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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 공원까지 이동한 남파랑길 53코스는 비봉산과 고락산 사이의 계곡을 통과한다. 쌍봉로 도로와 나란히 동쪽으로 이동한다. 쌍봉로와 함께 하던 길은 둔덕동에서 좌수영로 남쪽으로 기수를 돌려 옛 미평역을 지난다.  미평공원을 지나 남동쪽으로 이동하다가 터미널 인근에서 산책로를 벗어나 여수 종합 터미널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학동 공원을 떠난 길은 비봉산 아랫자락을 지난다. 이곳은 전봇대도 특이하다. 그냥 콘크리트 전봇대를 세울 수도 있었을 텐데 주위 환경과 어울리도록 산화철 도료로 칠한 모양이다. 

 

산 아래 계곡을 통과하는 구간이니만큼 산을 자른 절개면이 무척이나 거칠다. 전라선 철도가 처음 놓인 것이 일제 강점기이니 그 당시에 철도를 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깊은 계곡을 통과한 길은 둔덕동으로 나온다. 자전거 거치대를 보니 산책로 인근에 살면서 자전거로 오갈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도 해본다.

 

둔덕동으로 들어오니 좌측 산언덕에는 큰 사찰이 하나 자리하고 있고 바로 전면에는 대형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독특한 그림이 펼쳐진다.

 

옛 철교가 있던 자리로 좌수영로 도로를 건너면 옛 미평역을 앞두고 만성로 도로 아래를 지하보도로 지난다.

 

지하보도는 미평 지하보도 갤러리라는 이름으로 시와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어둡고 음습한 공간이 될 수도 있는 지하보도를 작품들과 조명으로 색다르게 만들어 놓았다.

 

발걸음을 붙잡아 잠시 글을 읽게 했던 여수 출신 시인 최향란의 "바람의 비밀"이라는 시. "사랑했지, 혀에 가시가 박혀 예전에는 못한 말이야"

 

김향숙 작가가 해바라기를 소재로 그린 "사랑을 품다"라는 수채화와 김현애 작가의 "여수 밤바다"라는 아크릴화.

 

미평 지하보도 갤러리를 나오면 이어서 미평동 시가지 뷰와 함께 미평공원을 만난다. 옛 미평역 부지에 조성한 공원이다. 멀리서 보아도 미평동 시가지의 벚나무 가로수가 벚꽃으로 장관이다.

 

이런 폐역사가 중간중간에 있어 좋은 화장실도 사용할 수 있고 훌륭한 쉼터도 있으니 이런 산책길이 또 있을까 싶다. 마산에서도 폐선을 활용한 산책길이 참 좋았으나 여수만큼의 규모는 아니었다. 좋은 공원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에 멍 때리며 쉬다가 길을 이어간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미평공원을 빠져나와서 미평 초등학교를 지난다.

 

좌측에 호암산을 두고 남동쪽으로 내려가는 길, 베프로라는 길이름을 붙여놓았다. 여수를 장애인도 쉽게 관광할 수 있는 무장애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한다. 베프로라는 길이름의 의미는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하자는 것이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이곳부터는 보행로도 2차선이다.

 

우측 언덕 위에 자리한 여수 MBC 방송국도 보이고 전면으로는 장군산을 보면서 걷는다.

 

호암산을 감아 돌아가는 길 하얀 벚꽃, 붉은 홍가시나무, 연한 초록 잎을 내기 시작한 나무들까지 총천연색 풍경에 기분이 좋다.

 

좌측 언덕으로 척산산성이라고도 부르는 자산산성이 있는 오림동으로 넘어오면 시화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자산산성은 백제시대의 산성이라고 한다. 

 

컴퓨터로 인쇄한 것이 아닌 손으로 직접 그리고 쓴 시화가 인상적이다. 여수 출신 강경아 작가의 "푸른 독방"이라는 시는 아주 강렬했다.

 

문패는 플러그가 뽑힌 채 돌아누웠다
착각과 혼돈이 팽팽하게 충돌하는 곳에
짓밟힐수록 더 빳빳해지는
당신의 붉은 혀와 오래된 두 귀가 있다
조울을 앞세워 불안을 지피는 밤이 오면
애매모호한 상형문자들만 먼지처럼 쌓인다

또르르 발길에 차이는 투명한 알람 소리
밤새 다독이지 못해 눅눅해진 이름들

다시,
꺾인 무릎을 세우게 하는 내겐 너무나
딱딱하고도 거룩한 독방

 

신병은 작가의 "골다공증"이라는 시는 아주 짧은 시지만 마치 아주 큰 파도가 몰려오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하늘나라 먼 길을 몸 가볍게 날기 위해 어머니는 지금 몸을 비우시는 중이다" 다시 읽어도 와우!

 

이제 남파랑길은 산책로를 더 이상 계속 따라가지 않고 우측으로 빠져 골목길을 통해 여수 터미널로 향한다. 산책로는 진남 체육공원까지 쭉 이어진다.

 

골목길을 빠져나가는데 백반집을 발견하고는 53코스도 마무리했으니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했지만 오전 10시가 내외가 되면 출출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조금 이른 시간으로 식당에 온 사람들은 아침식사를 하는 모양이었지만 우리는 1차 점심 식사를 한다. 반찬은 뷔페식이고 주인장께서 국과 생선을 내주셨다. 현지의 좋은 백반집을 만나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여수 종합 터미널에서 53코스를 마무리하고 54코스를 바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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