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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해무와 숨바꼭질하는 가운데 남파랑길 43코스는 사촌 해수욕장에서 다시 짙은 해무 속에 잠긴다. 사촌 해수욕장을 떠나면 잠시 남면로 도로변을 걷지만 이내 해안 숲길로 들어가 삼여도 해안에 이른다. 약간은 험한 구간이므로 튼튼한 신발을 착용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모래해변을 가진 사촌 해수욕장은 깔끔한 해변도 인상적이었지만 울창한 송림 앞으로 크지 않은 도로가 지나는 것도 독특했다. 이렇게 좋은 해수욕장에 아직은 상업화의 물결이 출렁거리지 않고 있는 모습도 좋았다. 우람한 소나무들이 우거진 해안에서 신발을 벗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유명 해수욕장과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결코 작지 않은 사촌 해수욕장에도 해무를 뚫고 석양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해수욕장 끝자락에서 바라본 사촌 해수욕장의 모습. 물 빠진 모래 해변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뒤로 우리가 지나왔던 선구리의 언덕을 배경으로 해무가 연기처럼 흘러 다닌다.

 

길은 사촌 해수욕장 끝자락에서 언덕을 오르며 해안 숲길 걷기를 시작한다.

 

오후 5시가 넘어가는 시각, 석양이 해무를 헤치며 우리에게 빛을 주고 싶어도 이제는 그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울 내내 남파랑길을 걸으며 해가 짧은 것이 아쉬웠는데 이제는 오후 6시가 넘어도 환하다. 그래도 해가 진 다음에 숲 속이나 위험 구간을 걷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급해진다.

 

경사도가 있는 오르막을 오른다. 사촌 마을 뒤편에 자리 잡은 145미터의 시루봉 자락이다. 지금은 덩굴과 잡초가 뒤덮고 있지만 이 오르막 길 옆으로도 다랭이 밭이 있었던 모양이다. 

 

옛날 어르신이라면 지게를 지고 이곳을 지나면서 작은 돌 하나 올리면서 소원을 빌던 성황당이었을 같은 커다란 나무 아래도 지난다. 그런데, 나무 아래를 유심히 보면 이곳도 다랭이 밭이었던 모양이다. 산비탈에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들었을 다랭이 밭에 나무가 뿌리를 내려서, 이제는 나무가 원래 이 땅에 있었던 주인인양 언덕에 우뚝 서있다.

 

남해 바래길의 다랭이 지겟길에서 다랭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게 대신 배낭을 둘러멘 걷기족이 이 오솔길을 채우고 있다.

 

해무에 갇힌 석양과 산봉우리가 신비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산을 넘어서 작은 하천을 건너면 남해군 남면 임포리에서 평산리로 넘어간다. 길은 여전히 다랭이 밭 사이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걷는다.

 

다랭이 밭을 계속 보다 보니 이제는 무엇을 심든 다랭이 밭을 지키고 있는 분들이 고맙다. 이번에는 특이한 나무를 심어 가꾸고 있는 다랭이밭을 만났다.

 

가까이에서 보니 비파나무가 꽃을 피웠다. 삼국지의 조조가 좋아했다는 황금색의 비파나무 열매는 생과도 맛있지만, 잼, 효소, 식초등으로 활용하고 잎은 차로도 마신다고 한다. 이런 나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랭이 밭을 일구면서 이곳에 내려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산리로 진입한 남파랑길은 잠시 남면로 도로변을 걷다가 다시 해안으로 내려온다. 사유지 때문에 길을 이어갈 수 없는 모양이다.

 

150미터 정도 도로변을 걷던 길은 다시 해안으로 길을 잡는다. 이곳에도 새로운 펜션이 들어서는지 한창 공사 중이었다.

 

다랭이 밭이 오랜 시간 묵혀져 황무지가 되느니, 펜션으로 활용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해안으로 나왔는데 다시 해무가 가득 해지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일몰 시간이 지척인데 해무까지 가득하니 어스름한 분위기 속에서 발걸음만 바빠진다.

 

길은 50여 미터의 독산 주위를 돌아 삼여도 포구로 향한다.

 

50여 미터라도 산은 산이다. 독산을 오롯이 넘지 않고 산 아랫 자락을 걷는 것이 다행이라 여겨지는 길이다.

 

삼여도 해변 역시 해무를 피하지 못했다. 공중 화장실이 있어서 그런지 서너 팀의 캠핑족들이 해변에서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해무가 없었다면 바다로 주민들이 삼여도라고 부르는 암초 세 개가 보일 텐데, 지금은 해무 때문에 삼여도와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삼여도는 보이지 않는다.

 

"여"라는 말은 물속에 잠겨 있다가 물이 빠지면 보이는 암초를 지칭하는데, 삼여도라 했으니 이런 여 세 개가 나란히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여담으로 세 개의 암초를 의미하는 삼여가 아니라 세 가지의 여유(남을 여, 餘)를 의미하는 삼여도 있다. 하루에서는 저녁이 여유를, 일 년에서는 겨울의 여유를, 인생으로는 노년의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다. 나름 공감되는 부분이 있는 이야기다.

 

삼여도 해변 이후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특이한 해안길이 이어진다. 해안 바위를 걷는 코스다. 빗길 등에서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포구를 보면 지금은 물이 상당히 빠져 있는 상태지만 물이 들어와 만조 상태에서 파도라도 치는 날이면 이 길도 장난이 아니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가지 않아 바위 오르막길 입구에는 "만조주의"라는 경고판이 붙어 있다.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이 당황하면 무슨 일을 당할는지 모를 일이다. 안전대와 줄을 잡고 조심스레 바위를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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