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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내리는 2025년 막바지 서울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필자의 청춘의 추억이 떠다니는 장소들을 옆지기와 조용히 다녀왔다. 이전에는 삶의 한 복판에 있던 공간인데 이제는 추억 여행지가 되었다는 점이 감회가 새롭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만 추억 여행이라는 의도 때문인지, 지리를 대충 알고 있는 까닭인지, 빡빡하지 않은 시간 계획 때문인지 마음은 충분히 가볍다.


추억 여행의 시작은 4호선 충무로역이다. 복도에서 우리나라의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배우들의 모습을 만나니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복도를 지나 지상으로 올라가면 대한극장이 있었지만 66년 역사의 대한극장은 2024년에 문을 닫았다. 대한극장, 스카라 극장, 피카디리 극장, 단성사, 서울극장, 명보극장 등 극장 거리를 쏘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동국대 후문으로 가려면 4호선 충무로역을 나와서 퇴계로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다가 서울침례교회가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서애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퇴계로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일제 잔재 청산의 의도로 퇴계 이황의 호를 따라 붙였다고는 하는 데 이황이 이 근처에 살았다는 설이 있는 정도라고 한다. 반면 서애길은 서애(西厓) 유성룡의 집터가 위치하고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서애길은 동국대학교 후문으로도 이어진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으스스한 날씨 속에 뜨끈한 순두부로 이름 점심을 해결하고 여정을 시작한다. 대학교 앞이라 그런지 음식값도 착했다.


후문 쪽으로 올라가면 공대 건물들이 있는데 전공 강의가 있는 날이면 캠퍼스를 가로질러 이곳까지 내려와야 했었다. 대학 축제가 열릴 때면 이곳으로는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곤 했었다. 직장 퇴근 후에 수업을 듣는 입장이라서 축제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축제 때면 교수님의 단축 수업 덕분에 길을 내려가 중국집에서 회식을 했던 기억도 스쳐 지나간다. 공대 건물에 들어가니 외국인 교수님들이 이름이 한둘이 아니었다.


캠퍼스를 가로지르면 만나게 되는 동국대의 상징인 흰 코끼리. 부처님의 탄생 설화와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많이 드나들었던 학술관을 마지막으로 짧은 캠퍼스 추억 여행을 마무리한다. 대학원 졸업식이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었던 나무가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어서 고맙다. 마음은 괜히 싱숭생숭하다.


동국대에서 3호선 동대입구역 쪽으로 내려오면 지하철 입구에 남산 산책로 입구 표식이 등장한다. 우리의 다음 추억 여행지인 남산이 바로 연결된다. 남산 산책로는 장충단 공원 앞에서 시작하여 장충체육관 뒤를 돌아 남산을 오른다. 국립극장을 지나서 서울타워 앞을 지나면 산을 내려가서 남산 도서관을 지나 백범광장 앞에서 여정을 마무리하는 코스이다. 주말을 맞이하여 장충단 공원에는 남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이 많이들 모였다. 장충단 공원은 배드민턴 선수 출신 아내를 둔 고등학교 동창이자 직장 동료인 친구 가족과 배드민턴을 치며 주말의 한때를 보내던 추억이 있는 곳이고, 장충체육관은 업무 중간에 회사 실업팀의 농구 응원을 위해 동원되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아아! 백범광장은 초등학교 시절 나무 꼭대기에 가방 걸어놓고 학교를 땡땡이치던 범행의 장소다.ㅎㅎ

우중의 걷기가 무리이기도 하고 어렵지 않은 여행의 의도도 있어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신라호텔이 보이는 동대입구역 버스 정류장에서 01A, 01B버스를 타고 남산서울타워 정류장에서 내리면 서울 타워 바로 아래까지 올라갈 수 있다. 버스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는 거의 눈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싶다. 동국대학교 방향의 전망은 신라호텔이 주인공처럼 보인다. 타워 회전 레스토랑에서 서너 번 식사를 했던 것 같은데 그 기억도 이제는 흐릿하다. 이런 날씨에 올라가면 온통 뿌연 그림이지 않을까 싶다.

