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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보를 지난 길은 단현동 마을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화창하던 하늘에 구름들이 몰려오니 길이 쌓인 눈과 함께 분위기가 왠지 을씨년스럽다.

 

단현동 마을길을 거쳐온 길은 여강길 표식을 따라서 여강길 1코스의 이름인 "옛 나루터길"의 유래인 옛 나루터들을 찾아 강변으로 나간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찾아가는 첫 나루터는 "부라우 나루터"이다. 콘크리트 둔덕이 아닌 자연스러운 강변도 좋고 남한강을 옆에 두며 걷는 강변 숲길도 마음에 든다.

 

부라우 나루터는 강가 바위가 붉어서 붙은 이름이고 예전에는 중요한 나루터 중의 하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팻말만 남아있고 강물은 유유히 흐른다. 고려 때부터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만 해도 남한강은 수운의 핵심 물길로 세곡을 안전하게 나르고 목재와 도자기 등을 실은 배들이 저 남한강 위를 떠다녔을 것이다.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인 강변 숲길을 헤쳐 지나는 재미 또한 일품이다.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즐길 수 있는 산책길이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도 음악처럼 들린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는 숲길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숲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은 잔잔한 호수 같다. 멀리 영동 고속도로가 지나는 남한강 대교도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주시 단현동에서 우만동으로 넘어가면서 잠시 "주내로" 인근으로 나가지만 바로 다시 강변으로 길을 이어간다.

 

남한강 대교 근처까지 내려가니 강물에 손을 담글 수 있을 정도까지 강물과 가까워졌다. 워낙 시멘트로 뒤덮인 강둑에 익숙해지다 보니 자연스러운 강변, 그것도 한강이라는 것이 조금은 낯설다.

 

한참을 내려왔는지 우리가 길을 내려왔던 강천보 방향으로는 어떤 구조물도 보이지 않고 그저 거울 같은 강물에 비추인 산 그림자만이 평화롭다. 드디어 우만리 나루터를 지키고 있는 4백년된 느티나무를 만난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잔잔한 강물을 바라보면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호사를 누린다.

 

4백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무는 온갖 세상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소장수들이 강을 건너던 우만리 나루터는 간데없고 바람을 가르는 자동차 소리만 하늘을 가른다. 예전에 티코 자동차를 타고 동해안에 다녀올 당시만 해도 영동 고속도로는 2차선이었다. 기나긴 2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유독 지루해서 졸림이 몰려오던 기억이 있다.

 

길은 영동 고속도로가 지나는 남한강교 아래를 통과해서 데크 계단을 통해서 강둑을 오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옛날에 2차선 고속도로 당시의 구 남한강교는 강 건너편의 여주시 강천면을 잇는 지역 도로로 계속 사용 중인데 길은 다리 진입로에서 도로를 가로질러서 산길로 진입한다.

 

산 아래의 남한강교를 뒤로 하고 낙엽을 밟으며 산길을 걷는다. 강변 야산을 넘고 동네길을 가로지르는 방식을 반복하며 남쪽으로 내려간다.

 

작은 야산을 하나 넘으니 예쁜 전원주택들이 모여 있는 동네를 지난다. 남한강변의 전원주택 단지인 만큼 각양각색의 집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돈이 많아서 짓고 싶은 집을 뚝딱 짓고 살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남들이 지어놓은 멋있는 집들을 간접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돈 들이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으니 괜찮은 재미이다.

 

동네 길이름이 선사 1길인 것으로 보니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이 멀지 않은 모양이다. 마을길을 벗어난 길은 다시 동네 야산을 오른다. 서해랑길에서 만났던 경기 둘레길 표식도 다시 만났다. 여주대교부터 강천보까지는 경기둘레길 34코스가 함께 걷고 강천보부터 도리 마을까지는 경기 둘레길 35코스가 여강 1길과 함께 걷는다.

