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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산을 지난 남파랑길 18코스는 이제 내리막길을 걸어 장목면 사무소가 있는 외포리를 지나서 대계 마을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능산을 따라 내려가던 대금산 등산로는 증봉이라고도 불리는 시루봉 가는 길에서 좌회전하여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직진하면 대금산 정상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이다. 나무들 사이로 시루봉(357m)아 살짝 보인다.

 

경사 급한 내리막을 걷다면 멀리 시루봉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남파랑길은 시루봉으로는 가지 않고 중간에 우회전하여 인근에 있는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시루봉을 넘어가는 등산로로 가도 나중에 임도와 만나지만 남파랑길은 위험하지 않은 코스를 택한 모양이다.

 

따듯한 햇살이 들어오는 숲을 통과하여 가벼운 걸음으로 숲길을 내려간다.

 

대금산 자락을 빙 둘러가는 임도를 만나면 산 아래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가벼운 걸음을 내딛는다. 대금산 진달래길이라 이름 붙은 임도다. 무릎만 문제가 없다면 이런 내리막 길은 얼마든지 걸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다. 

 

비단골샘이라는 이름은 고급스럽지만 마실수는 없다고 한다. 하긴 전국의 약수터나 우물 가운데 15%는 대장균과 같은 미생물 때문에 마실수가 없다고 한다. 수질 기준이 없던 옛날에는 몸에 좋다고 귀한 대접을 받던 곳들 중에도 상당수가 기준 미달인 것이다. 환경오염의 문제는 이제는 피할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싶다. 드디어 산 아래로 외포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뻥 뚫린 수평선을 바라보며 걷는 임도, 훌륭하다.

 

시루봉 등산로와 임도가 만나는 지점에는 안내판이 우리가 걸었던 임도에 "대금산 진달래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음을 알려준다. 조금 더 걸으니 산 아래로 거가대교로 이어지는 거가 대로의 모습과 그 뒤로 외포리의 망월산(226m)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대구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외포리 항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위로 산들에 의해 포근하게 둘러 쌓인 천혜의 항구다. 항구는 크지 않아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대구 물량의 30%가 외포리로 몰린다고 한다. 12월에서 2월까지가 대구의 산란기로 금어기인데도 유일하게 외포리만 조업과 판매가 가능하다고 한다. 항구에는 싱싱한 대구로 끓이는 외포리대구탕거리가 자리하고 있고 건대구, 약대구도 살 수 있는 곳이다.

 

산을 내려오면 거가대로 아래의 굴다리를 통해서 외포리 마을길을 걷기 시작한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외포리 풍경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면소재지이니 당연히 사는 사람도 많고, 초등학교, 중학교도 있지만 항구 뒤편 산에 자리 잡은 전원주택 단지의 모습이다. 단지 전체의 윤곽이 중세 시대 요새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외포리 마을에 들어서면 옥포 대첩로 도로를 따라서 상포, 외포, 소계, 대계 마을을 차례로 지나간다. 이때부터 우리는 시계를 자주 보게 되었다. 오늘 저녁 숙소는 옥포 시내에 잡았기 때문에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코스만 걸어도 등산도 하고 16km가 넘는 긴 여정이었기 때문에 옆지기는 상당히 힘들어했다. 저녁이 되며 날씨가 많이 추워진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외포 중학교를 지나 외포 초등학교 앞에서는 대금산을 올라가는 또 다른 등산로가 있었다. 외포천을 따라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등산 코스다.

 

외포천을 지나 길을 이어가는데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외포항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경찰들이 몰려오는 차량들을 통제하느라 정신이 없다. "대구 축제의 고장 외포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2022년 12월 17일~18일 축제가 끝나는 날이 오늘이었다. 항구에서는 요란한 음악 소리로 시끌시끌하다.

 

마을을 벗어나니 도로변에는 인도도 없어진다. 그래도 우리는 종점을 향해서 터벅터벅 길을 이어간다.

 

옥포 대첩로 도로와 거가대로가 만나는 지점은 소계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로 작은 닭섬이 본래 부르던 이름이다. 남쪽 대계 마을과의 경계에 있는 섬의 형태가 닭을 닮아서 그 섬 북쪽을 소계, 남쪽을 대계 마을로 부르는 것이다.

 

소계 마을은 이름처럼 작은 방파제 하나 있는 아담한 마을이었다.

 

소계 마을에서 대계 마을로 넘어가는 길에는 키 큰 동백나무들이 단정하게 손님을 맞는다. 대통령 기념관이 있다고 마을 멀리에서부터 치장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계 마을 입구에 서니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현판이 우리를 맞이한다. 북쪽으로는 소계 마을의 방파제와 외포항의 방파제가 한눈에 보인다.

 

드디어 18코스의 종점인 대계 마을에 도착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스러운 만의 형태를 가진 마을이다. 해안선으로는 몽돌 해변이 있다.

 

대계 마을에서 여정을 마무리하고 대계 마을 정류장에서 옥포 시내로 이동하여 휴식을 취한다. 김영삼 대통령 기록 전시관 다녀올 상황은 아니었다. 3당 합당으로 정권을 잡은 후 조선 총독부 철거, 군 사조직인 하나회 해체등 굵직굵직한 일을 처리했던 문민정부의 시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전광석화처럼 단행된 금융실명제가 기억에 남는다. 금융 기관에서 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전만 해도 도장만 파면 차명으로 얼마든지 예금을 들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 관행이 무너진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아무튼 여러 일에도 불구하고 정권말 소통령이라 불렸던 아들의 부패 사건과 대한민국을 통째로 흔들었던 IMF는 그의 업적을 가리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민주화 운동 시절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의 결기가 새삼 아련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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