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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심산(399m) 자락의 고개를 넘어서 옥대리에 이른 서해랑길 8코스는 의신면 읍내와 들판을 가로질러 송정지 저수지에 이른다. 송정지를 벗어나면 계곡을 따라 봉호산(193m) 자락의 무지개 고개를 넘어서 해변에 있는 강계마을에 닿는다. 봉호산 자락의 고갯길이 조금 가파른 임도이기는 하지만 고도 140여 미터로 무난하게 걸을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흐리고 서늘했던 날씨는 좀처럼 개이지 않고 오히려 바람이 더 강해졌다. 옥대리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바람을 피하며 휴식을 취했지만 손은 시리고 몸은 으슬으슬하다. 다음 겨울 걷기에서는 따뜻한 손난로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대리를 떠나 의신면 읍내로 향하는 길, 시야에는 읍내와 함께 멀리 백구 모양의 의신백구 작은 도서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진도 대파와 배추, 봄동이 이어지던 들판에서 푸릇푸릇 시금치를 만나니 정말 반갑다. 시금치를 조파(줄뿌림)하거나 산파(흩어 뿌림)해서 키우는 것만 보아 왔는데 이 밭에서는 하나씩 정성스럽게도 심어 놓았다. 이렇게 점파 해서 키우면 힘은 더 들지만 상품성이 좋은 시금치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잠시 도로를 따라 걷지만 이내 도로에서 내려가 농협 울금가공공장 옆길을 통해 의신면 읍내로 진입한다. 진도 농협 광고판에서 표시하고 있는 울금, 구기자, 표고버섯, 흑미 그리고 대파까지 간척지가 농지의 40%에 이른다는 섬, 진도에서 나름 살길을 개척해 온 농민들의 노력이 보이는 것 같다.

 

1일, 6일 5일장이 열리는 의신면 오일장을 기대했는데 비도 오고, 날씨가 쌀쌀한 까닭인지 장이 서질 않았다. 따뜻한 국물을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식당도 기대했지만 서해랑길 코스 인근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골목길을 통해 읍내를 빠져나간다.

 

가래떡을 들고 계신 아주머니를 그려 넣은 벽화가 있는 방앗간 간판에도 문화센터와 작은 도서관이 있는 건물 외관에도 하얀 백구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 백구가 있는 이유는 그 유명한 돌아온 백구 이야기가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의신면 돈지리이기 때문이었다. 백구는 1988년 박복단 할머니의 집에서 태어나 1993년에 대전으로 팔려 갔는데 7개월 후에 300Km의 거리를 달려서 할머니에게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돈지리 의신면 읍내를 빠져나간 길은 들판을 가로질러 의신천을 건넌다.

 

다리로 의신천을 건너면 만나게 되는 것은 삼별초 궁녀둠벙이다. 진도에서 여몽 연합군에게 저항했던 삼별초가 무너질 무렵 피난 가던 궁녀들이 몽고군에게 붙잡히게 되는데 몸을 더럽히는 니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곳이다. 저런 물 웅덩이에서 사람이 죽었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었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절벽 아래 웅덩이의 깊이가 상당하다고 한다. 백제말 나당연합군과 낙화암 3 천궁녀 이야기가 연상된다.

 

삼별초 궁녀둠벙을 지나면 18번 국도 진도대로 도로를 통해서 만길재 고개를 넘는다. 고도 70여 미터의 그리 높지 않은 고개이다. 삼별초 궁녀들이 피난 중에 잡혔다는 곳이 이곳 만길재이다.

 

도로를 따라 만길재를 넘으면 도로를 벗어나 들길을 통해 만길리로 향한다.

 

이곳 들판은 12월의 한복판이지만 논이 아닌 곳은 대부분 싱싱한 대파와 배추들로 푸른 들판이 이어진다.

 

만길마을에 들어왔다. 고려충신문익점추모비가 있는 마을로 목화씨를 들여와 전국으로 널리 재배하게 했던 문익점의 후손 남평문씨들이 세운 것이다.

 

만길마을을 빠져나가는데 보슬비는 어느덧 눈으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눈발에 감성은 아이처럼 들뜬 기분이지만, 현실은 이 눈발을 헤치고 언제 여정을 끝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남쪽으로 낮은 고개를 넘어 길을 이어간다. 고개 넘어 멀리 남쪽으로 원두리가 보인다.

 

비가 눈으로 바뀌고 서늘한 바람의 한기는 옷 속을 빠고 든다. 잠시 바람이라도 피하고 싶어서 마을을 통과하며 둘러보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 ㅠㅠ  지금은 계속 걷는 방법밖에 없다.

 

원두마을을 빠져나온 길은 수로를 건너서 우회전하여 수로를 따라 올라간다.

