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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포 해변과 구시포항을 떠난 서해랑길은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명사십리로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다. 끝없는 모래사장을 감상하며 걷는 길이다. 해변 안쪽으로 일부 펜션과 장호어촌체험마을이 있기는 하지만 솔숲과 모래 해변이 주인공인 경로이다. 길은 고창군 상하면에서 해리면으로 넘어가고 전북수산기술연구소를 지나 동호리에 닿는다.

 

어제 오후만 해도 여름 해수욕장 분위기를 내며 북적이던 해변은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들만 해변으로 나설 뿐 조용하다. 어젯밤에는 해수욕장 인근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쉬었는데 그동안 다닌 숙소 중에 최악이었다. 미리 알아본 정보에서도 평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 수준을 확 낮추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상상이상으로 좋지 않았다. 깨진 욕실을 방치하면서 고객을 받고 있는 것은 양반이었고, 인터넷도 되지 않아 이른 아침 모텔을 나와 공공 와이파이가 있는 해변에서 필요한 일을 해결했다. 

 

이젯밤 별로였던 숙소에 대한 생각도 쾌청한 하늘과 아름다운 해변으로 날려버리고 새로운 하루의 여정을 시작한다.

 

고창에 접어들면서 처음 만난 구시포 해수욕장은 고창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그저 풍천 장어와 복분자 정도의 이미지로만 고창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름다운 해변과 선운산, 고인돌 등 자연과 역사를 가진 고장이라는 생각이다.

 

구시포 해수욕장 끝자락에 이른 길은 구시포항 쪽으로 돌아서 길을 이어간다. 서해랑길 41코스는 고창 해안 도로와 함께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올라간다.

 

바다로 길게 뻗어나간 구시포항을 지나간다. 구시포항 방향으로 가막도 표식이 있는데 원래 구시포항이 있는 곳은 가막도라는 작은 섬이 있던 곳으로 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 때면 그냥 걸어서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고 항구를 만든 곳이다.

 

구시포항과 이어진 해안 방조제 길을 걸으며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북쪽 해안선을 바라본다. 해안으로 다양한 모양의 송전탑들이 세워져 있는데 한국 전력 소속의 한국해상풍력 실증센터라고 한다.

 

8.5Km 길이로 북쪽으로 곧게 뻗은 명사십리 해변으로 들어간다.

 

바로 해변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구시포를 뒤로하고 고창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탁 트인 해변을 볼 수 있는 곳에 이르니 해변에서는 무언가를 캐고 계신 분들이 작업에 한창이고 먼바다에는 해상 풍력 발전기들이 돌고 있다. 고창과 부안 앞바다에 대규모 풍력 발전 단지가 건설될 예정이라는데 바다 풍경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고창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 구시포항도 한참 멀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변산반도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시작한 서해랑길 걷기가 전라남도를 지나서 전라북도로 들어왔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이곳은 국가 생태 문화 탐방로라는 이름의 길로도 관리하는 모양이다. 전망대를 마련해 놓아서 넓고 긴 해안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정면으로는 탁 트인 수평선, 남쪽으로는 바다로 뻗어나간 구시포항이 북쪽으로는 변산반도가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다. 긴 해안선으로 한 중년 커플이 호젓하게 바닷가를 걷고 있는데 워낙 긴 해안선이고 중간에 휴식처도 상점도 없다 보니 걷다 보면 끝낼 지점을 찾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이 해변에 리조트를 비롯한 대규모 휴양 시설이 들어선다고 하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는 해안 풍경이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모르겠다.

 

길은 장호어촌체험마을 앞을 지나 계속 해안 도로를 따라 움직인다.

 

해변 길을 걸으며 드는 생각은 좋은 해변이 있지만 후대에 더 좋은 해변을 물려주려면 리조트와 관광 시설에 투자하는 것도 좋지만 할 수 있는 한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무를 계속 심고 가꾸면 이곳이 명품 해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호마을을 지난 해안길은 수로를 건어면서 고창군 상하면에서 해리면 사반리로 넘어간다.

 

수로를 지나며 고창군 해리면으로 넘어가는 길에서는 논에 심은 유채가 노란 꽃을 활짝 피어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제주도나 남도에서 보았던 유채를 고창에서도 대규모로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채를 나물로 먹거나 씨앗에서 기름을 짜는 용도로의 가치도 있지만 고창하면 청보리 밭이 유명해서 사람들이 찾아가듯, 본격적인 모내기 이전에 노란 유채꽃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경관농업으로 활용하고 유채가 있는 상태로 땅을 갈아엎어서 토양도 개선하고 병충해 예방과 잡초 방제도 하는 녹비 작물로 활용하는 것이다. 간척지 논에서 크는 유채를 고창에서 처음 만난다.

 

울창한 솔숲과 긴 모래 해변을 가진 명사십리 해변은 다듬지 않은 보석이지 않은가 싶다. 

 

명사십리 해변의 북쪽으로 많이 올라오니 동호항 앞의 대죽도 섬의 모습도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평균 조석간만의 차가 4미터에 이르고 계절별로 바다의 퇴적 모양이 달라진다는 명사십리 앞바다 멀리로는 부안의 위도 섬도 보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족 여행으로 다녀왔던 추억이 있던 곳이다. 부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섬인데 해무 때문에 배가 뜨지 않아서 직장에 전화로 휴가를 신청해야 했던 기억이 있는 섬이다.

 

위도는 한때는 핵폐기물 처리장 후보지 선정 문제로 시끄러웠던 곳이기도 하다. 안전이 확실하고 투명하게 확보된 상황에서 핵발전소를 개선시키고 추가로 짓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이 좁은 나라에서 방사성 폐기물을 확실하게 처리할 원칙과 방법을 세우지 않고 추진하는 것은 미래보다는 눈앞의 이익과 돈만을 쫓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 방법을 해결하지 않고 핵발전소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사슴을 쫓는 사냥꾼이 사냥감에 마음이 빼앗겨서 주변의 산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는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 돈을 꼭 움켜쥐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확금자불견인(攫金者不見人)과 같은 고사성어에 비유할만하다.

 

들판은 봄농사가 한창이다. 한 무리의 일꾼들이 고추모를 심느라 분주하다. 품앗이로 서로의 일을 해가던 시절은 이미 옛날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서해랑길을 걷다 보면 밭 인근에 일꾼들을 태우고 온 미니버스가 세워진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밭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외국어인 것도 이미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길은 전북수산기술연구소를 우측으로 돌아서 동호해변으로 간다.

 

동호해변으로 들어가는 길, 길가에는 꽃잔디라고도 부르는 보랏빛의 지면패랭이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돌 사이사이로 자리한 꽃잔디는 꽃이 피면 바위와도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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