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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마을 입구에서 시작하는 남파랑길 41코스는 천하 몽돌 해변을 지나 금포 마을을 가로질러 해안 산책길을 거쳐 은모래 해수욕장에 닿는다. 1백 미터 내외의 공산과 비산 자락의 해안 산책길을 걷는데 길이 험한 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천하 마을을 가로질러 해변으로 나왔다. 천하 마을 입구에서 남파랑길 40코스를 마무리한 다음에는 원래 계획으로는 오늘 하루에 걸었던 거리가 워낙 길었으므로 버스를 타고 은모래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가 다음날 다시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와서 41코스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계신 옆지기께서 그냥 가보자고 하신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닥칠 미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저 평탄한 길이겠거니 했다. 동네 가게에서 생수를 사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금방이야 30분이면 가지 뭐! 그러신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시간에 절벽길도 올라야 하는 해안 산책길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긴 배경이다. 

 

천하 마을 해변에서 보는 풍경은 좌측으로는 미조면의 끝자락, 즉 남해군의 남쪽 끝자락이고 우측은 앞산이다. 길은 앞산 바깥으로 가지 않고 안쪽의 금포 마을을 통해서 이어간다.

 

천하 몽돌 해변이라는 이름답게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깔려있지만 파도가 밀려와 몽돌을 만질 때 들을 수 있는 몽돌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남해군의 가장 남쪽에 도달하여 이제는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남파랑길은 눈부신 석양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리는 천근만근에 석양을 마주하며 눈이 부셔서 정면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지만 조금만 더 걸으면 숙소에서 편히 쉴 수 있다는 기대감에 힘을 내본다.

 

천하 몽돌 해변 끝자락에서 바라본 앞산 방면의 전경과 뒤돌아 본 천하 몽돌 해변의 풍경이다. 해안으로 성벽처럼 서있는 옹벽에 천하 몽돌 해변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진다. 금산 자락의 산봉우리가 서쪽으로 지고 있는 석양을 가리면서 커다란 산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천하 몽돌 해변을 지난 남파랑길은 금포 마을의 마을길을 통해서 길을 이어간다. 2월 말의 남해 마늘밭 모습은 중부 지방 5월의 마늘밭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품종이 다르기도 하지만 역시 따뜻한 남쪽나라 맞다.

 

금포 마을 회관을 지나 농로를 따라 마을 뒤편 고개를 오른다.

 

금포 마을 농로를 지나며 만난 밭의 모습은 오랜 시간 이곳에 정착해 살아왔던 주민들의 땀과 노력이 느껴지는 다랭이논의 흔적들이다. 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논과 밭을 만든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생각하면 그분들의 인내와 끈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이다. 기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이곳 사람들의 역작이다.

 

금포 마을 뒤편 고개에서 돌아본 금포 마을과 멀리 천하 마을의 전경은 어스름한 저녁의 어둠이 살짝 내려앉은 고요함, 그 자체이다.

 

농로 끝에서 만난 다랭이논의 돌담은 덩굴이 가득 덮었다. 

 

금포 마을을 벗어나면 본격적으로 공산 자락의 산책길로 진입한다. 서쪽으로 여전히 석양이 비추고 있어 안심이 된다. 그런데, 저녁 6시를 바라보는 시각이라 마냥 안심이 되는 것은 아니고 마음이 급하다.

 

앞바다에는 아무것도 거칠 것 없는 수평선에 목도가 외로이 존재를 뽐낸다. 기록을 보면 1980년도에 목도 인근으로 간첩선이 침투했었다고 하니 남한 끝자락까지 간첩선을 끌고 내려온 그들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런데, 그들 때문에 군인들이 해안선을 따라 초소를 세우고 통로를 만들었는데 세월이 지나 이제는 그 통행로가 트레킹 경로로 사용되고 있으니 참으로 인생은 알 수가 없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걸을 때만 해도 앞으로 벌어질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녁 6시가 넘는 시각에 이곳을 지난다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결정이었지만 모르니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숲길을 벗어나니 온통 바위가 펼쳐진 해안과 함께 석양에 물든 수평선이 펼쳐진다. 이 풍경의 주인공은 목도다. 풍경에 취해 있다가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하나 돌아보니, 억! 소리가 난다.

 

잔잔한 해안 산책길을 기대했건만, 억! 소리를 내며 바위를 올라야 했다. 이런 것도 모르고 해가 지고 있는 시간에 이곳을 걸었으니 몰랐으니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숲길을 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바위 길을 오르다 내려 보니 이곳이 왜 국립공원인지가 이해가 되는 절경이 펼쳐진다. 와우! 하는 감탄이 절로 쏟아진다. 지금 시간이 얼마나 위험한 시간인지 현실은 잊은 상태로 그저 환상적인 풍경에 잠시 동안 취했었다.

 

십여 분만 늦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신세가 되었을까? 다시 생각하면 아찔한 길이다. 현실은 위기이지만 풍경만큼은 환상적이다. 붉게 물든 수평선을 배경으로 승치도, 소삼여도 같은 섬들이 존재를 뽐낸다.

 

붉게 물든 환상적인 풍경과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옮겨야 하는 아찔한 현실이 공존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시간이다.

 

남해도의 끝자락에서 이런 풍광을 만날 줄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그래도 다행히, 바위 절벽길은 오래되지 않는다. 해안 숲 속 길을 부지런히 걷다 보니 넓은 길이 나온다.

 

조심스러운 개인 저택이 있는 큰길을 만나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

 

산책길을 걷다가 "해수욕장 내려가는 길" 표지판을 따라 내려가면 아찔했던 숲길은 끝나고 화려한 조명이 반겨주는 상주 은모래 해변으로 내려가게 된다.

 

수북한 낙엽이 쌓인 길을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화려한 조명이 반겨주는 상주 은모래 해변이다. 이제는 가로등을 따라 숙소를 찾아갈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에 내려오니 황혼에 물든 해변의 매력을 만난다. 햇빛에 빛나는 은모래는 아니지만 황혼에 빛나는 해변도 일품이다.

 

어스름하지만 넓은 모래 해변이 인상적인 은모래 해변을 만나본다. 은색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황혼빛도 훌륭하다.

 

인적이 끊어진 해수욕장을 뒤로하고 하룻밤 쉬어갈 숙소를 찾아간다.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을 뒤로하고 숙소를 찾아가는데, 어느 한 커플이 우리에게 말을 붙인다. "혹시 어디까지 가십니까?" "남파랑길 걷고 있습니다. 이제 쉬러 가야지요"라고 답했더니 이렇게 캄캄한데 저 사람들이 산속에서 나오네 하며 염려를 했더란다.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우리의 걸음이 누군가에게는 안쓰러움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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