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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초당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마점 마을을 통과하여 만덕산 아랫 자락을 통해서 도암석문계곡에 이른다. 남도 명품길 인연의 길과 함께하는 길이다.

 

백련사에서 오는 숲길을 통해 들어오면 처음 만나는 곳은 다산동암이다. 사랑방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여러 책을 저술했던 곳이라 한다. 다산동암이라는 현판은 집자라 해서 다산의 책에서 골라서 만든 것이다. 그의 글씨체를 현판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대나무로 물을 끌어들인 연못도 인상적이다.

 

목민심서, 경세유표등 수백 권을 저술한 정약용에게 유배가 없었다면? 하는 질문을 던져 본다. 정조의 총애를 받을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18년에 걸친 그의 유배가 없었다면 후대는 그저 이름과 평판만 접했겠지만, 유배 덕택에 그의 저술을 통해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 그의 실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의 저술을 통해 그를 알아가고 그와 공감하려 시도한다. 다음은 정약용이 둘째 아들에게 써준 신학유가계(贐學游家誡)의 일부이다. 아들에 대한 사랑, 그의 삶의 경험과 지혜가 느껴진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靑雲)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길지 않은 다산초당에서의 만남을 뒤로하고 주차장 방면으로 길을 내려간다. 화려한 관광지도 아니고 올라오기도 쉽지 않은 곳인데 의외로 관람객이 많았다.

 

하산길은 하늘로 쭉쭉 뻗은 편백숲 사이를 걷는다. 햇살이 겨우 들어올 정도의 울창한 숲이므로 아이들과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은 모기 기피제를 뿌리고 올라가는 것이 좋다. 

 

길지 않은 숲길을 벗어나면 땡볕 아래서 마점 마을을 향해 들길을 걷는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에 이르는 숲길에서 워낙 모기에 뜯기다 보니 이제는 따가운 햇빛도 반가울 지경이다.

 

인근에 다산박물관이 있지만 남파랑길은 우회전하여 마점 마을로 간다. 길 옆 대나무 숲이 무더위 속에서 잠시나마 청량함을 전해 준다.

 

작은 고개를 하나 지나니 커다란 남도명품길 안내판이 등장한다. 2015년 전라남도에서 조성한 길로 해남 미황사 둘레길과 이곳 강진 다산초당 구간을 시작으로 점차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산책길을 조성하는 것은 좋은데 도로 구간의 제초나 공중화장실 확보등 걷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물론 꾸준해야 하고 어려운 작업이겠지만......

 

어쨌든 석문공원에서 다산초당과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남도 명품길 1코스 인연의 길은 남파랑길 83코스와 함께 한다. 잠시나마 나무 그늘이 있는 들길을 걸어 좋다.

 

남파랑길 빨강 표식과 리본을 따라 길을 이어간다.

 

흰구름과 파란 하늘, 연두색 들판이 어우러진 만덕산의 풍경을 다산도 보았으리라. 아주 긴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같은 마을, 같은 하늘색, 같은 들판이라는 공감대 속에 그와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해본다. 글쓰기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세월을 거슬러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을 가능하게 하는 힘.

 

길은 만덕리 들판을 가로질러 바다로 나가는 개천을 건너서 개천 건너편에서 길을 이어간다.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조각구름들이 내 머리 위에서 나를 따라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으며 뙤약볕 아래를 걷는다.

 

개천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강진만 쪽으로는 가을색을 입고 있는 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만덕방조제가 만든 넓은 간척지를 보면 다산 선생은 과연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민초들의 먹거리가 늘었으니 좋다고 하실까? 아니면 근시안적인 환경 파괴로 후대에게 무엇을 물려주려고 그러느냐고 안타까워하실지 모르겠다. 아무튼 멀리 제방에 심은 가로수들이 저곳이 만덕방조제구나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가을의 상징이라고 해도 무방한 밤송이를 가까이에서 만나니 반갑다. 가시가 무섭게 솟아 있지만 저 사이를 비집고 벌레가 들어가니 곤충들도 참 대단하다 싶다. 벌레들도 맛있으니 먹겠지! 하며 지나간다. 벌레 없애겠다고 살충제를 쓸 것인가, 아니면 너도 먹고, 남은 것은 내가 먹을게 하며 느긋한 마음을 가질 것인지는 평상시에 텃밭을 일구는 사람으로 늘 고민하는 선택이다. 편하기는 한데, 화학 약품을 뿌린 것을 내가 먹는다고 생각하니 살충제 선택은 늘 고민되는 선택이다. 전등으로 날벌레를 유인하는 친환경 방제가 있기는 하지만 가격도 세고, 한계가 있다.

 

길은 마점 마을을 통과한다. 대동여지도에도 등장한다는 아주 유서 깊은 마을이다. 길가에 핀 백일홍이 조용한 마을에서 유일하게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존재이다.

 

모양도 제각각, 색상도 제각각이다.  북아메리카 원산인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로 들꽃을 개량하여 관상용으로 키운 것이라고 한다. 꽃이 백일동안 핀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백일초라고도 한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씨앗으로 번식하는 백일홍이니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곳에서 존재를 뽐낼 것이다. 배롱나무의 꽃도 백일홍이라 부르는데 화려한 모습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완전 딴판이다. 백일홍 꽃을 보고 있으면 색깔에서 멕시코 전통 의상의 느낌이 나는 것은 단지 나만의 느낌일까? 

 

잠시 빈집 옆에 앉아 쉬어 갔는데 알고 보니 집 머리에 취효당(就孝堂)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자료를 찾을 수 없으니 추측하기로는 마을에서 경로당으로 쓰던 건물일까? 아니면 자손들이 부모님께 집을 지어드리면서 마음을 담은 것일까? 취효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마점 마을을 지난 길은 만덕산 끝자락을 넘어서 석문공원을 향한다. 

 

마점 마을에서 석문공원으로 향하는 숲길은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최고의 산책길이다. 모자를 벗고, 햇빛가리개도 벗고 숲 속 기운을 온전히 받으며 걷는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만덕산도 이제 그 끝자락을 보이기 시작한다. 석문공원구름다리 표식이 등장했다.

 

만덕산 아랫자락을 따라 걷는 산행길이지만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어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만덕산 숲길은 길 아래로 태양광 발전 단지도 지난다. 어느덧 길은 도암면 만덕리에서 석문리로 들어왔다.

 

잠시 태양에 노출되었던 숲길은 다시 깊은 녹음 속으로 들어간다. 햇빛이 찰랑거리는 환상적인 숲길이다.

 

솔내음, 숲냄새, 가을 향취 그 어떤 표현으로도 다 담지 못할 향취 속에 빠지는 최고의 산책길이다. 여정을 끝내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아니라면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리게 걷고 싶은 숲길이다. 이곳에서는 태양도 더 이상 뜨겁지 않다. 따스하다. 깊은숨을 몰아쉬며 내속의 것들은 내버리고 나무들의 호흡을 내속에 담고 싶다.

 

이곳을 걸었던 다른 이들의 이목도 붙잡았을까? 아주 사연 깊게 휘어진 소나무 줄기 옆에 작은 돌들을 하나씩 놓고 갔다.

 

길은 어느덧 용문사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길은 도로를 가로질러 직진하여 내려간다. 이제 석문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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