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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봉리 임도를 가로지른 길은 이제 작은 산들의 능선을 걸어 남서쪽으로 이동한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 송호지 인근의 임도를 가로지른다.
마봉리 임도 인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 도솔봉 자락의 숲길을 걸어 몰골이재로 향한다. 청년기의 활력이 넘치는 편백숲을 지난다.
침엽수 조림지만 보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활엽수 조림지를 통과한다. 목백합나무라고도 불리는 튤립나무이다. 계절이 더 깊어지면 노란 단풍이 지고 낙엽을 떨구겠지만 초여름에 피는 튤립을 닮은 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삼나무, 편백나무, 튤립나무에 소나무숲까지 달마고도 숲길은 생물 다양성도 가진 훌륭한 숲길이다.
달마고도와 이별해야 하는 몰골이재에 도착했다. 달마산을 한 바퀴 도는 달마고도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돌아 북쪽으로 올라가는 경로로 가지만 남파랑길은 땅끝마을로 향한다. 산 중턱의 완만한 숲길을 걷던 길도 끝나고 이제부터는 땅끝 전망대까지 산능선을 따라서 여러 개의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넘어야 한다. 몰골이재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을 잠시 감상하고 땅끝으로 향한다.
몰골이재에서 땅끝으로 향하는 길 초입에는 바위나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인 마삭줄이 군락을 이루었다. 이곳은 해남이지만 남해 독일마을 인근 남파랑길을 걸으며 만났던 마을의 돌담장을 뒤덮었던 마삭줄, 고흥 남열마을을 지나며 만났던 감미로운 향기를 내뿜던 바람개비 하얀 꽃의 백화등의 기억이 떠오른다. 마삭줄과 백화등 모두 진한 향기의 바람개비 하얀 꽃을 피우는 비슷한 식물이다.
산자락의 능선을 걷는 길이지만 다양한 나무들이 강한 햇빛을 가려주어 가끔씩 만나는 숲 속 거미줄만 잘 헤쳐가면 참으로 쾌적한 길이다. 거미줄이 잘 보이고 적당한 높이라면 피해 가겠지만 사람을 잡는 것도 아닌데 거미줄과 실랑이를 벌이며 길을 이어간다.
250미터 정도 되는 봉우리를 하나 넘어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길은 해남군 송지면 마봉리에서 송지면 송호리로 넘어왔다.
땅끝마을 표식이 등장했다. 달마산 입구에서 만났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길" 표식을 다시 만났다.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리산 밤재에 이르는 남도 오백 리 숲길과 연결된다.
잠시 오르막길을 오르면 당분간 평탄한 숲길이 이어진다.
남파랑길의 매력 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구간에서 덕지덕지 붙은 산악회 리본이 거의 없다는 것인데 이곳은 산악회가 많이 다니는지 산악회 리본을 자주 만나게 된다. 사실 남파랑길 말뚝 표지도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리본 만으로도 충분하다. 요즘은 국립공원이나 지차제에서 트레킹 경로를 잘 관리하므로 리본은 공해가 되지 않도록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휴대폰 GPS가 일상화된 시대에 산악회 리본이 안전 시그널 역할을 하는 것은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또 다른 길이름 표식을 만났다. 이름하여 땅끝 천년숲 옛길이다. 이른 아침의 흐린 날씨와는 다르게 화창한 날씨 덕분에 환상적인 숲길을 걷는다. 길마다 기준점과 경로가 다를 수 있고, 길이 변경된 것을 반영하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특정 지점에 대한 남은 거리보다는 방향성만 참고한다.
길 옆으로 연한 자주색의 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층꽃나무로 아래 부분만 목질이고 윗부분은 겨울에 말라죽기 때문에 층꽃풀이라고도 하는 식물이다.
옆겨드랑이를 따라서 꽃이 층을 이루며 피기 때문에 층꽃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꿀이 많아 밀원 식물로도 쓰이고, 잎, 줄기, 꽃 모두를 난향초, 야선초, 가선초라 하여 기관지 등에 약재로 사용한다고 한다.
산능선을 걷는 맛은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이다. 길은 전망이 트이는 곳으로 나왔다. 산 능선을 기준으로 동쪽은 송지면 통호리, 능선 서쪽은 송호리인데 이곳은 바로 아래로는 통호리 넙골 마을이 보이고 대규모 바다 양식장 너머 바다 건너로는 백일도와 동화도가 시야에 들어오는 곳이다.
