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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앵강 다숲길과 함께 하고 있는 남파랑길 42코스는 독특한 분위기의 미국 마을을 지나 임도와 숲길로 송등산 아랫 자락의 용소리를 걷는다.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를 지나면 남면 당항리로 접어들면서 월포 해변에 닿는다.

 

미국 마을의 전경은 집집마다 나름의 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미국의 고급 주택 단지를 보는 느낌을 준다. 앞서 방문했던 독일 마을과 비교하면 상업성의 파고가 이곳까지 밀려들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한적한 느낌이다. 22 가구의 주택과 민박형 펜션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단출하다.

 

남파랑길은 미국 마을 위쪽의 수로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북쪽으로는 호구산이 바람을 막아주고 남쪽으로는 앵강만 바다와 김만중의 노도를 바라볼 수 있는 곳, 마을 위로는 용문사 계곡이 있고 마을에 작은 저수지가 두 개나 있는 물도 풍부한 곳이다. 

 

미국 마을을 지나면 송등산(617m) 아랫 자락의 산허리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바다를 조망하며 두곡 월포를 향해서 길을 이어간다. 해무만 없었다면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무가 바다 풍경을 가리고 있지만 산 허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농사철이 오면 물이 흘러갈 수로 위에 길을 만든 것은 좋은 아이디어였다. 조금은 아찔한 느낌이 드는데, 물이 흐를 때면 수로 위를 걷는 느낌은 더 짜릿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산 아래는 해무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산 아래로 넓게 펼쳐진 논밭들은 벌써 밭갈이를 끝냈다. 3월 초순에 남해는 벌써 농번기에 들어섰다.

 

산 허리로 이어지는 농로를 걷는 느낌은 푸근함과 평화로움이다. 가끔씩 동네 개들이 짖는 소리가 정적을 깰 뿐이다.

 

들판에 피어난 노란 유채꽃도 농가 마당에서 존재를 뽐내는 하얀 목련꽃도 아직 서늘한 이 계절에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

 

돌담을 쌓아 올린 다랭이밭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길래 돌담 사이에 나무들이 뿌리를 내렸다. 돌담이 지내온 세월만큼이나 우리가 걷고 있는 이길 또한 수많은 사람이 지나갔을 것이고 수많은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포장 임도를 벗어나 잠시 흙길을 걷는 것도 좋다. 콘크리트 포장길보다 생명이 숨 쉬는 것 같아 좋다.

 

흙길을 걸으니 길바닥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는 반가운 식물들도 만난다. 질경이가 반가운 것은 봄이 본격적으로 다가왔구나 하는 신호 때문이 아닐까! 자동차와 사람들이 수없이 밟고 지나갔어도 튼튼하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질경이는 만날 때마다 늘 정이 가는 식물이다. 누군가에게는 성가시고 질긴 잡초이고, 누군가에게는 맛있는 나물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병을 이기게 하는 약초가 되는 존재가 바로 질경이다.

 

수수한 숲길을 걸어온 여정은 이제 하산길로 접어든다.

 

하산길, 마을 입구에서 만난 쑥이 왜 이리도 반가운지, 쑥잎을 코에 들이대고 봄 내음을 한껏 마셔본다.

 

큰길로 내려가는 하산길에서 만난 펜션에서 독특한 풍경을 만났다. 펜션 지붕에서 따스한 햇살을 즐기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와 꽃을 피운 로즈메리다. 철퍼덕 엎드려서 곤한 잠에 빠진 고양이는 사람이 지나가는 인기척이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자신 만의 세상에서 누리는 평온함이 느껴진다.

 

집에서 자라고 있는 로즈메리는 10년이 넘게 살고 있지만 도통 꽃을 본 적이 없는데, 이곳의 로즈메리는 파란 꽃을 활짝 피웠다. 소나무같이 생겨서 줄기를 만져야 향기가 나는 그런 정도의 식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해에 오니 로즈메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큰길로 나온 남파랑길은 월포까지 남서대로 도로변을 따라 이동한다. 도로변도 봄 분위기가 훈훈하다.

 

이건 무슨 꽃일까? 보라색 꽃이 새초롬하게 피었다. 두해살이 풀인 광대나물이다. 어린것은 나물로도 먹는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맛본 기억도 경험도 없다. 지혈제로도 쓰인다고 한다. 접골초와 같이 광대나물을 부르는 다른 이름들도 많은데 가장 재미있는 이름은 잎모양 때문에 붙은 코딱지나물이라는 이름이다.

 

도로변을 걷기는 하지만 남해 바래길과 함께 하므로 넉넉한 보행로가 마련되어 있다.

 

길은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에서 남면 당항리로 접어든다.

 

길에 새겨진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 아이의 손을 잡고 머리에 짐을 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남해 바래길을 상징한다. "바래"라는 단어의 의미는 물때를 따라 바다에 나가 해초를 뜯거나 조개를 캐거나 하는 일들을 의미하는데, 채취한 것을 팔아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작업이라기보다는 가족들이 직접 먹을 먹거리, 찬거리를 마련하시는 일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도로변을 걷던 길은 좌회전하여 해변으로 내려간다.

 

두곡 월포 해안으로 내려오니 산에서와는 다르게 칠흑 같은 해무가 시야를 가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짙은 안갯속에서 당황스럽기도 했으나 어디서 이런 일을 경험해 보나! 하는 색다른 경험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짙은 해무 속에서 바다 풍경은 보이지 않고 구명 튜브를 들고 있는 캐릭터만이 우리를 반긴다.

 

앵강만 안쪽에 자리 잡은 두곡 월포 해수욕장은 월포 마을에서 두곡 마을까지 길게 이어진 해수욕장으로 모래 해변도 있고 몽돌 해변도 있는 곳이다.

 

깔끔하게 정비된 해안 산책로를 걷는다. 올망졸망 몽돌 해안이 이어진다. 산책길로도 바다로도 시야가 뚫리지 않았지만 때로는 바로 앞만 보며 걷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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