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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가을 세찬 바람과 함께 흘러 떠나고 있다. 그 끝자락에서 경기도 이천으로 걷기 여행을 떠났다. 경강선 전철을 타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설봉산을 중심으로 걷는, 많이 힘들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여행이었다.

이천역에서 설봉산까지는 3Km 내외의 거리로 걸어갈 수도 있지만, 버스를 타기로 했다. 이천역에서 내리면 버스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대부분의 버스가 설봉산 인근으로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봉산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10분 정도 걸린다.


관고 1교를 넘어서서 설봉호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으로 설봉산 걷기를 시작한다. 관고동이라는 이름이 특이한데 원래는 관아 뒤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관후동이라 했고, 이후에 관아의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고 관후동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설봉산 입구의 계곡을 가르는 이천 육교 앞에 이르니 이천 9경 중에 3경이 이곳에 몰려 있었다. 제2경 설봉호, 제3경 설봉산 삼형제바위, 제4경 설봉산성이 그것이었다. 이천 걷기 여행의 진수를 본다 생각하니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394미터의 설봉산 등산로는 크게 3가지로 안내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우측 입구에서 바로 시작하여 황톳길과 설봉산성을 거쳐 정상인 희망봉에 이르고 능선을 따라 화두재를 지나면 경기 도자 미술관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이와 이곳까지 왔는데 미술관과 박물관을 그냥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낙엽이 쌓인 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등 뒤로 설봉호를 두고 걷는 길이다. 설봉저수지, 관고저수지로도 불리는 설봉호는 1970년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도시와 가까운 산인 만큼 많은 남녀노소 이천 시민들이 산책하고 계셨다. 어쩌다 보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보니 아이고 이제는 저런 어르신 정도도 체력인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11월도 저물어 가는 시간, 쾌청하고 포근한 날씨 덕분에 몸에는 땀이 베이기 시작한다.


황톳길에 접어드니 왠지 신발을 신고 걷는다는 것이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맨발 걷기 열풍이 불다 보니 이전에는 보지 못한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한 어머님이 맨발로 걸어 내려오시는데 발에 무언가를 착용하고 계셨다. 알고 보니 바닥이 뚫리거나 접지력을 높인 전용 양말도 있었다. 맨발 걷기에 무슨 전용 장비인가? 했는데 다양한 어싱(Earthing) 장비가 시판 중이었다. 겨울이면 보온도 필요하고 혹시나 모를 상처도 대비해야 하니 그럴 법도 하다. 어느덧 길은 설봉산성에 다가선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설봉산성은 이곳이 고구려, 백제, 신라에게 얼마나 전략적 요충지였는가를 보여준다.



설봉산성을 지나면 첫 번째 봉우리로 성화봉을 지난다. 칼바위도 있는 곳이다. 이후로는 능선을 따라서 크고 작은 봉우리를 거쳐 정상으로 향한다.


능선길을 걷다 보니 때 모르고 피어난 진달래에 허탈한 웃음도 나온다.


사직단 뒤를 돌아서 길을 이어가다 보니 특이한 나무 이름표 하나를 만난다. 우리나라에서는 황무지 복구에나 쓰였던 나무로 하찮게 여기는 아카시 나무이다. 여전히 아카시아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지만, 아카시아와 아카시는 분류상 콩과는 같지만 속 분류가 다르고 원산지도 다르다. 아무튼 그저 그런, 이름도 헷갈리는, 나라에서도 조림에는 사용하지 않는 나무이지만 이름표를 달아 준 것이 왠지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람에게는 찬밥 신세이지만 꿀도 많은 밀원 식물이고, 콩과 나무로 땅도 살리는 훌륭한 나무이다. 최근에는 고급 목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마차의 바퀴는 대부분 강하고 탄력성이 좋은 아카시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아카시 나무의 이름표를 보다니...... 내년 봄, 아카시 꽃이 절정일 때 우리는 어디를 걷고 있을까?


길은 두 번째 봉우리인 연자봉을 지난다.


