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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 방조제를 지나 신상 마을까지 남쪽으로 내려온 남파랑길은 이제 서쪽으로 걸어 장흥군의 남쪽 해안을 걷기 시작한다. 신상 마을로 들어온 길은 서쪽으로 이동하며 한재 고개를 넘는다. 산길이지만 오르막길이라는 것 외에는 포장길이라 부담이 없다.  가는 길에 한승원 생가도 만날 수 있다. 고개를 넘으면 덕산마을을 거쳐서 회진면 읍내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관덕 방조제 배수 갑문과 돌의도 마을 포구를 지나 관덕 방조제 둑방길을 걷는다. 관덕 방조제 담수호를 보니 2007년 회진항부터 이곳까지 4Km에 이르는 운하를 뚫어 갯벌도 살리고 회진항의 뻘도 걷어 내겠다는 뉴스는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그 사정이 궁금해진다. 이곳 관덕 방조제의 둑이 헐린다는 것이었는데 운하도 없고, 둑도 멀쩡하다.

 

방조제 앞으로 섬이 하나 있는데 소회도라는 섬이다. 이곳의 방조제가 생긴 이후로 흘러온 자갈과 모래가 쌓이면서 육계사주로 방조제와 연결된 섬이다. 인위적으로 흙을 쏟아붓지 않아도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이 들아온 상태인데도 섬과 연결된 길은 물에 잠기지 않았다.

 

관덕 방조제를 지나면서 길은 관산읍 삼산리에서 회진면 신상리로 넘어간다. 방조제를 나오면 좌회전하여 회진로 도로를 따라 걷는다. 뽑혀 둑방에 던져진 남파랑길 표식들이 조금 불쌍해 보인다. 무슨 이유가 이겠지 하며 지나간다. 

 

회진로 도로를 따라서 신상 마을로 가는 길, 뒤돌아 보면 바로 앞의 소회도와 함께 멀리 정남진 전망대도 시야를 채운다.

 

해안 도로를 걷는 길은 우측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신상 마을 중심으로 들어간다.

 

마을 고개에 이르니 2백 년 넘은 은행나무가 올해도 푸른 잎을 가득 내었다. 24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는 보호수다. 매년  정월대보름과 추석에 제를 올린다고 한다.

 

신상 마을 버스정류장 옆에는 235 정이라는 특이한 정자가 하나 있었다. 2차 동학 농민 운동과 관련된 장소로 1894년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군은 후퇴를 거듭하다가 장흥을 접수하기도 했으나 읍내에서 벌어진 석대전 전투에서 일본군에 궤멸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근 섬으로 피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상 마을에서도 석대전 전투에 직간접적으로 235명이 참여했는데 이들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1차 봉기 때는 동학교도와 농민이 연합한 동학군이 24개 폐정개혁안을 제시하고 관군과 화약을 맺는 것으로 끝났다면, 2차 봉기 때는 동학농민군이 항일 구국 투쟁을 선언하며 시작했고, 결과는 실패였지만 을사의병, 정미의병과 항일무장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235정 바로 옆으로는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이 세워져 있는데 정자와 탑 모두 기부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동학 농민 운동 이후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가면서 독립자금을 모은 장흥 지역의 선조들을 기리는 탑이다. 21세기인 지금도 "반공"이 먹히는 이 나라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그 "반공"이 친일역사 청산을 막았고, 일본에 부역하며 자신의 세력을 쌓았던 그 당시의 기득권은 여전히 알게 모르게 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목숨 바쳐 동학 농민 운동에 헌신했던 선조들은 지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뭐라고 하실까? 장흥의 동학 농민 운동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읍내에 있는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만날 볼 수 있다. 동학농민군이 궤멸되었던 석대전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라고 한다.

 

마을 안으로 들어온 길은 신상 1길로 우회전하여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동네는 최근에 담장을 깔끔하게 다듬은 모양이었다.

 

마을길에서 한승원 생가 표식이 등장했다.

 

한승원 생가가 남파랑길 도중에 있지 않지만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큰재산과 용두산 사이의 한재 고개를 올라가다가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작가의 생가는 마을 구석 산 바로 아래에 있다. 

 

한승원 작가는 9남매 중의 차남으로 태어나 서라벌 예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장흥에서 공부했다. 대학에서는 "등신불"의 김동리에게서 수학했는데, 김동리의 대표적인 제자가 바로 "토지"의 박경리 작가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한승원의 작품들에서 워낙 장흥이 잘 드러나다 보니 생가를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집은 그냥 사람이 살지 않는 농촌 주택이었다. 장흥군에서는 한승원 작가 외에도 이청준 생가, 송기숙 생가, 김녹촌 생가를 소개하고 있다.

