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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42코스는 홍현 해우라지마을에서 가천 다랭이 마을까지 환상적인 해안 숲길이 이어진다.

 

다랭이 밭 사이로 이어지던 길은 앞으로 약 2.5Km가 해안 숲길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본격적으로 해안 숲길 걷기를 시작한다. 걸어보면 트레킹화와 등산 스틱을 권장한다는 표지판의 말에 공감이 되는 경로이다. 조금은 험하지만, 그만큼 매력이 있는 코스다.

 

해안 숲길 초반부터 길 아래로 보이는 해안 바위 절벽이 "조심해라! 기대가 되지!" 하고 근엄하게 으름장을 놓는 것 같다. 앵강만 건너편의 해안 숲길에서도 전혀 예상치 못하게 만난  해안 절벽길에 다리가 후들거린 적이 있었었다. 그때의 아찔했던 기억이 슬그머니 다가온다.

 

남파랑길과 남해 바래길이 나란히 새겨진 표지를 따라 오르락내리락 숲길을 이어간다.

 

길은 잠시 도로 인근의 다랭이 밭으로 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도로를 따라가지는 않고 도로 아래의 오솔길로 간다.

 

그 옛날 어머니들이 가족들의 입에 들어갈 해초, 조개, 푸성귀를 마련해서 머리에 이고 집으로 가셨을 바래길이다. 길표지에는 가천 마을 직전에 있다는 가천 암수 바위가 등장했다. 조금은 민망한 모양이리라! 하는 상상을 하며 숲길을 이어간다.

 

홍현 해우라지 마을에서 가천 다랭이 마을로 가는 길은 결코 평탄한 숲길은 아니다. 때로는 침목 계단을 지나고 때로는 돌무더기의 작은 계곡도 지난다.

 

나무들과 안전대가 없었다면 아찔했을 해안 절벽길은 숲 사이로 가끔씩 해무가 가득한 바다가 보이기도 하지만 그저 평안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다. 인생도 그렇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고 모르는 것이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전망대도 만나는데, 전망대는 군인들이 해안을 경비할 때 사용했던 초소 지붕에 설치한 것이었다. 우리가 이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군인들이 해안 경비를 위해 오가던 길이 있었기 때문인 모양이다.

 

초소 인근 양지바른 곳에는 특이한 모양의 풀이 시선을 이끌었다. 대극이라는 야생화였다. 잎과 꽃 모양에 따라 흰 대극, 암대극, 붉은 대극, 두메대극, 풍도대극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뿌리를 약용으로 사용하는데 워낙 쓴맛이 강해서 대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독성이 있고 사람 입맛에는 써도 대극의 앙증맞은 꽃에 날아든 꿀벌을 보니 벌을 불러 모을만한 향기와 꿀이 있는 모양이다.

 

좁다란 바위 절벽길을 지나기도 하고 넉넉한 공간에 나무 벤치가 마련된 공간을 지나기도 한다. 단조롭지 않은 다이내믹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가천 다랭이 마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마을을 벗어나 조금 더 걷고 싶은 이들에게는 최고의 산책로가 아닐까 싶다.

 

가천 마을로 가는 길에 갈림길을 만났는데 멀리 앞서가는 한 분은 남파랑길 표식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아닌 곳으로 이동하고 계셨다. 가천 마을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하여 삿갓매미길, 상수리길, 망수길과 같은 여러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중에 나름 독특한 경로를 택하셨을 수도 있고, 자신이 확보한 GPS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멈추어 서서 그분이 가는 경로를 보고 있으니 조금은 헤매고 계신 느낌도 있었다. 나중에 가천 마을에 도착해서 보니 그분은 단체 여행자들의 선발대 격으로 길을 인도하시는 모양이었는데, 마을 뒤 언덕길에서 단체로 길을 찾지 못해 시끌시끌하는 모습을 보니 남파랑길 표식이 가리키는 망수길 산책로로 가기를 잘했다 싶다. 

 

망수길은 해안으로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형태의 가파른 언덕길이다. 망수가 어부들에게 고기잡이를 지시하던 길이란 의미로 어군 탐지기가 없던 시절 망수가 해안 언덕에서 물고기의 흐름을 파악하여 깃발 두 개로 어선들의 이동 방향과 그물을 내리고 올리는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엄청난 시력과 감각이 필요했던 망수가 이동하며 작업을 지시했을 테니 망수가 바다를 잘 관찰할 수 있고, 바다에서도 망수가 잘 보일만한 해안 절벽길이라는 것을 길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등 뒤 해안으로는 아찔한 바위 절벽이 있었지만, 안전줄이 설치된 산책로를 걸을 때만 해도 이후로 펼쳐질 광경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정적을 깨는 엔진 소리와 함께 흰 물줄기를 남기며 지나가는 어선 한 척과 바위 절벽의 그림이 아름다울 뿐이었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 감상과 오르막길을 오르는 헉헉 거림은 얼마가지 않아 엄청난 바위 절벽을 만나면서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멈추게 된다. 정신을 바싹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하는 위압감이 밀려온다.

 

지금도 아찔한 이 절벽길을 어떻게 찾고, 만들었을지 훌륭하다.

 

바위 절벽길을 지나서 위를 올려다 보고, 뒤돌아 보면 느낌이 더 오싹하다.

 

가파른 망수길 산책로를 지나니 멀리 가천 다랭이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환영의 대문처럼 대나무 숲이 터널로 우리를 맞이한다. 처음에는 생김새가 조릿대 숲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마디가 선명한 대나무였다. 나의 얇은 경험과 지식이 올바른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엇이든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가천 다랭이 마을의 다랭이 논과 밭을 보니 다른 지역처럼 많은 농지가 방치된 곳도 많았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최근에 돌담을 보수한 흔적도 있었다. 이곳의 다랭이 논과 밭은 더 이상 주민들의 생계를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라기보다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간접적인 도구로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남해를 곳곳의 다랭이 밭을 돌아보면 트랙터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은 거의 농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외지인으로 넘쳐나는 가천 다랭이 마을에서 선조들이 피땀으로 일구었을 다랭이 밭의 흔적을 찾아본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돌담 아래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심었을 유채가 꽃을 피웠다.

 

남해군 곳곳에 다랭이 논도 많고 다랭이 밭도 많지만 가천 마을은 그 가파른 정도가 다른 마을에 비할바가 아니다. 게다가 마을 앞으로 펼쳐진 바위 절벽 해안은 이곳의 다랭이 논밭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눈을 시원케 하는 해안 절벽 풍경이다. 

 

다랭이 마을에는 구불구불한 농로를 따라서 여러 산책로가 있지만, 남파랑길은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는 로즈메리가 풍성하게 심긴 산책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가천 다랭이 마을의 모습과 규모를 제대로 보려면 포털 지도에서 위성사진으로 보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만, 마을 아래에서 다랭이 논들을 버티고 있는 돌담들을 보아도 그 높이와 규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4백 미터가 넘는 산들이 병풍처럼 북풍을 막아주고 있고, 따스한 남향 지역에다가 골짜기로 물도 흐르니 이 가파른 지역에 다랭이 논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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