능선길을 걸으며 주변 경관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남쪽으로 보이는 또 다른 봉우리를 보며 저 봉우리도 넘어야 되나? 자꾸 묻게 된다.
길을 내려와 분묘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면 임도 사거리에서 송호리 임도를 만나서 임도를 따라 길을 진행한다.
임도 말뚝 표지에 거리 표식이 있지만 남파랑길과는 관련이 없으니 그저 길을 걸을 뿐이다.
임도는 중간에 한 가족묘가 있는 곳을 지나는데 비석에 있는 내용으로는 이곳을 천명봉이라 이름하는 모양이다. 통호리 방면의 바다 풍경을 탁 트이는 시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육지로는 통호리와 남성마을이 그 앞으로 닭섬이 있다. 그 뒤로 멀리 완도도 보인다. 바다 양식장이 가득한 바다 너머로 백일도, 동화도, 소화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다.
포장 임도는 가족묘가 있던 천명봉까지이고 이후로는 다시 숲길이 이어진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걷는 길, 몸은 땀범벅이지만 이 더위가 싫지만은 않다.
나무 그늘 아래 송악이 군락을 이루었다. 음지식물로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덩굴성 상록 식물이다. 토종 아이비라고도 부른다. 숲을 뚫고 들어와 송악을 비추는 햇빛이 마치 무대를 비추는 스폿 조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눈이 부셔도 숲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은 언제나 부드럽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니 조금 전에 넘어왔던 작은 봉우리와 통호리 바다가 보인다.
특이한 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바위길에서 좋은 전망을 만날 수 있다.
숲길에서 막혀있었던 시야에서 탁 트인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나오니 자연스럽게 와! 하는 탄성과 함께 풍경을 즐기게 된다. 통호리 바다 풍경이다. 좌측 닭섬부터 우측 흑일도까지 다도해의 풍경이 펼쳐진다.
전망 좋은 바위 지대를 지나면 다시 남파랑길 리본을 따라 능선길을 걷는다.
거미줄이 등산로가 아닌 곳에 있으면 문제 될 것도 없지만 앞장서서 걷다가 멋모르고 얼굴에 착하고 걸리면 거미줄 떼어 내느라 난리가 난다. 가끔 한두 가닥이 얼굴에 걸려도 불편하다. 모든 거미줄을 발견할 만큼 시력이 좋지도 않고 걷기만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거미줄에 온 신경을 곤두 세우며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었다면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거미줄이 치워졌겠지만 이 길은 오늘 우리가 처음인 모양이다. 하는 수없이 우리가 숲 속 거미줄을 해결한 방법은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가는 것이었다.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얼굴에 거미줄을 묻히지 않고 갈 수 있었다.
이제 3.8Km만 더 가면 1,470Km의 남파랑길 대장정도 끝이 난다. 작년 가을에 시작하여 조금씩 걸은 길은 거의 1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끝을 보고 있다. 부산, 진해, 마산으로 가는 구간에서는 KTX를 이용했고 고성, 거제, 통영 구간은 대전을 중간 기착지로 하여 고속버스를 이용했었다. 사천, 남해, 하동, 광양 구간은 진주를 중간 지점으로 고속버스를 이용했고 여수, 순천, 고흥, 벌교, 보성 구간은 순천이 중간 기착지였다. 이후로 장흥, 강진, 완도, 해남 구간은 광주가 중간 기착지였으니 남파랑길 덕택에 남부 지방 곳곳을 훑고 다닌 듯하다.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서쪽으로는 송호리 일대를 가로지르는 임도도 보인다.
땅끝 전망대가 3.1Km이고 갈두항이 4.4Km 남았다고 하는데, 갈두항은 땅끝항을 말한다. 전망대 이후로 땅끝탑에서 여정을 끝낼 것이고 해안길을 따라 땅끝마을로 이동할 것이므로 우리가 앞으로 걸어야 할 실제 거리는 갈두항까지 4.4km이다. 송호리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송호리 읍내와 바다 건너 멀리 어불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길은 송호리 임도를 향하여 내려간다.
송호리 임도로 내려오니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땅끝마을과 땅끝 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앞으로 지나가야 할 봉우리들을 보니 아찔하다. 여전히 바로 앞의 봉우리를 포함해서 개재봉, 망집봉 같은 작은 봉우리 3개를 넘어서 땅끝 전망대가 있는 갈두산에 올라야 한다. 길지 않은 거리이지만 긴 여정을 소화해 온 우리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끝이 보인다.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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