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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산 걷기를 끝내고 카페에서 넉넉한 휴식 시간을 가지며 오후 시간을 구상해 보았는데 걸어서 갈 수 있는 이천시립박물관과 관고 전통 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많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선택한 곳이었는데 두 군데 모두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설봉 공원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상단이 한옥 형식으로 지어진 이천 시립 박물관을 찾았다. 커피를 마시던 카페가 위치한 경기 도자 미술관의 전시를 둘러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호모 세라미쿠스"라는 기획전도 열리고 있었는데 옆지기는 그리 마음에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천 시립 박물관은 이천의 역사뿐만 아니라 상설 전시 공간에서는 역사를 따라 다양한 도자기 전시를 만날 수 있었다. 상상 이상의 만족도 최상의 박물관이었다. 친절한 안내는 덤이었다.

 

입구에 "유네스코 창의도시"라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공예와 민속 예술, 디자인, 영화, 미식, 문학, 미디어아트, 음악, 건축"등을 중심으로 "문화다양성 증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도시 간의 네트워크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공예와 민속 예술"로 이천을 비롯하여 김해, 청주, 진주가 등재되어 있고 음악으로는 대구, 통영이 미식으로 강릉과 전주가 등재되어 있는 식이다.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도시만의 콘테츠가 있다고 보인다.

 

이천은 삼국 시대의 문화 유적을 비롯하여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곳곳에 불교문화가 융성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천"이라는 지명이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이었다. 주역에서 유래한 것인데 큰 강을 건너면 이롭다는 의미라고 한다. 태조 왕건이 복하천을 건너기에 앞서 점을 쳤는데 나온 점괘가 이섭대천이었다는데서 유래했다니 이천의 역사가  예사롭지 않다. 복하천은 용인, 이천, 여주를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큰 일을 앞두고 포기하기보다 실행하면 어떻게든 유익이 된다는 의미가 마음에 닿는다. 안내하시는 분이 2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와 관란 순서까지 꼼꼼히 안내해 주셨다.

 

복하천, 남한강을 거쳐 한강 본류로 향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이천을 새롭게 만난다. 4세기에 백제가 처음 설봉산성을 축조하고 이후로 이곳을 차지한 고구려와 신라도 산성을 더 증축했다고 한다. 신라는 남천주를 이곳에 설치했다. 복하천은 남천이라고도 불렸다.

 

우리가 다녀온 설봉산의 설봉산성처럼 장호원읍의 설성산에 있는 산성이 설성산성인데, 신라가 축조했다고 한다. 화려한 도자기는 아니지만 그 당시에 어떻게 저런 항아리를 빚었을까? 하는 놀라움이다.

 

전시관의 끝자락에서는 다양한 사진을 통해서 이천을 만날 수 있었다. 전통 가마의 불을 넣는 장면도 눈에 들어오지만 이천쌀, 백사면의 산수유도 눈에 들어온다. 산수유하면 지리산 자락만 생각했는데 백사면의 산수유는 5백 년이 넘었고 기묘사화를 피해 낙향한 선비들이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2층 관람을 마치면 뒤쪽으로 나가는 문이 있는데 이곳에 상설 전시하고 있는 내용이 아주 훌륭했다. 외관은 평범한 한옥처럼 보이지만 도자문화실, 역사 문화실 팻말이 붙여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자 첫 전시부터 호기심을 키우고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흙이 도자기로 바뀌려면 점토처럼 모양을 유지하는 재료와 석영질의 재료, 유리질로 녹는 장석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오호! 하는 감탄을 내뱉는다.

 

전시물을 돌아보다가 삼국시대의 유물 앞에서 착각의 늪에 빠졌다. 색상도 그렇고, 정교한 장식도 그렇고 저건 틀림없이 청동 유물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아 이곳은 도자기 박물관이지! 하는 생각에 안내문을 천천히 읽어보니 삼국시대 토기였다. 와우!

 

흑유 자기, 산화철이 함유된 흙으로 빚은 석간주, 녹유 등 새롭게 만나는 도자기들에 놀라움의 연속이다.

 

비취색의 고려청자가 최고 인 줄로 생각했는데 분청사기에 대한 설명을 접하고 나니 도자기의 변천사가 새롭게 다가온다. 오래전에 교과서에서 배운 것은 역시 암기 지나지 않았나 보다. "청자를 만들던 흙으로 그릇을 빗고, 그 위에 백자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백토를 발라 구운 것"으로 우리나라의 고유한 자기라 할 수 있다.

 

분청사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백자를 접하면서는 개인적으로 오래된 편견을 깨는 시간이었다. 밋밋하고 단순한 백자가 어떻게 청자보다 후대의 발전된 자기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유교라는 사회문화적 변화도 있었지만 기술적으로도 순도가 높은 고령토와 유약의 사용, 높은 소성 온도 등 기술적 성숙도가 높았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백자가 활용된 분야는 더 놀라웠다. 노리개와 나침반, 떡살까지......

 

전시된 전통 자기들을 보다가 현대 장인들의 도지기를 접하는 느낌은 뭔가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표현하기에는 애매하다. 백자 달항아리를 보면서 필자와 같은 문외한은 그리 비싸지 않겠는데 하는 무식한 느낌을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지만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관람을 끝내면서 만난 "벅수". 마을 입구에 세우던 장승과 같은 것이라 한다. 제주의 돌 하르방이 연상된다. 실제 돌 하르방을 벅수머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이천시립 박물관 관람을 마친 우리는 설봉호 산책길을 따라 내려간다. 많은 시민들과 함께 쾌청한 가을 하늘 아래 호반 산책길을 즐기며 내려간다.

 

설봉호에서 놀고 있는 오리들, 서산으로 지고 있는 태양, 참으로 아름다운 산책길이다.

 

설봉호를 지나서 시내로 조금만 걸으면 관고 전통 시장에 닿을 수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오늘은 5일장이 열리는지 중리천로 도로를 따라서 5일장 천막들이 끝을 모르고 이어져 있다. 이천의 대표적인 전통 시장인 관고전통시장은 2일과 7일에 5일장이 서고 상설 시장의 규모도 상당한 곳이다. 중리천로라는 도로 이름처럼 하천 복개 구간이다. 이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하려 했던 것 같은데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떡볶이 국물에 어묵과 콩나물을 얹어주는 매점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콩나물 매운 어묵이라고 부르는데 옆지기도 맛있다고 했고 가격도 착했다. 시장에서 이 집만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5일장도 규모가 작지 않았지만, 상설시장도 규모가 상당했다. 그중에 눈길을 사로잡은 반찬 가게는 대충 둘러보며 반찬 아이디어를 눈팅만 해도 도움이 될 정도였다.

 

시장 골목은 문화의 거리로 이어지면서 이천의 중심지 다운 면모를 과감 없이 보여준다. 이곳 중앙로 거리를 실제로 이천의 명동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천 문화의 거리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 거리에서 특이한 조형물을 발견했다. 나무 주위로 망이 있는 은행 열매 수거 장치였다. 여러 도시에서 시범 설치하고 있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좋은 정책이 아닌가 싶다. 은행 열매에서 나는 악취가 싫다고 숫나무만 심던가 아니면 잘 크던 나무를 잘라내기도 하는데, 나름 경관도 해치지 않고 열매도 잘 모을 수 있으니 참 좋은 정책이다 싶다. 관련된 특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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