 

흔암리 선사 주거지 표식을 따라 야산을 넘으니 이곳도 전원주택들이 즐비하다. 전국 어느 곳을 가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는 늘 전원주택들을 만나는 것 같다.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전원주택 단지를 빠져나온 길은 선사 1길 도로를 따라서 흔암리 선사 주거지로 향한다.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로 진입한다.

 

흔암리 선사 주거지 표식이 있기는 한데 선사 시대 주거지를 재현해 놓은 곳은 마을길을 따라서 조금 올라가야 하고 청동기 시대의 곡물과 토기등이 발견된 곳은 야산의 정상부와 능선에 위치한다.

 

등산로 초입에 재현한 선사시대 움집을 지나쳐 야산 정상부로 향한다. 지붕에 볏짚을 올린 것을 보며 초가집과 비슷해 보이지만 움집은 땅을 50센티 이상 파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는 반지하 방식이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순천 낙안읍성이나 아산 외암 민속 마을, 용인 민속촌에서 볼 수 있는 초가집들은 지상에 벽체를 세우고 초가지붕을 얹는 방식이다.

 

길은 유적지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서 이어간다. 지금의 길은 어찌 보면 우회로인데 원래의 길은 전원주택 단지 공사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한다.

 

유적지를 지난 길은 바로 하산하여 야산을 오르기 전에 걸었던 선사 1길 도로와 다시 만난다.

 

이제 길은 흔암리 마을 회관 앞을 지나서 여강길 1코스의 마지막 고비라 할 수 있는 소무산으로 향한다.

 

오르막길에서 정문과 철책을 만나며 이곳으로 가는 것 맞나? 하는 의문점이 있었는데 사유지를 개방해 주었다고 한다. 사유지를 벗어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249미터의 작은 산이라고 얕보지 말라고 그러는 것인지 초입은 거칠게 올라간다. 거친 초입을 지나면 바로 완만하게 오르는 능선을 만난다.

 

원래의 길은 소무산 정상으로 가지 않고 아홉 사리고개 쪽 강변을 따라가는 길이었는데 중간에 공사 현장이 있어서 지금의 길은 정상을 넘어가는 길이 되었다고 한다.

 

소무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없이 능선을 따라서 쭉 올라가는 방식이다. 중간에 송전탑이 있을 정도로 길을 넓은데 바닥에 남은 자국을 보니 아마도 산악 오토바이가 지나간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도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원래의 여강길 코스라면 만나지 않았을 불안감이지 않았을까 싶다.

 

산악 오토바이의 타이어 자국은 정상 직전까지 이어진다. 혹시, 어디에선가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면 신경을 곤두 세우고 걸야만 했다.

 

드디어 249미터 소무산 정상에 도착했다. 산을 오르기 전에는 탁 트인 남한강 전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숲에 가려서 전망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전망은 그리 좋지 않지만, 숲 사이로 북쪽으로는 남한강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전동면 읍내가 시야에 들어오는 곳이다.

 

하산길의 발걸음은 늘 가볍다. 낙엽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 조심하면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소무산 능선길을 따라 여주시 점동면 도리 마을 내려간다.

 

소무산 자락을 내려오니 다시 남한강변의 도리 마을이다. 이곳에서 여주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있는데 한대를 놓치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약간의 시간차로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옆지기에게 뛰라고 채근할 수도 없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내야 했다.

 

여강길은 도리 마을 회관 앞으로 이어지는데 동네로 들어가면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혹시 이곳까지 택시가 들어오냐고 여쭈어보니 바로 핸드폰을 꺼내시더니 지인 기사에게 마을로 오라고 말씀하신다. 얼마나 고맙던지...... 그런데, 시간이 가도 아주머니가 부르셨다는 택시는 오지 않았다. 멀리서 차 한 대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을 보니 말씀하신 장소가 택시 기사와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친절을 베풀어 주신 것은 고마운데 긴 시간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도리마을 회관 앞에서 1코스를 마무리한다.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가 여주역에서 출발하니 시간을 맞추어서 다음 코스 걷기도 계획해 보자는 마음이 든다. 여주 여강길과 대중교통을 잘 연계해 놓은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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