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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터미널에서 탐진강 강변으로 이동하여 시작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강변으로 조성된 강진만 생태공원을 따라 이동한다. 원래의 길은 둑방길에서 강진만 갈대밭 사이로 조성된 산책길을 거쳐 가지만 "강진만생태공원 갈대숲 데크길 통제에 따라 탐진강 제방길(자전거길)로 우회 이용 바랍니다."라는 안내가 있었으므로 그냥 둑방길로 걷다가 강진천을 건너는 부분에서 데크길로 내려가 걸었다. 이 부분도 통제가 있었는데 제방길로 계속 가도 강진천을 건너서 원래의 길과 합류하므로 제방길을 계속 걸어도 된다. 강진천을 건너면 제방을 따라서 남쪽으로 이동하여 도암면 신평리 교차로에 이른다.

 

광주를 거쳐 강진으로 내려온 우리는 남파랑길 83코스와 만나기 위해서 강진 터미널 앞의 도로를 따라 직선으로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김밥집이 거의 없었지만 한 군데를 겨우 찾아 넉넉하게 준비했다. 길 중간에 군내버스 차고지도 지난다. 

 

강진 터미널에서 직선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면 경전선 철도와 2번 국도 아래를 통과하여 강진군 상하수도 사업소 앞에서 둑방길로 올라 남파랑길과 만날 수 있다. 한창 건설 중인 경전선 철도는 2024년 개통 예정이다. 목포, 영암, 강진을 거쳐 장흥, 보성으로 이어지는 철도로 철도가 개통되면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대중교통수단이 되겠구나 싶다. 부산, 마산, 진주, 광양, 순천, 보성, 목포까지 남해안을 관통하는 철도가 생기면 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기대가 된다.

 

남파랑길의 원래 코스는 강진만 생태 공원의 갈대밭 사이의 데크길로 가야 하지만 "갈대숲 데크길 통제" 안내가 있었으므로 탐진강 제방길로 걷는다. 강진에서 만난 탐진강은 장흥에서 만난 탐진강과는 사뭇 다르다. 장흥의 탐진강은 도시를 흐르는 여느 강처럼 넓은 둔치와 함께 잔잔하게 흐르던 모습이었다면 바다와 만나는 강진의 탐진강은 다양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푸른 초원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이삭을 올리고 있는 갈대숲을 보며 한편으로는 땡볕 속에서도 수줍게 찾아온 가을이 반가운 마음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30도에 육박하는 땡볕 속에서 태양을 온전히 받으며 걸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좋다. 가을이다!

 

제방 자전거길을 따라 길을 이어간다. 가는 길에는 배모양의 남포호 전망대와 한창 건설 중인 강진만 생태홍보관도 만날 수 있다.

 

길을 걷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제법 덩치가 있는 게 한 마리가 양쪽의 집게발을 쫙 벌리고 잔디를 등지고 방어 자세를 잡는다. 자세가 제법이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내 길을 갈 뿐인데 게는 자신이 무슨 무사라도 된 것처럼 한껏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집게발 사이에 풀이라도 넣으며 한판 승부를 벌여 볼까 하다가 한 마리 게를 앞에서 위력을 과시할 일은 아니었다. ㅎㅎ

 

처음 만난 게와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게를 만난다. 게들은 우리를 만날 때마다 전투태세를 갖춘다. 참 까칠하다. 말똥 냄새가 난다는 붉은발 말똥게 인지, 해안 민가에 나타나서 음식찌꺼기나 과일을 훔쳐 먹어서 도둑이라는 이름이 붙은 도둑게인지 구분이 쉽지 않지만 아무래도 희귀하다는 붉은발 말똥게인 것 같다.

 

인근에 쓰레기 매립장도 있고 하수 종말처리장도 있다고 하는데  잘 정비한 산책길과 가로수 때문인지, 시설들을 잘 관리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존재를 알 수는 없었다. 

 

갈대숲으로 내려가지 않아 아쉽기는 하지만 강진만의 갈대밭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기고 길을 이어간다.

 

탐진강 건너 생금봉과 기나긴 제방길을 보니 마량부터 가우도를 거쳐 강진읍내까지 남파랑길 81코스와 82코스를 걸었던 지난번 여행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3박 4일을 계획했지만 장마가 몰려와서 하루밖에 걷지 못했던 특별한 여행이었다.

 

강변 제방길에서 강진만 중간에 있는 가우도도 강진만이 큰 바다와 만나는 곳도 보이지 않지만 갈대밭 너머  멀리 우측으로 보이는 해창 바닷가를 가늠해 보니 언제가 저기까지 가려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탐진강 끝자락, 탐진강과 강진천이 만나는 지점에는 강진만 생태홍보관이 한창 건설 중이었다.

 

오늘 남파랑길 83코스 내내 우리와 함께할 만덕산(412m)이 우뚝 서서 우리를 부른다. 아주 높은 산이 아님에도 기품이 있어 보인다.

