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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선 화양로 대로변을 걸어온 남파랑길 56코스는 화양면 나진리를 접어든다. 화양면 사무소 앞을 지나 소장리 마을로 이어지는 소장길로 우회전하면 소장동 고개를 넘어 소장 마을에 이르고 굴구지를 지나 안포에 닿는다.

 

웅동 교차로를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지나니 화양면 사무소 앞으로 또 다른 바다가 펼쳐진다. 남해안은 크고 작은 만과 곶이 만들어내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독특한 풍광이 이어진다.

 

화양면 나진리로 들어선 길, 표지판을 보면 정면으로 직진하면, 즉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여수반도 끝자락에서 다리로 연결된 백야도로 갈 수 있고 서촌리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화양면을 가로질러 반대편 서쪽으로 갈 수 있는 지점이다.

 

화양면 사무소가 있는 곳에 나진 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지만 주소로 따지자면 웅동 교차로에서 이미 나진리에 들어섰다. 나진이라는 단어가 "비단처럼 아름다운 포구"라는 의미라고 하니 나진리에 대한 생각과 기대가 달라진다.

 

 

한동안 4차선 대로변을 걷던 남파랑길은 대로변에서 우회전하여 소장동 고개 방면으로 길을 잡는다. 여수시 시내버스가 다니는 길을 따라간다.

 

소장동 고개로 향하는 오르막길은 보행자를 위한 갓길이 없어도 워낙 차량이 많지 않은 곳이라 위험하지 않은 길이라고 말하수는 있지만 가끔씩 승용차나 버스를 만나면 운전하는 기사나 걷는 우리 모두 깜짝 놀라는 상황임을 숨길 수는 없다. 아무튼 현재의 상황과 무관하게 도로변에서 만나는 대나무 숲은 만날 때마다 언제나 처음 만난 것 같은 새로운 활력을 선사한다.

 

고도가 아주 높은 것은 아니지만 오르막 길은 늘 큰 무게로 우리를 짓 누른다. 오르막의 무게는 아무리 4월 중순 봄기운이 왕성해도 소용이 없다.ㅠㅠ.

 

소장동 고개를 넘어선 길은 작은 산들 사이에 포근하게 자리한 소장마을로 들어선다.

 

그저 평범한 어촌 마을인 것 같은 소장 마을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마을이 다르게 보인 것은 단순하게 담벼락이 그림으로 칠해졌다,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를 가꾸고 있다, 깔끔한 마을 쉼터가 있다가 아니었다. "소장공동체"라는 이름으로 2011년에 설립한 마을 기업이 눈에 들어왔다. 나만의 이익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마을 기업을 세우고 자체적인 수산 자원 관리와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니 참 좋은 모델이 아닌가 싶다. 이 마을에서 나오는 홍합이 그렇게 좋단다.

 

마을 구성원이 함께 잘 사는 공동체, 내가 마을의 일원으로 있지 않았지만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가는 중에도 푸근함이 느껴진 것은 마을의 구성원의 넉넉함이 전해진 것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본다. 비록 현실과 괴리가 있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행복한 상상이다.

 

소장 마을을 지난 길은 굴구지 마을로 향한다.

 

길은 굴구지 마을을 지나는데 지도에서 지형을 보면 마을이 해안에서 깊이 들어와 굴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소장마을에서 굴구지로 가는 길 중간에 발통기미라는 특이한 이름의 마을이 있는데 고기 잡는데 쓰이는 발통처럼 생긴 해안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철조망을 넘은 등나무꽃 향기가 여수 땅에서 나그네의 여독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굴구지 마을로 들어선 남파랑길은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안포로 향한다. 개인사유지라는 경고판이 있었는데 도로조차도 사유지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길 곳곳에 생채기를 내어 놓아서 일부러 통행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씁쓸한 그림이었다. 개발의 광풍이 이곳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모양이다.

 

굴구지 마을에서 안포로 향하는 길 농로를 가로질러 길을 이어간다.

 

대나무 숲을 별풍처럼 두르고 있는 한 폐가를 만나니 저런 집을 고쳐서 살고 싶다고 충동이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굴구지와 안포 사이의 방조제 둑방길을 지나며 육지 쪽의 습지와 반대편 바다를 동시에 보는 느낌이 특이하다. 습지의 갈대가 새 줄기와 새잎을 올리고 있지만 지난가을의 흔적 속에 묻혀있는 모습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습지와 바다 모두 생명이 숨 쉬고 있는 곳이지만 인간의 한계에 갇혀있는 필자는 피상적인 모습에 이런저런 느낌을 받을 뿐이다.

 

산이 바다를 만나 멈춘 곳, 바다가 땅을 만나 멈춘 곳, 그 해변에서 사람은 감상에 젖고, 문학을 논하며, 생을 다룬다. 남해는 굴곡진 아름다운 해변이 곳곳에 있으니 글 쓰는 이들이 애정하는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방조제 둑방길을 지나면 해안을 따라 걷기 좋은 해안 산책로가 안포까지 이어진다.

 

해안 곳곳에 인근 어촌계에서 종패를 뿌리고 관리하는 곳이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지만 이곳이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번영하며 살아가는 곳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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