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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뚜르 드 몽블랑) 걷기는 "고개 넘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고개 하나를 넘으면 하루의 여정이 끝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이탈리아와 스위스, 스위스와 프랑스가 만나는 국경도 모두 고개입니다. 고개를 오를 때는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달래며 자신과의 싸움을 묵묵히 감당해야 하지만 일단, 고갯마루에 올라 서면 탁 트인 전경과 함께 해냈다는 쾌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번 TMB 걷기에서 처음으로 만난 고개인 트리코 고개(Col de Tricot, 2,120m)에서 가진 휴식은 정말 꿀맛과 같이 달콤했습니다. 

 

웃통을 시원하게 벗어던진 채로 망원경으로 전망을 감상하고 계신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도 저 나이에 자연을 만끽하며 도전하고 있을지? 

 

휴망 계곡(Combe des Juments)과 트리코 계곡(Combe de Tricot)을 거쳐 우리가 걸어 올라온 길. 올라와서 바라보면 까마득할 뿐입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비슷하죠. 순간순간 내 발 앞을 바라보며 오르막을 오르듯 인생의 문제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인가 우리가 지나온 길은 그것이 기쁘던 슬프던 기억 속에서 까마득해집니다.

 

 

웃통을 벗은 또 다른 커플. 귀찮더라도 조금만 걸으면 사람들 방해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오붓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휴식이 끝나면 내려갈 고갯길입니다. 누군가는 힘들게 올라올 길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갈 길입니다. 산 아래에는 미아주 산장도 보입니다.

 

날씨가 워낙 좋아서 먼산까지 막힘이 없습니다. 산 아래 미아주 산장을 지나 바로 앞에 보이는 언덕을 오르면 오늘의 목적지인 트휙 산장(Auberge du Truc)이 있습니다. 목적지가 보이니 마음에 한층 여유가 생깁니다.

 

점심 식사는 아침에 찬물을 부어 놓았던 즉석식 비빔밥입니다. 아침에 찬물을 부어도 점심 식사쯤에는 먹을만한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아직은 문제가 없었지만 끼니마다 계속 먹다 보니 나중에는 조금씩 물리기 시작하더군요.

 

트리코 고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3대가 함께 걷고 있던 가족도 보입니다. 이 가족은 내일까지의 여정과 숙소가 저희와 동일했던 팀입니다. 중국어는 들렸지만 한국말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한참 식사를 하며 쉬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고갯마루에 올라온 것을 자축하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시끄러웠지만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미소를 짓게 하는 유쾌한 광경이었습니다. 가이드와 함께 팀을 이루어 올라온 모양인데 리더로 보이는 한 분이 나오시더니 일단 자신들을 무사히 이곳까지 인도해준 가이드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등산 스틱들을 가운데로 모으더니 자신들 나름의 구호를 외치면서 스틱을 바닥에 두들깁니다. 파이팅 넘치는 중년의 유쾌함! 이어지는 합창. 바로 "케세라세라, Qué será, será" 였습니다.

 

끝 부분을 살짝 남긴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노래를 곱씹어 보며 노래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저는 "될 대로 돼라" 느낌으로 이 노래를 기억했는데 알고 보니 "뭐가 되든지 될 것이다" 하는 어머니나 연인의 기대와 소망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산행길은 어떨까요? 라고 제게 묻는다면 "케세라세라, Qué será, será"라고 답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When I was just a little girl 
I asked my mother, what will I be 
Will I be pretty 
Will I be rich 
Here's what she said to me

 

When I grew up and fell in love 
I asked my sweetheart, what lies ahead 
Will we have rainbows 
Day after day 
Here's what my sweetheart said


Now I have children of my own 
They ask their mother, what will I be 
Will I be handsome 
Will I be rich 
I tell them tenderly

 

<후렴>
Que será, será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á, será 
What will be, will be

 

트리코 고개 우측으로 높다랗게 서있는 것은 보라세이 봉(Mont Vorassay, 2,299 m)입니다. 봉우리까지는 TMB 경로는 아니지만 등산로가 있습니다. 보라세이 봉까지 아찔해 보이는 등산로인데 모레면 비슷하거나 더 심한 곳을 걸으리라고는 이때까지는 상상도 못 하는 상황이었죠.

 

휴식을 끝내고 미아주 산장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 멀리 바위 위에 세워진 십자가가 작별 인사를 합니다.

 

눈앞으로 보이는 미아주 산장이라 아주 가까울 것 같지만 일반 걸음으로도 1시간 20분으로 거리가 상당합니다. 경사가 약간 있는 흙길의 내리막이라 미끄러져 엉덩방아 찧는 것만 조심하면 무난한 길입니다.

 

내려가는 것이 수월하다면 올라가는 것은 정반대일 것입니다. 음악을 들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봉주흐" 인사하며 내려가는데 지친 표정으로 "So easy!"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니 헉헉 거리며 고개를 올라오는 이들에게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도 하는 수 없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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