 

한승원 생가에서 길을 돌아가기 싫어서 밭길을 가로질러 원래의 남파랑길로 돌아왔다. 멀리서 보니 한승원 생가는 전형적인 농촌주택이다. 이분은 사실 작품보다는 이분이 낳은 자식의 이름으로 먼저 알았었다. 3남매를 키웠는데 장남과 딸이 모두 등단했다. 이분의 딸이 바로 "채식주의자"로 영국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다.

 

나무 그늘의 보호를 받으며 천천히 한재를 오른다.

 

한승원 소설에 등장하는 "아래 번덕지"라는 장소를 소개한 글이다. 세월이 흐르며 없어졌을 마을의 공간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서 되살아나는 현장을 목격한다.

 

한재를 넘어가는 길, 오르막 길 아래 작은 공원에는 한승원 연작 장편소설 "아버지와 아들"에 있는 겨울 폐사라는 작품의 일부를 적어 놓았다.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비극적인 가족의 모습과 갈등 상황이 이념 갈등이 여전한 현대 사회나 다를 것이 없다. 폐사는 폐쇄된 절을 의미한다. 주인공의 아들이 은거하는 곳이다.

 

길은 한재 공원에 도착했다.

 

한승원 문학길에서 만났던 시비를 한재 고개에서도 만난다. 한재고개라는 시를 적어 놓는다. 이 고개를 넘어가던 신상 마을의 일상이 담긴 듯하다.

 

한식 지내러 왔다가 한재고개 언덕지 풀밭에 엉덩이 붙이고 앉는다.
고살바위 주위로 진달래꽃이 불처럼 타오른다.
동무들과 자치기하고 씨름하다가 회진 뒷산에 핏빛 노을이 지면
풍경 뎅그렁거리는 소 끌고 집으로 돌아가 팥죽 먹던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나 벌써 강 하구에 흘러와 있다.

 

길은 고개를 넘어 덕산 마을 방향으로 내려간다.

 

회진리 앞바다를 보면서 길을 내려간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공지산 아랫자락의 길은 내일 80코스로 걸어야 할 길이다.

 

길은 덕산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 외곽길로 돌아간다. 지금 이동해서 보는 앞바다 풍경에는 회진리 마을 앞의 작은 탱자섬도 등장한다.

 

덕산 마을 외곽을 돌아가는 길, 길이 북쪽을 향할 때는 천관산의 전경이 위엄 있게 다가온다.

 

산 허리에 자리한 덕산 마을 입구에는 창고처럼 생긴 커다란 덕산다목적복지관이 있었다. 실내에서 문화, 체육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열 수 있으니 주민들에게는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덕산 정류장 다음이 회진이니 이제 종점이 멀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읍내로 이동한다.

 

길은 덕산마을 입구인 덕산 삼거리에서 회진로 큰길을 만나서 우회전하여 길을 이어간다.

 

회진교를 넘어 회진리로 들어간다. 다리 너머로 국가어항인 회진항을 보면서 길을 이어간다.

 

읍내로 들어가면서 바라본 천관산, 맑은 날씨이지만 오늘 내내 천관산 위에는 구름이 떠나지 않는다.

 

읍내로 들어가 여정을 마무리하고 하룻밤 휴식을 취한다. 평점과 후기가 좋았던 모텔을 찾아가 방이 있냐고 물으니 촬영하러 온 사람들 때문에 방이 없다고 한다. 평일이라 방을 구하기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방이 없다니...... 문제는 주인아주머니의 그다음 말이었다. "다른 모텔로 가셔도 방이 없을 거예요. 매년 이맘때면 촬영하러들 많이 와서 방이 없어요. 어제 도 남파랑길 걷는 분이 왔었는데 그분은 텐트가 있어서 옥상에다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고 가셨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자 그 당황스러움은 생각을 멈추게 했다. 일단, 모텔을 나와서 마음을 가다듬고 그 아주머니의 말을 그대로 받지 말고 다른 모텔을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이제는 좋은 모텔 구하기는 둘째고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모텔에 들어가 방이 있냐고 물었는데 방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첫 모텔의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한 것인가? 우리를 골린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흘린 것인가? 아니면, 다른 모텔들에게 도움을 주기 싫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무엇이든 정보를 듣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고 활용하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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