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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행의 시작은  이른 아침 조용했던 속을 따뜻한 돼지국밥으로 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산역 앞 돼지국밥 골목길에 들어서면 늘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맛집이 있기는 하지만 싸구려 입맛의 성질 급한 촌놈의 발길은 항상 바로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향한다. 아직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집의 국밥을 먹어 보지 않아서 비교 불가인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돼지 머리 올리고 고사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 시작에 돼지국밥을 먹다 보니 이제는 무슨 의식을 치르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오래간만에 도착한 부산역은 역 전면에 스크린 배치해 놓고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틀고 있었다. 오륙도로 가는 27번 버스를 타기 위해 부산역 광장의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주말 아침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해운대 방면으로 가는 버스는 사람이 많아서 다음 버스를 타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한 부부가 해운대 방면으로 가는데 여기서 타는 것이 맞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 스마트폰 앱도 있고 버스 정류장에는 몇 분 후면 어디로 가는 버스가 도착한다는 첨단 정보시스템과 안내판이 있어도 굳이 사람들에게 확인을 받는 모습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정보가 있어도 누군가의 말을 듣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내가 들은 정보와 사람의 말이 일치한다 싶으면 강한 확신을 하지만 그 확신이 아니라고 판명되면 우리는 통상 그 말을 전한 사람을 원망한다. 판단의 책임은 오롯이 내게 있음에도 내 요청으로 대답한 사람에게 화살을 돌린다. 아무튼 그분들은 정보의 양과 질이 압도적으로 좋았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타지에 도착한 여행자로서 이곳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확신이 되었던 모양이다.

 

오륙도 해상 공원에서 신선대와 동명오거리를 지나 평화 공원까지 가는 길은 도로변을 따라 걷는 여정이다.

 

긴 시간 부산 시내를 가로지른 버스는 오륙도를 바라보는 전망 좋은 정류장에 우리를 떨구어 놓고 제갈길을 간다. 해파랑길 걷기를 시작했던 작년 가을 왔던 곳인데 1년 만에 이제는 남파랑길 걷기로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다. 이곳의 명물인 오륙도 스카이워크를 다녀오려고 했는데 지금은 공사 중이란다. 일단 스카이워크 우측으로 내려가서 남파랑길과 해파랑길의 시작점으로 향한다.

 

흰구름과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오륙도를 배경으로 바람에 흔들리며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는 가을이라는 흔적을 가슴에 깊이 새긴다.

 

한반도 지도 조형물로 표현한 코리아 둘레길 남파랑길과 해파랑길의 시작점 표식이다. 남해와 동해를 따라가는 두 가지 길의 시작점이다. 지난번 해파랑길을 시작할 때는 스카이워크를 다녀오느라 이곳이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스카이워크 공사 덕분에 길을 제대로 찾았다.

 

아침 햇살이 은빛 물결을 만드는 오륙도 바다는 바람은 모자를 붙잡고 있어야 할 정도로 강하지만 쾌청한 하늘 아래 눈부신 풍경을 선사한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어이구! 하며 몸을 추스르게 한다.

 

이곳은 남파랑길과 해파랑길이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지리적으로도 동해와 남해가 갈라지는 장소임을 표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스카이워크 위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절경을 만난다. 스카이워크 아래의 까마득한 바위 절벽, 세찬 파도가 들이치는 갯바위는 스카이워크 아래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절경이다. 저 바위들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지내어 왔을까?

 

오륙도를 우측으로 돌면 풍경은 멀리 태종대와 영도부터 인근 신선대와 오륙도 앞의 아파트 단지를 품는다. 매일 환상적인 바다 뷰를 보는 아파트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궁금증을 품어 보지만 인생의 행복은 펜트 하우스냐 월세 단칸방이냐 하는 거주 공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은 역사와 현실이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곳은 2000년대 초반까지 한센인 마을이 있던 곳이다. 1940년대 소록도 이주를 거부한 한센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사람이 많을 때는 7천 명이 넘기도 했다고 한다. 남은 것은 그저 기록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남파랑길 화살표 표식을 따라서 걷기를 시작한다. 부산 갈맷길과 함께하는 여정이다. 때로는 갈맷길 표식을 남파랑길 표식과 혼동해서 길을 헤매기도 하는데, 갈맷길은 부산 곳곳으로 실핏줄처럼 길이 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길을 헤매지 않으려면 표식의 구분이 필요하다.

