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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49코스는 거진항을 출발하여 항구 뒤편 거진 등대를 거쳐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거진 해맞이봉 산림욕장을 걷는다. 약간의 굴곡이 있지만 어렵지 않은 숲 속 길을 걷는 시간이다. 산림욕장은 화진포까지 이어진다.

 

거진항 바로 뒤편으로는 거진리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작은 전시 공간이 있었다. 1970년대 오징어가 많이 잡히던 시절에는 인구가 2만 5천까지 늘었고 거진리는 거진 10리까지 분할되었고 1980년대 초에는 거진 11리까지 생겼다. 지금은 화진포의 관광 배후 지역으로 인기가 있지만 인구가 줄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벤치에서 바로 앞 마트에서 구입해온 아이스바와 냉커피를 마시며 넉넉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커다란 벽화 위에 "거진미항"이라 적은 언덕 위로 데크 계단을 올라 48코스에 이어서 49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데크 계단 중간에서 만난 조형물들. 거진항을 내려다볼 수 있지만 아직은 탁 트인 시야가 아니다. 가장 좋은 아름다움은 인공적인 설치물이 없어도 자연 그대로의 멋이 흘러넘쳐서 여기에 살고 있는 분들이 즐거워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시작이지 않나 싶다. 관광객이 먼저가 아니라 이곳에 사는 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살펴서 꾸준히 만들어 가면 자연스레 거진 미항이 되지 않을까? 마침 산책을 끝내고 내려오시는 마을의 중년 여성들을 보니 좋게 변해 가리란 기대를 품게 된다.  잠시 숨을 고르고 계속 계단을 오른다. 

 

데크 계단을 모두 올라 왔지만 시야는 여전하다. 동해안 등대가 있는 작은 산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곳도 산 곳곳으로 골목길과 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등대길 도로에서 거진 등대로 올라가는 길은 주먹 벽돌이라고도 부르는 화강암 사구석으로 포장해 놓았다. 

 

가장 높은 곳이라 생각되는 곳에서 보니 반암항을 지나 동호리 해변까지 눈에 들어 오지만 여전히 시야가 아주 좋지는 않다. 이곳은 전망보다는 앞으로 만날 숲길이 최고다. 거진 해맞이봉 산림욕장 안내판에 나온 것처럼 화진포까지 산 능선을 걷는다. 땡볕 아래서 백사장을 걷는 것이 아니라 숲길을 지나는 길이니 얼마나 좋은지......

 

잠시 거진 등대를 다녀와서 숲길 걷기를 시작한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산 능선을 걷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는 산악회에서 단체로 이곳을 방문하신 분들인지, 숲길 한쪽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룹도 만났다. 사람이 떼로 모이면 어쩔 수 없는지 시끌벅적하다. 그룹으로 산을 오르는 것보다 옆지기와 둘이서 여유 있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딱 알맞은 방법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가는 길에는 산 아래로 상당한 규모의 거진 읍내도 보이고, 기관의 직원들이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조각 작품들도 세워져 있다. 작가의 이름 앞에 연구원이라는 직책이 적혀 있었다.

 

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 수평선 풍경은 참 좋다. 해파랑길 걷기 여정이 아니라면 내려가서 벤치에 앉아 한참을 수다로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다.

 

산속에 만든 공원 산책로가 이곳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산림욕장이라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산림이 주인공이어야겠지만 아직까지 이곳은 여러 공원 시설이 주인이다. 시간이 흘러 나무를 잘 가꾸면 산림욕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장소가 되리라 본다. 여러 기관에서는 단기간에 성과가 보이는 공원 조성을 좋아하겠지만 후대를 위한다면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정오를 지난 시간 해는 중천에 떠서 산 능선에는 그늘이 없다. 그나마 두 눈 가득 초록빛을 담고, 숲 내음이 맡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길에서 잠시 벗어나는 해오름 쉼터 입구가 있지만 해파랑길은 쉼터로 가지 않고 직진한다.

 

계곡 깊숙이 걸을 때면 오르막이어도 좋다 태양을 피해 숲 내음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산 능선을 걷는 해파랑길은 때로는 다수의 분묘가 있는 흙길도 지나고 돌바닥으로 마감한 깔끔한 길도 지난다. 때로는 산속 아스팔트 길도 지난다. 때로는 오르막, 때로는 내리막까지 우리의 굴곡진 인생을 닮았다.

 

산속 포장도로로 나오면 멀리 고성 해변이 보이는 전망도 만나고 좌측 산아래로 포장길을 따라 거진 읍내로 갈 수 있는 갈림길도 만난다. 해파랑길은 직진한다.

 

얼마간 포장길을 걸어야 한다. 완만하게 포장된 내리막길만큼 좋은 길이 또 있을까? 발걸음이 가볍다.

 

길가에서 참나리꽃을 만났다. 영어 이름이 타이거 릴리인데 백합이란 이름에 호랑이를 집어넣은 이유를 알듯한 모양이다. 백합을 우리말로 하면 나리라고 한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다시 숲 속 길로 들어간다. 화진포 소나무 숲 산림욕장을 향한다. 소나무 숲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솔잎을 거치면서 따가움은 모두 사라지고 부드러움만 남았다.

 

이제부터는 응봉을 향해서 산행다운 산행을 해야 한다. 위치도 거진리에서 화포리로 넘어간다. 응봉에 대해서 사전 조사 없이 "응봉"이란 표지를 만났을 때는 화진포 가기 전에 있는 작은 봉우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정상에 오르면 아무런 표식이 없고 내리막을 지나 다시 오르막을 오를 때면 응봉이란 표지판은 나오고 또 나온다. 나중에는 이번에는 정상에 응봉이란 표지가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잊게 된다. 그렇지만, 막상 응봉에 오르면 일반적인 작은 봉우리가 아님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응봉인 줄 알고 열심히 올랐던 산 정상에는 벤치와 돌무더기뿐이었다. 배낭도 신발도 벗어두고 이번에는 벤치에 벌러덩 누워서 휴식을 취해본다.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등은 땀에 흠뻑 젖었지만 솔잎 사이로 가끔씩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은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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