 

제방길로 계속 걸어도 강진천 건너편의 남파랑길로 갈 수 있지만, 강진천을 넘는 구간은 갈대밭 사이의 데크길로 가기로 했다. 출입통제 라인이 있기는 했지만 다른 분들도 산책하고 있으니 그들 핑계로 데크길을 걷기로 했다.

 

강진천을 건너는 인도교에서 바라본 강진천 상류와 하류 쪽으로 모습.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전형적인 기수구역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성 벌교천의 모습과 유사하다.

 

강진천을 건너는 인도교를 지나 갈대밭을 가로질러 강진천 상류 쪽으로 이동한다. 순천만의 누런 갈대밭을 지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초록옷을 갈아입은 갈대밭이 어느덧 가을을 맞이하고 있으니 세월은 잘도 흐른다.

 

갈대밭 사이를 지나온 데크길은 제방 위로 올라가며 제방 위의 자전거길과 합류한다.

 

제방 위로 올라가니 멸종위기 동물들이 살고 있으니 조용하라는 안내문과 함께 남포마을에 대한 소개가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전라도에서 해상 교역이 가장 발달한 곳이 강진이었고 그중에서도 이곳 남포 마을의 규모가 가장 컸다고 한다. 갈대밭과 제방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금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한시 "애절양"에 남포 마을 등장한다는 소개도 있는데, 남포 마을이 다산의 한시에 등장한다는 것보다는 당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한시의 내용이 가슴을 친다. 

 

노전 마을 젊은 여인의 통곡 소리 그칠 줄 모르네
현문(縣門)을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길
싸움터 간 지아비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예부터 남 절양(男絶陽)은 들어 보지 못했구나
시아버지 죽어 이미 상복 입었고, 갓난 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삼대(三代)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다 실렸으니
가서 억울함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이정(里正)은 호통하며 마구간 소 끌고 갔네
칼을 갈아 방에 드니 자리에는 피가 가득
스스로 탄식하길 자식을 낳은 것이 화로구나
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음형(蠶室淫刑) 당했던고
민(閩) 땅 아이들이 거세한 것 그도 역시 슬픈 일인데
자식 낳고 또 낳음은 하늘이 정한 이치거늘
하늘땅 어울려서 아들 되고 딸 되는 것이지
말⋅돼지 거세함도 그 또한 서럽거늘
하물며 뒤를 잇는 사람에게 있어서랴
부호들은 한평생 풍류나 즐기면서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똑같은 백성 두고 왜 이다지 차별일까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鳲鳩篇)을 외워 보네

 

애절양(哀絶陽)의 절양은 남성의 생식기를 자른 다는 의미로, 당시 죽은 부모님과 갓 낳은 자식까지 군적에 올려 군포를 매겨 세금을 걷는 폐단이 절양 사건의 배경이다. 다산은 이 사건을 접하면서 애끓는 마음을 시에 담았다. 민초들은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세금에 허덕이다 자신의 생식기를 자르는 허망한 사태까지 이르렀지만, 양반과 부호들은 일 년 내내 한 푼도 내지 않는 현실과 아픔을 한시 전체에 담고 있다. 세월은 흘렀고 기술은 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벌과 돈의 지배 세력들은 갖가지 이유로 병역을 면탈하거나 절세라는 이름하에 세금을 피하지만, 민초들은 여전히 병역을 그대로 감당하며 때로는 군대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있다. 돈은 어떠한가! 유리지갑의 민초들은 1원 한 푼 허투루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없고 잘못하면 탈세범으로 온갖 고초를 당하지만, 소위 가진 자들은 갖은 방법으로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강진천을 건너 상류 방향으로 올라가던 길은 제방 위로 올라오며 방향을 남쪽으로 완전히 틀어서 남쪽으로 해창 철새 도래지를 향해서 둑방길을 걷는다.

 

둑방길 좌측으로는 강진천이 탐진강과 만나 삼각주를 만들며 바다로 내려가고 우측으로는 제방이 만들어 놓은 넓은 평야에서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가슴을 트이게 하는 풍경이다.

 

둑방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갈대숲도 염생 식물 군락지도 사라지고 어느덧 제방 옆으로는 갯벌만이 남았다. 이제는 바다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임천 저수지에서 수로를 따라 내려오는 물도 강진만 바다로 나간다. 이곳의 물은 수문 없이 자연스레 바다로 나간다. 강진만은 어패류가 그렇게 풍부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탐진강 상류에 탐진댐으로 길이 막히고 강진만 양쪽으로 거대한 방조제들이 들어서면서 물길이 막혔으니 예전의 바다 생태는 아닌 모양이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갯벌이 아름답다.

 

쉼터를 지나 제방 끝자락 근처에 오니 남쪽으로 멀리 죽도와 함께 섬 양쪽으로 인도교를 걸치고 있는 가우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제방길 끝자락에 이르니 자연스레 뒤돌아 보며 강진읍내와도 작별하게 된다. 강진에 또 오게 될까?

 

제방길을 지나 다산로 도로로 나온 길은 잠시 해창 해안으로 길을 돌아간다. 이 인근은 해창 철새 도래지로 겨울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해창 해안길을 돌아 나온 길은 도암면 신평리 교차로를 통해서 내륙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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