 

푸릇푸릇한 보리밭 너머로 송정지의 저수지 둑이 보이기 시작한다. 

 

송정지 저수지로 가는 길에 들판 너머로 독특한 광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야트막한 야산에 커다란 바위가 드러나 있는데 바위 아래로 야자수를 울타리처럼 줄지어 심었고 그 아래로 묘소를 마련한 모습이었다. 묘소 주위로 소나무를 심는 것은 보았어도 야자수라니...... 사연과 배경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가로수로 드문드문 만나는 야자수를 야산에서 만나니 아무튼 특이한 풍경이었다.

 

비와 눈이 섞여서 내리는 것을 진눈깨비라 부르는데 들판길에서 싸늘한 바람과 함께 몰아치는 진눈깨비를 피할 방법이 없다. 송정지 동편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세찬 추위와 함께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물웅덩이길을 만나면 그저 하늘이 야속할 따름이다. 트랙터나 트럭을 타고 다니는 농민들에게 이런 물웅덩이는 별 문제가 아니겠지만 우리와 같이 오랜 시간 걸어야 하는 뚜벅이들에게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순간이다. 오늘 저녁 우리의 신발은 축축해 있을 것이다. ㅠㅠ.

 

저수지 끝자락에서 길은 진도대로 도로를 가로질러 간다.

 

도로를 건너 남쪽으로 들길을 걷던 길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송정마을로 향한다.

 

태학봉과 봉호산 사이에 포근하게 자리한 송정마을을 가로질러 죽청마을로 이어지는 매실로 방향으로 이동한다.

 

송정리를 빠져나오면 원래의 서해랑길은 매실로 도로를 가로질러 농로를 통해서 매듭재 고개로 향하지만 우리는 그만 서해랑길 표식을 놓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강한 바람과 함께 정면으로 얼굴을 때리는 진눈깨비를 피한다고 고개를 숙이고 걸었으니 농로 중간 꺾이는 지점에서 서해랑길 표식이나 리본을 놓친 모양이다. 결국 죽청마을을 거쳐서 가야 했다. 그렇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한동안 휴식을 취할 장소를 찾지 못했는데 죽청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엉덩이가 따뜻한 버스 정류장 의자가 그리웠다. 차가운 바람은 조금은 피할 수 있었지만 경주, 울진 해파랑길에서 만났던 뜨끈한 버스 정류장 의자가 그리운 것은 사실이었다.

 

죽청마을을 떠나면 매실길을 따라 고개를 오른다. 죽청마을은 마을에 대나무가 많다고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오르막길에서 내려다본 전경, 멀리로는 송정지가 보이고 바로 앞으로는 산자락에 자리한 죽청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자락을 일구어 배추와 대파를 심으며 자식들을 키워 냈을 이 땅의 어머니, 아버지들을 생각해 본다.

 

죽청마을에서 매실로 도로로 오르막을 올라온 길은 농로로 올라온 원래의 서해랑길과 만나서 봉호산 자락의 매듭재 고개를 넘기 시작한다.

 

매듭재 고개를 넘으며 만난 편백나무숲은 언제나 눈을 시원하게 하는 그림을 선사한다. 고개를 넘으며 진도군 의신면에서 임회면으로 진입한다. 

 

매듭재 고개를 넘으면 대단위 양돈농장을 보며 산 아랫자락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며 다시 무지개재 고개를 넘는다. 남파랑길과 서해랑길을 걸으며 평야 지대를 가로지르다 보면 소 사육 농장은 자주 지나게 되지만 양돈 농장은 거의 처음 만나는 것 같다.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냄새 저감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는데, 아주 근접한 거리라 그런지 냄새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무지개재 고개에서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걷다가 가던 길을 되돌아왔지만 아주 멀리 가기 전에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일정시간 서해랑길 리본이나 표식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즉시 휴대폰 지도앱을 열고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원래의 길과 합류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거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가던 길을 돌아가야 한다. 지도앱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무지개재 고개를 지나 내리막길에 들어서니 산 아래로 강계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7코스, 8코스를 걸으며 진도의 산자락을 걸었는데, 드디어 아름다운 해변으로 향한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계곡의 이름도 무지개골, 고개 이름도 무지개재이지만 이곳 지명에 무지개가 들어간 사연을 알 수는 없었다. 항아리처럼 들어간 포근한 해안선과 앞바다에 접도가 방파제처럼 버티고 있는 아름다운 바다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라는 것만 보일 뿐이다. 키가 큰 삼나무들이 제주도처럼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다.

 

길은 강계마을로 직접 내려가지 않고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서 강계마을 외곽을 지나 죽림마을 방향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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