연자봉에서는 나무가 조금 가리기는 하지만 서쪽으로 이천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다. 인구 23만의 이천시는 안흥동을 품고 있는 증포동과 KTX역이 있는 부발읍이 큰 동네이다.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설봉산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고비인 계단을 힘겹게 오른다. 계단 오르기가 건강에 그렇게 좋다고 하지만 산에서 만나는 계단은 늘 부담으로 다가온다. 수명이 60년이라는 무릎을 다독이며 천천히 오른다.


드디어 394 미터 설봉산 정상이다. 12월을 앞두고 있지만 온몸에 땀범벅이다. 이곳은 2005년 꿈과 희망이 발원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희망봉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괜히 나의 생애에 남아프리카 희망봉에 다녀올 수 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산 아래로 설봉호와 함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이천 시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SK 하이닉스 본사가 있는 만큼 1980년대 이후로 꾸준히 인구 증가가 있었지만 2023년 말부터 인구는 정체 상태라고 한다.


설봉산 정상을 지나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도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정상을 지나고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볍다.


하산길은 부학봉과 부학루를 차례로 지난다. 부학봉의 한자가 浮(뜰 부)를 사용하는데 산세가 학이 날개를 펴고 이천시를 내려다보는 모양이라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부학루 안내판에 쓰인 호법 평야라는 단어도 눈에 들어오고 갈림길에서 만난 도드람산이라는 이름도 눈에 들어온다. 호법 평야는 아주 큰 들판을 아니지만 이천쌀이 생산되는 곳이다. 도드람산은 돼지고기 브랜드라서 익숙한 단어였지만 이천 9경 중의 하나이다. 설봉산과 산길로 이어져 있는데 바위가 도드라져 있어 도드람산이라는 설명이 있다. 저명산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우리말로 풀어쓰면 돼지 울음 산이라는 의미로 감동적인 설화가 엮여 있었다. 한 효자가 밧줄을 타고 바위 아래로 내려가 석이버섯을 따고 있었는데 돼지 울음소리가 나서 밧줄을 타고 올라가 보니 밧줄이 바위에 비벼지며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산신령이 효자를 살리려고 돼지 울음소리를 내게 했다는 설화이다. 알고 보니 지금의 도드람이라는 돼지고기 브랜드는 이천양돈조합이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 설봉산 걷기의 마지막 봉우리인 백운봉을 지난다. 이곳에는 오백년송도 자리하고 있었다.


백운봉을 내려가는 길에도 계단이 많았는데 고무벨트에 촘촘하게 못을 박아 미끄러짐을 방지한 방식이었다. 미끄럽지 않게 만들어 놓은 것은 고맙지만 혹여나 이것을 기계가 아닌 사람이 일일이 못을 박았다고 생각하면 악! 소리가 나는 광경이었다. 모든 일은 보기에 따라 다른 의미를 던져준다. 우리는 화두재 고개에서 이섭봉 쪽으로 가지 않고 바로 도자 미술관 방향으로 하산한다.

중간에 구암 약수터를 비롯한 여러 개의 약수처를 거치는 설봉산 1코스와 2코스가 가는 길림길을 만나지만 우리는 계속 시립 박물관 표지를 따라서 하산한다. 넓고 쾌적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쾌적하고 발걸음 가벼운 하산 산책로에는 아기자기한 돌탑도 있고 수북하게 쌓인 낙엽이 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등산로는 경기 도자 미술관 뒤쪽으로 이어지는데 전통 가마에서 얼마 전에 열렸던 도자기 축제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도자기 만드는 "가마"는 순우리말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도구인 만큼 세계의 다양한 가마 형태에 대한 설명도 만날 수 있었다.


쾌청한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는 메타세쿼이어와 계절 색으로 물든 잔디가 맞아주는 경기 도자 미술관에 도착하면서 설봉산 걷기를 마무리한다. 어렵지 않은 코스라 시간 여유도 있고 미술관 1층에 자리한 카페에서 커피로 몸을 데우며 망중한을 즐긴다. 마당에 세워진 "토야"라는 도자기 캐릭터는 2001년 도자기 엑스포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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