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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남면으로 접어든 남파랑길 42코스는 두곡 월포 해변을 지나면 언덕 위 다랭이 밭 사이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서 석교리를 지나 홍현리 해안으로 내려가고 홍현리에서 잠시 도로를 따라 걷다가 다시 해안길로 홍현 해우라지 마을에 이른다.
동해 바다였으면 파도가 몽돌을 씻으며 내려가는 몽돌 소리라도 들렸을 텐데 해무가 짙게 깔린 잔잔한 남해 바다에서는 자갈과 물의 흔적만이 보일뿐이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호수 같다.
해무가 없었다면 앵강만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보면 걸었을 테지만 보이는 것은 송림 우거진 깔끔한 해변 산책로와 몽돌 해변, 모래 해변이다. 해무 속에서 이곳에 캠핑하러 나온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해무가 잔잔한 바람을 타고 바다에서 육지로 몰려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겨 놓는다.
해무가 육지로 몰려오면서 해안 방호벽에 부딪히며 올라가는 모습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해수욕장을 지나 월포 마을 포구에 이르면 언덕길로 길을 잡는다.
언덕 위 농로를 통해서 숙호 마을의 숙호숲으로 가는 길이다. 숙호숲은 해변에 자리한 울창한 송림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마을로 가는 길에 만난 활엽수 숲길도 훌륭하다. 숙호 마을이라는 이름은 마을의 지형이 호랑이가 자고 있는 형상이라고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길 중간에 바위 해안으로 내려가는 데크 계단이 있기는 했지만 남파랑길은 계단을 통해 해안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길은 데크길로 가지 않고 계속 작은 농로를 통해 숙호숲으로 향한다.
작은 언덕만 올라와도 해안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경관이 펼쳐진다. 길은 지금은 폐교되어 남해군 청소년 수련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장소 앞을 지나 해안으로 나간다. 산업화와 농촌 인구 감소로 인한 학교 폐교는 남파랑길을 걸으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현실이다.
멀리 해안으로 숙호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람한 소나무들이 해안으로 즐비하다.
숙호숲 해변에서 처음 만난 것은 예쁘게 생긴 몽돌과 투명하게 맑은 바닷물이었다. 파도가 조금 치면서 몽돌 소리도 듣고, 해무가 걷혀서 멀리 노도까지 볼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우람하게 잘 자란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숙호숲을 보면 참 좋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말 훌륭한 송림이었다. 나무를 잘 키운 마을은 나무도 좋고, 마을도 좋은데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울창한 송림은 2백여 미터 이어진다.
숙호 마을의 해변을 걷다가 뒤돌아보니 숙호 해변 끝자락의 울창한 송림과 함께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도 볼만할듯하다. 해안선을 걸으며 길은 남면 석교리에서 남면 홍현리로 넘어간다.
해안선 끝까지 가면 길이 없어서 남파랑길은 중간에 홍현 마을 정류장이 있는 도로로 올라가서 좌회전하여 도로변을 따라 걷는다.
도로 위로 올라서서 좌측의 숙호숲과 우측의 홍현 마을 포구를 보니 해무가 남아 있는 바다 풍경이 신선이 노니는 세계를 보는 것 같다. 해무가 완전히 걷혔다면 앵강만의 풍경을 보았을 것인데, 해무가 남아 있으니 해무 뒤로는 앵강만이 아니라 머나먼 미지의 세계가 있을 것만 같다.
주변으로 펜션이 많아서 그런지 홍현 마을 언덕에 바람개비와 양 인형을 세워 놓았는데, 망가진 인형들이 조금은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전 내내 우리의 시야를 가렸던 해무가 조금씩 걷히고 바람개비 너머로 바다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니 눈이 상쾌하다.
홍현 마을에는 석방렴이 두 곳에나 설치되어 있는데, 지금은 밀물 때라 석방렴이 물속에 완전히 잠겨 있음에도 멀리서도 그 모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밀물 때 석방렴에 들어왔다가 썰물 때 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인상적이었던 숙호 마을의 풍경을 뒤로하고 홍현 1리 아랫마을 진입로 표지석을 따라 좌회전하여 해안으로 내려간다.
홍현 마을 포구로 내려가는데 어디서 시끌시끌한 사람들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마을분들이 무슨 잔치라도 벌이고 계시는가 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단체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정자와 포구 주변을 점거하다시피 하여 시끌벅적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산악회나 친목회로 버스를 대절해서 함께 걸으니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고 좋겠지만, 호젓하게 둘이서 걷는 단출한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분들이 탱크처럼 조용한 마을을 휘젓고 지나가실 것을 생각하면 왠지 나의 발걸음조차 조심스럽다. 조용하게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말고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바람을 가져본다. 저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서 발걸음을 서두른다.
남면의 남쪽으로 내려가는 상황이므로 바다 반대편은 상주면의 해안이 보이는 것이 맞지만, 해무 덕택에 말끔한 수평선의 바다 풍경을 만난다.
홍현리의 넓은 해안길 옆으로는 언덕 아래로 울창한 숲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 또한 캠핑족들이 탐낼만한 공간이겠다 싶었다. 멀리 포구 뒤로 우리가 올라가야 할 언덕길도 보이기 시작한다.
앵강만 속에 포근하게 들어와 있는 바다이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해무 덕택에 바다 위의 어선 한 척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느낌을 준다. 해무가 만든 수평선 뒤로 산의 모양 살짝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해안길 끝자락에서 만난 바위 절벽과 울창한 숲, 작지만 물이 폭포처럼 계속 흘러서 덩굴 식물도 있고 동백도 있는 것 같고 다양한 식물들이 원시림 같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만나는 순간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던 곳이다.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그림은 작은 몽돌이 깔린 해변에서 만난 투명하고 맑고 바닷물이었다. 이런 바다를 품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막연한 부러움이 작동한다.
이쯤에서는 역방향으로 걷고 계신 부부 커플도 만났고, 여성 두 분이 조용히 걷고 계신 분들도 만났었다. 단체 여행객에 비하면 가벼운 인사도 반가운 사람들이다. 남해 바래길을 목표로 걷는지, 남파랑길을 걷는지 모르겠지만 주말을 맞이해서 아름다운 길을 걷는 문화가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남해 바래길의 칭찬할만한 점은 해변길에 배치된 넉넉한 화장실이었다. "남해 방문의 해"와 같은 이벤트가 도움이 되었겠지만 아무튼 넉넉한 화장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남파랑길이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적절한 화장실을 배치하고 주민과 공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길은 해안길을 벗어나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482미터의 설흘산 아랫 자락으로 이어진 다랭이 밭 사이의 농로와 해안길을 걷는다.
다랭이밭의 돌담 사이에 자리한 고사리와 다랭이 밭 전체를 휘감고 있는 잡초들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피땀으로 일구었을 다랭이 밭이 이제는 돌보는 사람 없이 잡초가 우거진 황무지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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