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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동 도시숲 앞에서 솔밭로를 통해 장고개를 지나면 문현동 곱창 골목을 만나는데 이곳에서 조금은 넉넉한 점심식사를 하고 길을 이어간다. 점심 식사 후에는 범일동 재봉틀 거리와 부산진성, 부산진 시장을 지나 좌천동으로 넘어간다.

 

우암동 도시숲 앞은 도시숲으로 가는 동제당로, 장고개로 내려가는 솔밭로, 이전 남파랑길이 갔던 산길 이렇게 사거리인데 표지판을 따라 이전 남파랑길이 갔던 산길이 아니라 장고개로 내려가는 솔밭로 길을 잡았다. 

 

솔밭로에서 바라본 부산항의 모습이다. 내일 우리가 걸어가야 할 영도의 풍경이 정면으로 다가온다.

 

솔밭로 내리막길로 내려온 남파랑길은 장고개를 다시 넘는다. 이름 그대로 우암동, 감만동, 용호동 사람들이 부산장에 가려면 넘어야 했던 길이다. 전국 곳곳에 시장이 많으니 장고개라는 이름도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장고개 인근으로는 우암 주택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라 얼마 후에 남파랑길은 아파트 단지 사이를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멘트 옹벽에 그려 넣은 장고개 이야기가 정겹게 다가온다. 과연 재개발의 광풍은 부산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다. 부산 갈맷길과 남파랑길이 부산의 속살을 비집고 다니면서 만나는 노후화된 옛 주택들이 미래에는 모두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가파른 언덕과 자동차도 둘 수 없는 좁은 골목으로 대표되는 달동네의 노후 주택들은 그저 아파트 밖에 답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좁은 길 양쪽으로 철물점, 미장원, 열쇠집, 장판집, 식당과 술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옛 정취가 남아 있는 장고개로를 내려오면 좌회전하여 문현동 곱창 골목으로 들어선다.

 

전국적인 유명세가 있는 대구 안지랑의 곱창 골목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곳의 전성기는 범일동과 감만동의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던 1970년대와 1980년대라고 한다. 시작은 일제 강점기로 올라 가는데 인근에 가축 시장과 도축장이 있어 고기는 전쟁 물자로 공급되고 남은 내장이 시장에 풀렸다고 한다. 2001년 영화 "친구"의 촬영 장소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곱창 마니아 옆지기의 선택에 따라 오늘 점심은 원조 문현 할매 곱창집에서 곱창 구이로 조금은 화려한 점심 식사를 했다. 연탄불 위에 주인장이 초벌 해서 나온 곱창을 구워서 이곳 나름에 붉은 소스에 찍어 먹는 방식이었다. 근처 테이블에서는 점심부터 거나하게 취한 부부도 있었다. 연탄불과 곱창이 만들어 내는 연기와 냄새는 지금 우리가 걷기 여행 중간의 휴식 시간이라는 것을 잊게 만든다. 저녁 회식자리 같은 분위기랄까! 예전에는 내장이 노동자들이 즐기는 값싼 재료였다면 이제는 고기보다 비싼 재료가 내장이니 그저 실 웃음이 나오는 현실이다.

 

문현 곱창 골목을 나선 우리는 충장 고가로 아래를 거쳐서 문현교차로를 지난다.

 

길은 범일교를 통해서 동천을 건너는데 하천 위로는 남해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동서고가로가 지난다. 부산진구 백양산에서 발원하여 중심지 서면을 통과하여 바다로 나가는 동천은 부산진성 동쪽으로 흐른다고 동천이라 부르지만 오염도가 워낙 심해서 예전에는 똥천이라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수질 개선 노력이 있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의 오염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동천을 지나면 부산시 남구 문현동에서 동구 범일동으로 넘어간다. 육교를 이용해서 8차선의 자성로를 건넌다.

 

육교를 내려오면 재봉틀 거리로 들어선다. 재봉틀이 우리나라의 산업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화학 공업이 본격화되기 전에는 재봉틀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봉제 공장이 많은 이들을 먹여 살렸었다. 신혼초 우리 부부가 거금을 투자하며 구입했던 것도 재봉틀이었다. 가전제품은 중고로 찾는 사람들인데 재봉틀만큼은 좋은 것을 구입하려고 했었다. 

