘못 가는 줄도 모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걸었습니다.

 

길을 얼마간 오르자 다리 위로 당나귀 한 무리가 출렁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여러 번 다리를 건넜는지 당나귀들은 무심하게 다리를 건넙니다. 표지판의 안내처럼 당나귀가 다리를 건널 때는 마부 빼고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네요. 

 

조금 거리가 떨어진 장소에서 바라보는 출렁다리의 규모는 엄청납니다. 절벽 위로 이어진 다리는 멀리서 보니 더 아찔하네요.

 

산 중턱에 해당하는 높이에 오르자 산 기슭에 자리한 지누단다와 함께 멀리 안나푸르나 남봉을 배경으로 한 멋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사실 촘롱 이후 MBC를 지나 ABC 근방에 이를 때까지 계곡을 따라가는 경로에서는 안나푸르나 남봉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끔 보이는 것은 마차푸차레 뿐입니다. 오히려 멀리 떨어지니 봉우리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오는군요.

 

당나귀들이 저희를 따라잡았습니다. 괴성에 가까운 마부의 이상한 소리와 무서운 채찍질을 맞으며 묵묵히 길을 갑니다. 지금은 빈 몸이지만 돌아갈 때는 무거운 모래가 저들의 등에 올려지겠지요?

 

그런데 저희가 가는 길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바로 이 시점부터였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계곡을 따라가다가 뉴브리지(New Bridge)에서 강을 건너야 하는데 이상하게 길은 계속 산 중턱을 오르고 있었고 계곡과는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비상 시점이다 생각하고 GPS를 작동시키고 지도 앱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해 보니 원래 계획한 경로와 방향은 맞지만 계획한 경로상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리가 조금 떨어진 위치를 걷고 있었습니다. 지도 상에서 경로를 회복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 잘못되기는 했는데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라는 것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일단 가던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이때 다시 출렁다리로 돌아가는 판단을 했더라면 그나마 덜 힘들었을 텐데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질 못했으니 결단도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저 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가던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길과 배경, 길 주변의 풍경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은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가로막힌 길에서 다시 만난 인도인 친구들의 뒷모습과 큰길에 표시된 등산로 안내 화살표는 우리가 가는 길을 계속 가도 되나 보다 하는 잘못된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길을 헤매는 구렁텅이로 더 깊이 빠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멋모르고 산을 깎아 만든 흙길을 얼마간 더 걸었을까요? 좀 더 다듬어진 길이 시작되는 부분에 현지인들이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트래커들을 상대하는 장사치들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물건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희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었습니다. 란드룩을 거쳐 톨카로 간다고 하니 이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길로 가면 간드룩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길이 왜 계곡을 따라가지 않고 산 중턱으로 올라왔는지 제대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정확한 현 위치 파악과 문제 해결 방법은 몰랐지만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분들은 그곳까지 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방향이 맞다면 타고 가라고 길을 물어본 것이지요. 나중에 파악을 해보니 이 길을 계속 가면 나야풀에서 간드룩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과 만나는 길이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 분들은 저희가 란드룩과 톨카를 간다고 하니 난감해하시더군요.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 아래로 보이는 계곡을 향해서 길을 없더라도 그냥 뚫고 내려가고도 싶었지만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기에는 엄청난 절벽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단 계속 걸으면서 이후 여정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간드룩에서 바로 포카라로 나가면 톨카와 페디까지 가는 여정이 없어지면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도 난감했습니다. 몸이야 편하겠지만 관광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것도 아니고 관련 계획도 세우지 않았으니 막막했습니다. 그래도 포카라까지 가면 어떻게 방법이 생기겠지 하는 마음과 포카라 숙소에서 온수로 샤워도 하고 편안하게 하루 이틀을 보낼 상상도 하면서 계속 걸었습니다.

그런 저희 앞으로 가방을 메고 있는 한 학생이 지나쳐 갔습니다. 가느다란 실마리 조차도 간절하던 저는 그 친구에게 혹시 란드룩과 톨카로 가는 길을 아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서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배낭을 메고 거북이걸음을 걷는 저희가 그 친구의 걷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자 가끔씩 쉬어 가는 센스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계곡 쪽으로 갈라진 길을 만났는데 그 길을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꺾어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건너편 산을 가리키면서 저곳이 란드룩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길이 갈라지는 초입에 세워져 있는 푯말에도 뉴 브리지(New Bridge)가 적혀 있었습니다. 일단, 란드룩을 눈으로 보았고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길을 알려준 친구에게 저희가 줄 수 있는 것은 옆지기가 건네준 초코바와 땡큐! 하는 인사뿐이었습니다.

 

란드룩 가는 길을 찾아 걷는 길 도중에는 장작을 위해서 나무를 자르고 있는 한 식구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둘이서 양쪽에서 톱을 잡고 나무를 자르고 있는 모습은 저에게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탕개톱이 두 사람이 양쪽에서 톱을 잡고 자르는 도구인데 우리나라의 현대 시장에서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요즘은 저럴 필요가 있다면 전기톱이나 엔진톱을 사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여전히 Two Person Saw나 Cross Cut Saw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란드룩 가는 길을 찾아 걷는 길은 지금까지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안나푸르나 남봉을 바라보면서 걷는 길입니다.

 

문제는 한참을 걸어도 계곡 쪽으로 만나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다 보니 지도 앱에서도 그냥 숲 속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무작정 따라오던 옆지기도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내리막 길이니 조금 있으면 계곡과 만날 것이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목표점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길을 계속 헤매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몸은 점점 더 쳐지고 있었습니다. 길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휴식도 챙기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가 길이 다시 오르막으로 전환되는 시점이 되자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도 앱으로 보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강을 건너는 다리도 있었습니다. 오르막길 오르기를 주저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는데 계곡 쪽으로 정식 길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습니다. GPS 상의 위치도 비슷하니 과감하게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10여분 내려갔을까요? 저희 눈 앞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던 진짜 길이 나타났습니다. 드디어 길을 찾은 것입니다.

 

이제는 지도 앱에 있는 길을 따라 걷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길 옆으로 모디강(Modi River)도 보이고 앞쪽으로는 강을 건너는 다리도 보입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길을 알려준 학생도 고맙고 오르막 길을 계속 가지 않고 없는 길을 뚫고 길을 찾아 내려온 과정도 감사했습니다.

저희가 길을 헤맨 과정을 돌아보면 위의 그림과 같습니다. 간드룩을 통해서 톨카, 페디를 걷는 경로를 포기하고 포카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지금도 지도에 없는 길을 네팔 소년을 통해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람 흔적을 찾아 계곡 쪽으로 내려와서 길을 찾은 것입니다. 정상적이라면 뉴 브리지 마을에서 강을 건너서 길을 갔을 것입니다. 이 정도에서 길을 찾았으니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저희가 만난 길을 계속 가면 사람들이 포카라로 돌아갈 때 많이 이용하는 시와이(Siwai)로 가게 됩니다. 작은 표지판에도 그쪽으로 시와이로 가면 버스를 탈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란드룩을 거쳐 톨카까지 갈 예정이므로 좌측으로 꺾어져서 출렁다리를 건너는 경로로 가야 합니다. 다리는 건너면 히말 파니(Himal Pani)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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