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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여도 해변을 떠나 숲길로 들어간 남파랑길은 해안 숲길을 벗어나면 숲 사이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유구항에 도착한다. 유구 방파제 이후로 잠시 숲길을 돌아 다시 해안으로 나오면 인근 펜션에서 하룻밤 휴식을 취했다가 해안길을 거쳐 평산항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삼여도 해안에서 시작한 거친 길은 언덕 위로 올라서면 끝나고 평이한 숲길이 이어진다. 삼여도 해변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갯바위 위의 낚시꾼들의 수다 소리가 고요한 숲을 울린다. 해무가 가득하여 먼바다가 보이지 않는 잔잔한 바다에서 낚시를 하면 호수에서 민물낚시를 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잡초가 우거진 다랭이 밭을 지나면 넓은 숲길을 만나서 길을 이어간다. 

 

어둑어둑해진 숲길을 말없이 걷는다. 저녁 6시가 지나는 시각, 숲길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키 큰 나무들이 울창해서 걷기 좋은 숲길이지만 조급해진 마음은 주변 풍경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숲길을 지나 남해 바래길 표지가 서있는 곳에서 포장 농로를 만나 우회전하여 길을 이어간다. 유구 마을이라는 표식, 남파랑길 리본, 좌회전하면 길이 없다는 안내까지 기둥 하나에 여러 가지 정보가 담겨있다. ㅎㅎ

 

뒤돌아보면 해무가 시야를 흐리게 하지만 가까이에는 삼여도 해변, 멀리는 사촌 마을의 시루봉이 눈에 들어온다.

 

구릉지에 조성된 농지들을 연결하는 농로를 따라 유구 마을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이동한다. 유구 마을은 의외로 농지가 많아 주민 상당수가 농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아무리 다랭이 밭이라 하더라도 농기계가 접근할 수 있으면 농사를 지으며 다랭이 밭을 지킬 수 있듯이. 농로로 연결된 구릉지의 농지들은 봄 농사 준비가 한창이다.

 

이런 길에는 농지도 있지만 어김없이 공동묘지도 나타나는 법, 특이하게 이곳에는 오벨리스크 모양으로 선산 입구라는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얼마 전이었으면 벌써 캄캄했을 시간이지만, 해무 뒤편으로 여전한 석양이 반갑다.

 

유구항 뒤편 언덕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이다. 앞으로도 뒤로도 해안 풍경의 주인은 언덕에 자리한 펜션들이다. 저 펜션들 중에 오늘밤 우리가 묵어갈 숙소는 어디일까? 가늠해 보지만 알 수 없다.  도시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평일에는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고 주말이면 도심을 벗어나 여가를 즐기는 문화가 과연 지속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떠한 형태이든 도시인과 지역 경제가 상생하고, 단순 숙박과 소비에 머물지 않고 문화, 역사, 예술, 환경 등이 어우러지는 펜션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펜션이라는 말은 유럽에서 쓰이는 용어이고 영어권에서는 로지(lodge)라는 말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영어에서 펜션(pension)은 연금을 의미한다.

 

언덕을 내려가면 아담한 유구항을 만난다. 어민들의 집 몇 채가 전부인 작은 포구이다.

 

길은 포구 아래로 내려갔다가 포구 건너편 언덕을 올라 해안길로 나가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유구 마을 포구를 지나 유구항 건너편 언덕을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유구 마을 안쪽의 모습은 계단식 논 너머로 교회 첨탑의 불도 가로등도 하나 둘 켜진, 여유로운 저녁 풍경이다.

 

불 켜진 펜션들을 지나 해안으로 나간다. 해변에 있는 펜션 앞을 지나고 있으니 고기 굽는 냄새, 시끌벅적 저녁 식사를 하는 소리가 부럽다. 이제 우리도 숙소에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룻밤 쉬어간 숙소는 해변에서 5백 미터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남해 올레 펜션이었다. 지난주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주는 조용하다고 하시면서 2층의 조용한 숙소를 내어 주셨다. 깔끔한 숙소에서 하룻밤 잘 쉬고 여정을 이어간다. 오늘도 어제처럼 해무가 계곡을 채우고 있는데 과연 오늘은 어떤 날씨를 맞이할지 기대가 된다.

 

숙소에서 해변으로 나오니 43코스 종점까지 1Km 정도를 남기고 있다. 오늘도 해무가 가득한 해변을 따라서 평산항을 향해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다.

 

해안 방호벽 끝자락에서도 해무 덕택에 바다 구경을 하지 못하고 포장 해안길을 따라 길을 이어간다.

 

바다도 육지도 해무가 장악한 세계에서 내 시선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뿐이다. 아름다운 풍광 감상이라는 단어는 쏙 들어갔다. 그러다 발견한 숲 속 진달래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새침한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진달래는 그 무엇도 흉내 낼 수 없는 예쁨이 있다. 봄이다! 멋지다!라는 감탄이 절로 튀어나온다.

 

해무가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남해 마늘이 가득한 언덕을 지나니 언덕 아래로 항구가 보이는 것이 아마도 평산항인 모양이다. 

 

언덕배기 집에 자목련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마을의 규모가 상당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이 커서 평산 1리와 평산 2리로 나누어져 있다.

 

드디어 평산항에 도착했다. 좌회전하여 바래길 작은 미술관 앞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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