 

오르막 작은 언덕의 억새풀이 눈부신 가을 햇살을 머금으니 그야말로 찬란하다.

 

백운포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나 남파랑길은 지나쳐 직진한다. 바다에 흰구름이 피어 올라서 백운포라는 이름이 붙었던 포구는 지금은 매립되어 없어지고 지금은 백운포 체육공원이 남아 있다. 거북이 등 같은 모양이 있는 차돌인 거북돌이 많이 나던 곳인데 지금은 만날 수 없다.

 

우리가 앞으로 따라서 걸어가야 할 신선대산복로는 왕벚나무로 가로수가 심어져 있어 봄이면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지만 성모병원 근처 길 초입에는 제주에서 만났던 먼나무가 아름다운 열매와 함께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남파랑길 1코스와 갈맷길 표식이 나란히 길을 안내한다. 갈맷길은 3-1코스이다. 

 

꽃댕강 나무가 인도 옆 생울타리로 심겨 있는데 향기가 너무 좋다. 6월부터 11월까지 꽃을 오랜 시간 피우고 사계절 초록 잎으로 안전 또한 지켜주니 이 또한 고마운 식물이다. 

 

동명오거리까지 이어지는 신선대산복로 도로를 따라가는 남파랑길 1코스는 신선대 입구에서 잠시 공원을 들러서 간다.

 

공원 입구의 배롱나무는 붉은 꽃잎을 거의 다 떨구고 얼마 남지 않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한창이다는 증거일 것이다. 공원 안쪽 바다 방향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걸으면 부산항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금이야 전망의 상당수가 사각형 컨테이너이지만 신선대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을 뽐내는 장소였다. 신선대 바로 아래를 이전에는 동래 용당포라고 했는데 정조 당시에 이곳으로 영국의 프로비던스호가 상륙하여 물자를 싣고 돌아갔는데 이것이 한국과 영국의 첫 만남이었다는 기념비도 신선대에 세워져 있다.

 

공원의 이름이 무제등 공원인데 무제등은 바위의 이름으로 신선과 신선이 탄 백마의 발자국이 있다는 곳이다. 신선대라는 이름의 기원이다. 사실 무제등 공원이 있던 자리에는 1995년부터 10년간 쓰레기 소각장이 운영되던 장소였다. 이제는 그 흔적도 없다.

 

신선대와 무제등 공원을 나서면 신선대 부두를 비롯한 부산항 컨테이너 부두의 규모에 놀라고 부두에 놓여 있는 레고 블록 같은 엄청난 컨테이너량에 와! 하는 탄성을 지르며 걸음을 걷게 된다. 현재 세계 7위 규모의 항만이지만 물동량이 계속 늘어 부산 신항에 이어서 부산 진해 신항도 건설 예정이라고 한다.

 

공원을 나서는 길, 지금은 잎을 떨구며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왕벚나무를 보니 봄이며 이길도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신선대 컨테이너 터미널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아파트 단지 앞을 가로질러 동명 대학교를 향해서 걷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공중전화가 반갑다. 초등학생과 군 복무 중인 병사들도 휴대폰을 사용하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2020년 기준으로 전국으로 3만여 대가 운영 중이라고 한다. 부산에서 어렵지 않게 공중전화 부스를 만날 수 있었는데 찾아보니 인구 기준, 면적 기준으로 모두 부산은 공중전화가 많은 편에 속했다. 마그네틱 방식의 전화 카드를 사용하던 때도 있었는데 오늘 만난 공중전화는 동전 외에도 교통카드로도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길은 동명 대학교 앞에 있는 부산 남부 자동차 매매 단지를 끼고 좌회전한다. 동명 대학교는 1977년 강석진 회장이 동명 문화 학원을 세운 것이 시초인데 설립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운의 역사가 있었다. 동명 그룹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재개 서열 1위를 달릴 정도로 잘 나가던 곳이고 부산 은행도 설립했었는데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그룹이 통째로 강제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다. 

 

동명오거리에서 우회전하여 UN 기념 공원으로 향한다. 동명오거리에서 직진하면 UN 기념 공원이 나오지만 남파랑길은 공원 측면으로 들어가서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아 UN 기념 공원 정문으로 나오는 경로이다.

 

신선로 도로를 따라 공원에 도착하면 UN 참전 기념 거리라는 커다란 조형물이 우리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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