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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코 고개에서 오늘 남은 길 전체를 바라보며 점심도 먹고 푹 쉬다 보니, 고개를 내려가기도 전인데 벌써 "다 왔다!" 하는 마음에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에는 여유가 넘칩니다. 시간상으로도 거리상으로도 여유를 가질 만 하긴 합니다.

 

마음에 여유가 넘치니 자연스레 눈에는 더 많은 알프스의 야생화가 들어 옵니다. 점나도나물(Cerastium)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식물의 한 종류입니다. 꽃잎이 두 갈래로 갈라져 쥐의 귀를 닮았다 해서 영어로 "alpine mouse-ear"라고도 합니다. 이쁜 꽃입니다.

 

가끔은 엉겅퀴 꽃처럼 우리들판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꽃들도 만납니다. 왠지 반가운 느낌입니다.

 

7장의 잎을 가진 식물도 앙증맞은 꽃들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 들판에서는 흰색 꽃을 피우는 토끼풀이 대부분인데 여기는 보라색 클로버 꽃이 많네요.

 

부레 끈끈이대나물(bladder campion). 동물의 방광이나 물고기의 부레를 닮아 붙여진 이름인 모양입니다. 나물이라는 이름답게 여린 잎은 나물로 먹는 답니다.

 

보라색 줄무늬를 가진 작은 꽃들도 풀숲에서 존재감을 뽐냅니다. 소가 올라와서 몇입 먹으면 꽃이야 없어지겠지만 그때까지라도 파이팅! 하며 길을 내려갑니다.

 

길을 내려가다 보니 하얀 꽃들이 군락지를 이루어, 가는 이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정말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황새풀(Eriophorum)입니다. 황새풀도 여러 종이 있는데 우리는 황새의 자태를 닮았다 해서 황새풀로 이름을 지은 모양인데 영어권에서는 목화를 닮았다고 코튼 글라스(Cotton Grass)라 한답니다.

 

한참 야생화를 보다가 계곡에 남아있는 잔설을 보니 지금이 겨울인지, 봄인지, 여름인지 헷갈립니다.

 

경사진 산을 거의 다 내려와 마을 근처에 이르니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때 만난 찔레꽃과 비슷한 꽃을 만났습니다. 보랏빛이 도는 이 꽃은 진한 향기를 가진 하얀 찔레꽃과 유사한 품종이기는 하지만 이름이 "개장미, Dog Rose(Rosa canina)"입니다. 

 

이제 미아주 산장 근처 마을을 지납니다. 표지판 양쪽의 크지 않은 나무들은 소 울타리를 쳐 놓은 것입니다. 나무 사이로 가느다란 철사 같은 것을 연결해 놓았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것으로 소를 통제할 수 있지? 했습니다. 알고 보니 전기가 흐르는 전기 철책이었습니다.

 

구름에 가려진 미아주 봉우리(Dome de Miage, 3,673m)가 서슬 퍼렇게 위압감을 내뿜습니다.

 

드디어 미아주(Miage, 1,570m)에 도착했습니다. 트리코 고개까지 두시간이라는데 내리막이니 부담없이 내려왔지, 이 길을 거꾸로 올라가는 것이었다면 거의 죽음이었겠다 싶습니다.

 

바로 옆으로 계곡물이 흐르는 미아주 산장(Chalets de Miage, 1,559m)입니다. 산장 분위기는 여유로움 그 자체입니다. 

 

산장에서 볼일을 해결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멀리 방목하는 소들도 있었지만 계곡물 주위로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도 몸의 열기도 식힐 겸 개울물에 발을 담그기로 했습니다. 

 

개울 주변에는 군데군데 소들이 남겨 놓은 폭탄들이 있기는 하지만 잘 피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 돗자리를 하나 챙겨 오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맨발을 빙하수가 흐르는 개울에 담그니 온몸으로 흐르는 한기가 짜릿할 정도였습니다. 몇 초를 견디지 못할 정도로 담갔다 뺏다를 반복하며 상쾌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온 아이가 개울에 돌 던지기 놀이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멀리서 들려오는 소들의 워낭소리,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병풍처럼 서 있는 알프스를 감상하는 이 시간은 신선 부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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