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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동에서 공지산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는 길은  이청준 한승원 문학길  2코스 일부와 같이 간다. 진목 마을을 지나면서 이청준 생가를 방문할 수 있다. 진목 마을을 지나면 들길과 농로를 가로질러 해안으로 나가고 덕촌 방조제 둑방길을 지난다.

 

선학동 나그네길을 지나온 길은 선학동을 감싸고 있는 공지산을 오른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 길에는 보랏빛 들풀이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엉겅퀴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양지바른 곳이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풀이다. 뿌리, 줄기, 잎을 모두 식용할 수 있는데 씨앗은 그림처럼 깃털 속에 있기 때문에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아간다. 간장약의 한 계통인 실리마린은 바로 엉겅퀴(밀크시슬)에서 추출한다고 하고 엉겅퀴 추출물로 만든 보습제도 있으니 잡초라고 무시할 식물이 아니다.

 

숲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며 산을 오른다. 오솔길이지만 길이 좋은 것이 사람들이 꾸준하게 다니는 모양이다.

 

숲길에서 특이한 모양의 꽃을 만났다. 꿀풀이다. 이름처럼 꿀이 많은 밀원 식물이다. 꽃이 필 때 풀을 베서 그늘에 말리면 하고초라는 한약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느릅나무, 꾸지뽕, 와송과 함께 항암 약효가 확인된 4대 항암 약초라고 한다.

 

산 능선으로 올라온 길은 이청준 생가를 향해서 공지산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다. 넓은 숲길을 조성해 놓았다. 

 

이청준 문학길이라고 일부러 길도 크게 내고 길 양쪽으로 키 큰 나무와 관목을 함께 심은 모양이었다. 숲길이 이렇게 화려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큰길에서 나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가는 거미줄뿐이다. 팔을 휘저으며 걸어도 어느새인가 한 가닥이 얼굴에 또 붙는다.

 

자연이 오와 열을 맞추어 나무를 심었을 리는 없으니 이청준 문학길로 조성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승원 문학길에서는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작가의 시들을 감상했다면 이청준 문학길에서는 넓은 숲길과 나무들을 감상하며 길을 걷는다.

 

이청준 작가의 생가가 있는 진목 마을을 "순수의 고향"이라 소개하고 있다.

 

남파랑길 걷기를 하면서 후박나무 가로수길은 자주 만나는 편이지만 숲 속에서 만나니 키가 20미터까지 자라는 키 큰 나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역시 나무가 있을 곳은 도로변이 아니라 숲 속이다.

 

숲길을 걸으며 인근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는데 숲길을 벗어나서 주위를 돌아보니 산을 깎아내고 있는 채석장이 있었다. 

채석장의 모습은 마치 운석이 충돌해서 생기는 운석공처럼 산에 큰 구멍을 만들었다.

 

계곡 사이로 회진대교와 노력도가 보이고 바닷가의 천년학세트장도 눈에 들어온다.

 

숲길을 벗어난 길은 도로에서 좌회전하여 도로를 따라 진목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도로의 이름이 미백로인데 이청준 작가의 호가 미백이다.

 

길은 마을회관 앞에서 우회전하여 이청준 생가 방향으로 이동한다.

 

한승원 생가가 전형적인 농촌 주택으로 방치된 모습이었다면 이청준 생가는 예스러움이 남이 있으면서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2005년에 복원된 생가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장흥에서 태어난 그는 예닐곱 살에 막냇동생, 큰형, 아버지를 차례로 잃었다고 한다. 한국 전쟁 이후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이청준 작가가 남긴 수많은 작품과 평가 속에서 나는 그의 글쓰기의 성실성과 꾸준함이 인상 깊었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했고 그 결과물 또한 훌륭했다. 작가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만한 분이다.

 

이청준 생가를 지난 길은 진목 마을을 벗어나 해안으로 길을 잡는다.

 

한국 전쟁 이전만 해도 바닷물이 진목마을까지 들어왔지만, 1950년대 진목 농장 간척과 1970년대 덕촌 농장 간척 이후로는 마을 앞은 넓은 농경지뿐이다. 진목 저수지 옆을 지난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는 우렁이가 열심히 제초 중이다. 제초제를 쓰지 않는 논, 엄지 척이다.

 

진목리의 평야길을 지나면 잠시 도로를 거쳐서 덕촌 간척지 들판으로 들어간다.

 

직진해도 저류지 때문에 덕촌 방조제로 갈 수 없으므로 서쪽으로 더 이동하여 방조제로 나간다. 6월 중순이지만 이곳은 이제야 소먹이 풀을 베고 논을 갈기 시작하는 논도 있다. 일이 몰리는 시간이니 어느 논에서는 묶어 놓은 소먹이풀을 트랙터로 옮기고 있고, 어떤 논에서는 트랙터 두대가 한 논을 동시에 가는 풍경도 목격하게 된다. 

 

장흥의 명산 천관산 전경도 이제는 상당히 멀어졌다. 거대한 덕촌 간척지 평야 중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니 평야 너머 산들은 모두 원경일 뿐이다.

 

덕촌 방조제 옆의 저류지를 지나 방조제 둑방길로 올라간다.

 

식사를 하면서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평야 지대에서 앉을자리를 찾기는 어려웠고, 방조제에 설치된 포구에 앉아서 이른 점심 식사를 하며 쉬어가기로 했다.

 

물이 빠지고 있는 갯벌을 보며 식사도 하고 휴식을 취했지만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 수는 없었다. 바지와 손은 시멘트 자국이 선명했지만 태양도 불편한 자리도 불평할 일은 없다.

 

덕촌 방조제 둑방길을 걸으면서 길은 회진면 진목리에서 대덕읍으로 넘어간다.

 

대덕읍으로 넘어와서 덕촌 방조제 배수갑문 직전에 몇 가구가 모여사는 아주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대덕읍 잠두리 덕촌마을에 속한 마을이다. 폭이 50미터 정도인 좁은 공간인데 어떻게 이곳에 살게 되었을까? 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북쪽으로는 천관산, 천태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대덕읍내를 가로질러 내려오는 대덕천이다.

 

배수갑문 바로 앞에 포구가 있는 것도 특이한데 어선들을 정박해 놓은 모습도 특이하다. 3.8Km에 이르는 덕촌 방조제로 넓은 농경지가 있는 덕촌 마을은 포구도 훌륭하다. 대덕읍에서 청년이 가장 많은 마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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