 

재봉틀 거리에 들어서니 커튼 만들기, 이이들 물품 만들기로 드르륵 소리를 내며 집중했던 추억이 새롭다. 신혼 때 구입했던 재봉틀도 이제 서른 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ㅠㅠ. 사실 재봉틀보다는 미싱이라는 말이 입에 익숙한데 일본에서 건너온 배경이 있다. 소잉 머신(sewing machine)이라 하기 어려우기 그냥 머신이라 부른 것이고 그것이 일본식으로 미싱이 된 것이다. 손으로 돌리는 재봉틀, 발로 굴리는 재봉틀을 지나 요즘은 전동 재봉틀이 장난감처럼 나온 것도 있을 정도이지만 옆지기는 처가에 있는 재봉틀을 찜해놓았다. 가정용이 아니고 공업식이라 성능이 좋단다. 그래서 그것으로 뭐할 건데? 따지고 싶지만 따지면 무엇하리!

 

길은 부산진성 앞을 지난다. 임진왜란의 시작점이자 전투 4시간 만에 정발장군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정발 장군은 전사 당시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흑의 장군이란 별칭도 있다. 원래의 부산진성의 외성이었던 것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일본식으로 다시 쌓은 왜성이다. 원래의 부산진성이 모성이라고 빗대서 이곳을 자성대라고도 한다. 전후 모성이 파괴되면서 조선군도 이곳에 진영을 꾸렸다고 한다. 7년간의 참혹한 비극을 겪고도 3백 년 지난 후에 다시 치욕적인 일제 강점기를 맞이 했던 이 민족은 과연 21세기에는 해묵은 이념 논쟁과 걷어내지 못한 비극의 뿌리를 치워내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낼지......

 

부산진 시장 앞에서는 시장 개장 109주년 행사로 길을 막아놓아 길을 빙 둘러 갈 수밖에 없었다. 1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으로 서울의 동대문 시장, 대구의 서문 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부산진 시장은 직물, 의류, 혼수 관련 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시장이다. 서울의 광장 시장과 동대문 시장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다.

 

남파랑길은 부산진 시장을 지나면 지하보도를 통해서 부산진역으로 이어지는 철도 아래를 통과한다.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 화물역인 부산진역은 예전에 무궁화호를 타고 내렸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밤 기차를 타면 밤새 달려서 아침에 기장을 거쳐서 부산진에 도착했었다. 이제는 부전역이 경전선과 동해남부선의 시점과 종점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역 바로 아래 용산역이 있다면 부산역에는 부산진역이었는데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고 하니 세월이 무상하다.

 

철길을 가로지른 남파랑길은 좌천동 가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통해 중앙대로를 건너서 가구 거리 뒤편 골목으로 진입한다. 부산 곳곳이 2030년 엑스포 유치에 한마음이다.

 

좌천동 가구거리 뒤편 골목은 한국 전쟁 이후 1952년 호주 장로교 선교회가 세운 종합 병원인 일신 기독 병원 사이를 지나서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성에서 전사한 정발 장군과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을 기리는 정공단을 지나게 된다. 골목에 있는 저렴한 맛집들을 보니 비싼 곱창 구이보다 이곳에서 먹을걸 했다는......

 

정공단을 지나면 길은 부산진 교회 옆길을 통해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한다. 

 

부산진 교회는 1890년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에 의해 영남 지역 최초로 세워진 교회라는 의미가 있다. 호주 출신 선교사 제임스 맥켄지도 이 교회에서 봉사했는데 그는 한국 나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했고 두 딸은 교회 아래에 있는 일신 기독 병원을 설립했다. 맥켄지는 일신 학교 설립자이기도 하다. 왕길지라는 한국 이름도 유명한 호주 출신 선교사 겔손 엥겔도 맥켄지와 협력하며 부산진 교회에서도 봉사하고 은퇴할 때까지 평양의 신학교 교수로 일했다고 한다. 이들의 삶을 돌아보면 벽에 붙은 글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부산진 일신 여학교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8명의 여학생들이 모두 부산진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학생이었다고 한다. 호주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부산 경남 지역의 최초의 신여성 교육 기관이었고, 독립운동의 시발점이었다고 한다. 근대 문화 건물로 보존되고 있다. 증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옹벽에는 일신 여학교 만세 운동과  3.1 운동, 부산 동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역사가 적혀 있었다.

 

부산 동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의 설명을 읽다 보니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향해서 저지른 일이 군사 정부에서 민주운동가들을 향해서 반복되었고, 21세기에는 과연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건상, 최천택 두 분만 사진에 담았지만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것만큼 좋은 역사 교육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개인의 영달과 안락함 대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며 그 가치를 마음에 새기는 것, 그것이 나라를 제대로 세워가는 방법이다는 절실함이 마음에 밀려온다. 

 

굽이친 언덕길을 오르면 금성 고등학교 앞에서 우회전하여 길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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