회현동 방향으로는 바로 전면으로는 우리은행 본점도 보이고 빌딩숲이 이어진다. 다른 나라의 빌딩숲, 지방의 빌딩 숲 풍경도 여러 군데 만나 보았지만 왠지 익숙한 이 그림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남산팔영이라는 안내판이 있는데 남산의 여덟 가지 전망과 경치를 뜻하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에 따른 남산의 모습과 경복궁이나 한강의 전망 등을 조선 태종 당시의 정이오가 표현한 것이라 한다.


추억이 어려있는 남산타워를 뒤로하고 팔각정 방면으로 이동하여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남산 팔각정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은 남산 봉수대와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 성곽길을 따라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에는 누에머리를 닮았다는 잠두봉 포토아일랜드를 만날 수 있다. 산아래 전망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잠두봉에서는 소공동과 명동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다. 한국은행도 시야에 들어온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뒤로는 서울타워가 상당히 멀어졌고 바로 앞으로는 둥근 지붕이 인상적인 서울시 과학교육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옆지기의 일터였던 곳이기도 하다. 1970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회관으로 완공된 건물이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소풍은 남산이었고, 남산 하면 떠오르는 것은 남산 타워가 아니라 바로 과학교육원 건물이었다. 사이다와 빵으로 도시락을 싸서 남산으로 소풍 왔던 기억, 꽃시계 근처에서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과학교육원 바로 옆 계단은 많은 연인들이 가위바위보하며 올라가던 길이다.


산을 내려오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공간이 있었다. 한양 도성 유적 전시관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남산 성곽의 축조 방법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던 시기만 해도 남산 식물원이 있던 곳인데, 식물원은 2006년에 철거되었고 식물원 앞의 분수대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유모차에 태운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곳이다.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라는 안중근 의사의 글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중국 뤼순 감옥에서 일본인 검찰관에게 써준 글씨라고 한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만 과연 그와 같은 인물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서울시 과학교육원 지하로 내려가면 천체투영실에서 하루 다섯 차례 무료로 여러 가지 영상을 상영하는데 우리는 때마침 계절별 별자리를 만날 수 있었다. 둥근 천장과 뒤로 젖혀져서 누워서 보는 별자리 영상은 나름 볼만했다.


남산을 내려가는 길은 옆지기가 퇴근하던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소파로를 따라간다. 남산육교 인근에서 회현역 방면으로 이동하면 남대문 시장에 닿을 수 있다. 옆지기의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필자도 조금 더 싼 옷이나 저렴한 신발을 사려고 학창 시절부터 헤매며 다닌 곳이기도 하다.

인터넷 쇼핑이 대세인 지금의 남대문 시장은 내외국인들의 관광코스로 더 각광을 받는 것 아닌가 싶었다. 줄 서서 간식을 사 먹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이 마치 TV를 보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남대문 시장을 떠나 명동에서 영화 한 편을 보았는데 우연히 만난 19금 영화 "윗집 사람들"이었다. 하정우 씨가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작품이고 배우 이하늬 씨가 임신한 몸으로 찍은 작품이라고 한다. 생소한 어른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부부들이 같이 보면서 공감할 만한 이야기 흐름이었다. 이하늬 씨가 39 금이라고 한 이야기가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코미디"가 적절한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명동을 출발한 우리는 마지막 서울 추억 여행지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을 선택했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옆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즈음에 증권회사에 취업했다고 친구가 한턱 쏜 것이 바로 이곳 신당동 떡볶이였다. 필자의 첫 사회생활이 아닌가 싶다. 그 당시에도 음악을 트는 DJ가 있었지만 지금도 성업 중이었다. 줄 선 곳도 있고 자리가 여유 있는 곳도 있어 가게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줄 서지 않는 곳으로 들어갔다.


쫄라, 쫄쫄라 같은 옵션 없이 기본만 시켜도 둘이서 먹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아이들 없이 부부 둘이서 여유 있게 다녔던 추억 여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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