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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항을 출발한 남파랑길 44코스는 평산리를 감싸고 있는 망기산(341미터) 아랫 자락을 돌아 임진성 입구에 이른다. 매립지에 세워진 골프장을 돌아가는 길이다. 

 

충효라는 비석이 세워진 평산 1리 마을 회관을 뒤로하고 평산 마을 안쪽으로 길을 잡는다.

 

켜켜이 쌓인 마을 담장을 보니 평산 마을의 유서 깊은 역사가 느껴지는 듯하다. 다랭이 논을 만들듯 집터를 만드는 것도 비슷했던 것인지, 아니면 마을이 커지면서 다랭이 논에 집을 지은 것인지 모를 일이다.

 

평산 1리를 출발했던 남파랑길 44코스는 이제 평산 2리로 들어선다.

 

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평산 마을의 모습은 해무 덕택에 마치 히말라야 산중 마을을 보는 느낌이다.

 

마을 언덕에서 만나는 풍경에는 선명함은 없지만 대신에 신비로움이 스며들었다. 

 

해무 덕택에 해무 아래로 바다인지 땅인지는 모르겠으나 언덕 위의 건물들이 마치 히말라야 고봉 위의 자리 잡은 산장처럼 보인다. 

 

망기산 아랫 자락을 지나는 길, 산 아랫 자락을 걷지만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길이다. 산 아래로 자리 잡은 골프장이 간척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간척지에 골프장을 짓는다고 모두 이곳과 같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황무지로 방치되는 간척지보다는 나은 모습이 아닌가? 하는 단순한 생각도 해본다.

 

망기산 자락의 길 주변으로 펼쳐진 방치된 다랭이 밭을 보니 저럴 수밖에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온갖 상상 끝에 저 땅 주인은 다랭이 밭에 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그냥 두다가, 좋은 값에 파는 것을 마음에 두고 있을 것이란 무의미한 결론을 내리고 만다. 씁쓸한 상상이다.

 

임도라고 해야 할지, 농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덩굴과 잡초가 우거진 다랭이 밭을 보며 걷는 느낌은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풍경의 일부라고 하기에도 답답한 그림이다.

 

상황이야 어찌 되었던, 아마도 이 길은 소도 지나고, 지게를 멘 농부도 지나가던 다랭이길에 콘크리트 포장을 했을 것이다. 피땀으로 다랭이 밭을 일구던 사람이 떠나니 땅도 그 활력을 잃어버린 형국이다. 결국 사람이 열쇠다. 국유림이라면 나무라도 조림했을 텐데, 개인의 재산권이 연관된 문제이니......

 

방치된 다랭이 밭의 모습에 가라앉은 기분을 살려주는 보랏빛 진달래를 만났다. 눈을 시원케 하는 색상과 자태에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의 시간을 갖는다.

 

작은 소류지를 지나 마을 근처로 내려오니 살아 있는 다랭이 밭을 만난다. 엄청난 높이의 비탈에 만든 농지이고 트랙터가 다닐만한 큰 농지도 아닌데 깔끔하게 밭을 갈아 놓고 봄농사 준비를 끝내놓았다. 주인을 잘 만난 다랭이 밭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망기산 자락을 내려오면 오리 마을이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길은 남면로 도로로 건너서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데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이동하면 남면 사무소를 만난다. 오리라는 마을 이름은 남면 읍내까지 5리 거리에 있는 마을이라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남해 해성 중고등학교 입구와 오리 마을 회관을 지나 마을길을 통해 골프장 방향으로 도로로 나간다.

 

오랜 돌담이 인상적인 오리 마을의 마을길을 지나 골프장 쪽 도로로 나가면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진 마을 쉼터를 만날 수 있다. 쉼터에는 공중 화장실도 있고 벤치도 있는 훌륭한 휴식 공간이었다.

 

오리 마을 입구 쉼터의 나무는 작은 분재를 뻥튀기해 놓은 모양 같았다. 

 

오리 마을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골프장 옆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간척지에 만든 고급 골프장이라는 것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2년 동안 부산에서 바지선으로 흙을 퍼다가 붓는 방식으로 골프장을 건설했다고 한다.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를 이동하여 갯벌에 흙을 퍼붓고 골프장을 만들었으니 정말 상상이 가질 않는다.

 

남파랑길은 양지천을 건너서 골프장 옆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우회전하여 1백여 미터의 기왕산을 오른다.

 

기왕산을 오르며 임진성이 어떤 곳일지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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