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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세상으로 바뀐 진도를 걷고 있는 서해랑길 9코스는 남선마을의 외곽길을 통해 진도대로 도로로 나갔다가 도로를 벗어나 천둥산(199m) 임도를 걷는다. 임도는 고도 약 150미터가량을 올라갔다가 하산길로 접어든다. 산을 내려오면 진도 남도진성에 이르고 도로를 따라 이동하여 서망항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남선마을 외곽을 돌아가는 들길은 수묵화 한 폭을 보는 것 같다. 조릿대 숲과 하얀 눈이 어우러진 포근한 그림이다.

 

눈 쌓인 계곡과 계곡 건너편의 질매봉(259m)은 그야말로 한 폭의 수묵화 그 자체다. 

 

눈 쌓인 계곡길을 따라 남선마을을 벗어나며 진도대로 도로 방향으로 이동한다. 날은 춥지만 절경이 위로가 되는 길이다.

 

눈 쌓인 도로 걷기는 정말 난감하다. 도로변으로 걸으려면 축축한 눈을 푹푹 밟으며 걸어야 하고, 결국 우리는 차가 거의 없으니 눈이 녹은 도로 부분을 걷다가 앞뒤로 멀리 차가 오는 것이 보이거나 자동차 소리가 들리면 도로변으로 잠시 피했다가 다시 이동하기를 반복했다. 

 

길은 국립진도자연휴양림 입구와 동령개마을 입구도 지난다. 여전히 흩날리는 눈은 딱딱한 눈이었다가 부드러운 눈으로 내리기를 반복한다. 아마도 대기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도로 옆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쉬어 간다. 따뜻한 온기는 없지만 정류장에 문이 있어 바람을 막아주니 그나마 고마웠다.

 

도로변에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날씨는 싸늘하지만 시비에 새겨진 시 한 편 읽고 간다. 이향아 님의 "여름산을 바라보고 있으면"이다. 시인은 여름산을 보면서 죽음을 떠올렸는데, 첩첩산중에서 눈 속을 걷고 있다면 아마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름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죽는다는 것이
하나도 무섭지 않다.
죽는다는 것은
호사스런 저 산자락을 베고 눕는 일
갈증에 울먹이던 저잣거리
두 발목 잡아 끄는 수렁을 지나
연기처럼 구둘장을 벗어나는 일
연기처럼 긴 머리채 헤뜨리고서
벙어리 저 들녘을 내려다 보는 일
삐비새 원추리꽃 훨훨한 구름
비로소 나도
무념의 한 칸 마루 정자를 짓는 일
멀리 여름산
고매한 눈길을 쫓아가노라면
죽는다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

 

멀리 깊게 내륙으로 들어온 굴포리 바다를 보면서 도로를 벗어나 천둥산 임도로 진입한다. 역시 이곳도 아무도 지나지 않은 눈길이다. 신발 깊이로 쌓인 눈길을 뽀드득뽀드득 밟으며 길을 이어간다.

 

소복하게 쌓인 완만한 오르막 임도를 오른다. 숲이 바람을 막아주어 포근한 느낌이다.

 

포근한 눈 담요를 망가뜨리는 것 같아 발자국을 남기며 지나가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개인적으로 백설기를 좋아하는데 눈밭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마치 떡 위에 올려놓은 떡고명처럼 보인다.

 

눈이 쌓여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들이 만든 눈터널이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지난다.

 

이런 눈길은 걷고 싶다고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예상치 못한 기상 이변으로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 이제는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채운다.

 

잎이 모두 떨어진 활엽수의 앙상한 가지로 피운 눈꽃도 아름답지만, 상록침엽수에 풍성하게 쌓인 눈은 그 풍성함 만큼이나 마음에 건네는 위로가 있다. 설국 산책이다.

 

하산길에서는 한 사람과 한 마리의 견공 발자국을 만났다. 셜록 홈즈가 된 것처럼 그들이 발자국을 관찰하며 그들이 움직인 경로와 방식을 추적하며 길을 걷는다. 눈이 많아 힘들었는지 임도 중간에서 길을 돌린 모양이다. 개 발자국 크기가 작지 않은, 아마도 진돗개인 모양이다. 주인 양쪽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나름의 즐거운 산책길을 걸은 모습이다. 상상하면 새눈을 밟는 주인의 즐거움과 눈밭에서 신난 개의 모습에 나도 미소가 지어진다.

 

임도에서 내려오면 남동마을 해안길을 따라 큰길로 나간다.

 

남동마을로 가는 해안길에서는 우람한 해송들이 우리를 맞아준다.

 

해송들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평균 수령이 250년이 넘는 나무들이라고 한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천둥산 임도를 비롯하여 이곳 남동리 지역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지역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수군진이었던 이곳은 내륙으로 깊이 들어와 있는 지형으로 천혜의 요새 역할을 했다고 한다. 멀리 서쪽으로 보이는 서망산 뒤쪽이 9코스의 종점인 서망항이다.

 

세종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하는 남도진성 앞에서 좌회전하여 도로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세종 때 새로 축조했지만 원래의 성은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삼별초도 이곳에서 항전을 했다고 한다. 공중화장실이 있었는데 화장실 바로 옆에 버스를 기다리는 쉼터가 있는 독특한 구조였다. 남도진성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단순히 전라남도의 남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실상은 이곳을 남도포(南桃浦)라고 부르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남동리라고 부른다.

 

진도대로 도로를 따라 남동마을을 빠져나간다.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은 눈이 많이 녹았지만 여전히 도로 갓길로 이동하기는 어렵다. 앞뒤로 차가 오는지 눈으로 귀로 확인하면서 도로를 걷다가 옆으로 잠깐 피했다가를 반복한다.

 

남동마을에는 한옥 전원마을이 조성되어 있었다. 한옥 민박도 운영한다.

 

길을 걸으며 바라본 남도포 앞바다의 모습. 눈 덮인 대파밭과 배추밭에 시선이 간다. 배추가 눈을 맞으면 달아진다고는 하는데 상품으로 출하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서망항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차가 거의 없는 도로를 걷지만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곡선 구간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검은 아스팔트와 하얀 눈, 흐린 하늘 속에서 지루할 수도 있는 걷기 여정을 도로변 동백이 생기를 부어준다.

 

어느새인가 서망마을 표지판이 등장하더니 언덕 아래로 눈 덮인 서망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해와 서해의 중간 지점에 있는 서망항은 국가어항으로 관리되고 있는 규모가 있는 항구이다. 진도군에는 수품항, 서망항, 서거차항이 국가어항이고 최근에 초평항이 추가되었다. 항구의 높은 건물은 진도항로표지사무소 건물이다. 등대, 레이더, 항로표지 등을 관리하고 진도, 완도, 강진, 해남 등 관내 지역을 오가는 선백에게 정보를 제공한다고 한다. 서망마을에서 9코스를 마무리하고 10코스를 이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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