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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 등대에서 시작한 숲길 걷기는 김일성 별장을 내려가면서 끝이 나고 이제는 온전히 오후의 태양을 맞으면서 화진포 호숫길과 화진포 해수욕장, 초도항을 거쳐 초도 해변에 도착한다. 초도 해변에서 하룻밤 쉬고 내일 49코스 나머지와 50코스를 걷는 것으로 해파랑길을 마무리한다.
산림 테라피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직진한다. 산림 테라피원, 습지원 등은 모두 화진포 소나무 숲 산림욕장에 속한 시설들이다. 김일성 별장 내부로 들어가려면 입장권이 있어야 하지만, 해파랑길은 별장 옆으로 지나간다. 예전에 한두 번 다녀온 기억도 있으므로 우리는 그냥 스쳐 지나갈 예정이다.
하산길 솔숲도 여전히 훌륭하다. 숲 사이로 보이는 바다도 훨씬 가까워졌다.
산책로 좌측으로 관람객들로 북적거리는 일명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는 화진포의 성을 지난다. 일제강점기 셔우드 홀 선교사가 예배당과 별장으로 지었다가 해방 후 38선 이북이 북한과 소련의 관할 하에 들어가면서 김일성 일가와 최고급 간부들이 휴양지로 이용했다고 한다. 한국 전쟁 후 파손된 것을 2005년 3층 옥상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복원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옥상에서 전망을 감상하고 있다.
계단 아래로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맑은 바닷물도 아름답지만 초도항까지 활처럼 휘어진 화진포 해수욕장의 백사장도 일품이다.
산 아래로 내려오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커다란 주차장은 자동차로 직접 찾아온 사람들, 버스를 대절해서 단체 관광으로 온 사람들, 각양각색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망이 좋은 김일성 별장으로 올라가지만 응봉의 탁 트인 뷰를 만난다면 이곳의 전망은 비교가 되지 않음을 알 것이다. 하긴, 버스를 대절해서 이곳까지 왔는데 응봉의 존재를 모르고 가는 것이 약일 수도 있겠다. 알면 너무 아쉬울 테니까!
해변에는 고성 명태를 알리는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한때 고성의 거진, 간성 해안은 명태를 말리는 덕장이 가득할 정도로 명태가 많았지만 치어 방류 사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바다에서 명태는 멸종 위기종이다. 원양산 명태하고 구별하여 진태, 간태라고도 불린 고성 명태의 명성답게 고성에서는 명태 축제도 열린다. 해파랑길은 화진포 생태 박물관 방향으로 이동하여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화진포 생태박물관은 화진포호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면 우회전하여 화진포 호수를 따라 걷는다. 위에 보는 풍경과 다르게 아래에서 보는 화진포는 규모가 광대하다. 서울 여의도의 크기와 비슷하다.
직사광선이 강렬하게 쏟아지는 호숫가를 걷자니 바로 옆의 소나무 숲길이 너무나 부럽다. 군 휴양 시설인 화진포 콘도에 속한 곳이다. 해파랑길은 호숫가 인도를 따라 걷는다.
중간에 화진포교를 넘어서 이승만 별장과 역사 안보 전시관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나지만 화진포 해수욕장과 성게 주산지라는 초도항 방면으로 계속 인도를 따라 걷는다.
화진포 호수를 따라 걷는 길 호숫가 둑에는 해당화, 아카시, 갈대 등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염분이 많다고는 하지만 석호만이 가지는 특성만큼 다양한 식물군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화진포 호수의 물이 동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설치된 금구교를 넘어간다. 아마도 앞바다에 있는 금구도에서 따온 이름인듯하다. 거진읍 화포리에서 현내면 초도리로 진입한다.
금구교를 건너면 우회전하여 길을 이어간다. 전면으로 보이는 것은 화진포 해양 박물관이다.
금구교를 넘어서 바라본 화진포 해수욕장의 모습. 멀리 김일성 별장과 암석 해변은 멋있지만 뷰가 정말 좋았던 응봉은 멀어서 그런지 찾을 수 없다. 화진포 호수의 물이 동해로 나가는 길목에는 평상시에는 모래턱이 가로막고 있다가 거센 파도나 해일이 오면 모래턱이 무너지면서 바닷물과 석호의 물이 순환되는 갯터짐이 일어난다고 한다. 때로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갯터짐을 해주기도 한다고 한다.
화진포 해변을 떠나 초도리 해변길을 따라 길을 이어간다.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는 금구도 바로 해변은 인기 있는 장소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벌써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이다. 나도 배낭을 벗고 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초도항길 도로를 따라서 성게 주산지라는 초도항도 지난다. 빨간 등대 너머로 보이는 금구도 주변에서 성게를 키운다고 한다. 성게 제철은 산란하기 전인 5월에서 6월까지라고 한다. 6월 초에는 성게 축제도 열린다.
초도항길은 별도의 인도가 없는데 길도 구불구불하므로 주의해서 걸어야 한다. 지나는 차가 많지는 않으나 차량이 보행자를 잘 볼 수 있는 위치로 걸어야 한다. 사각지대에서 걷지 않도록 주의해서 걷는다. 다행히 이런 길은 초도 해변에 닿으면 금방 끝이 난다.
오늘 하룻밤 쉬어갈 초도 해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뜨거운 태양 때문일까? 해변으로는 군데군데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숙소는 부천장이라는 연식이 아주 오래된 모텔로 잡았다. 해파랑길 49코스 종점인 통일전망대까지는 4.7Km가 남은 지점이다. 숙소를 잡으면서 주인장에 바다에 들어가도 되냐고 물으니 당연한걸 왜 묻냐는 반응이다. 입구에 발에 묻은 모래를 씻는 곳도 있으니 잘 다녀오란다. 오늘 바람이 불어 추울 텐데요! 하며 오히려 걱정을 해주신다.
얼마 만에 바다에 들어가는 건지, 배낭을 던지다시피 벗어두고 땀에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야! 해파랑길을 걷다가 해수욕이라니, 정말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군 시절 이후 동해에 온몸을 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얼마나 감개무량하던지, 옆지기는 종아리만 담가도 좋단다. 그런데, 역시 아직 여름이 아니라 그런지 모텔 주인장의 염려처럼 바람이 불어오자 몸이 오들 거릴 정도로 서늘해진다. 모래로 나오면 따뜻하니 잠시 모래밭에 누웠다가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해안에서 20미터 정도 들어가도 물 깊이는 1미터 정도라서 수영하기도 좋았다.
그런데, 우리 근처에서 바다에 들어간 사람들은 튜브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수영도 하지 않고 물속에서 뭔가를 찾는 모양이다. 한 손에는 양파 자루를 들고 물속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하나씩 건져 올리면서 신이 났다. 조개를 잡는 것이었다. 오호!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군 시절 여름 훈련을 하러 바다에 나가면 휴식시간에 모두들 하는 일이 있었다. 발로 모래를 트위스트 하듯 파다 모면 모래 속의 조개가 발에 걸린다. 발에 조개가 걸리면 잠깐씩 물속에 들어가 손으로 조개를 건져 올리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조개가 워낙 많아서 모래 위에 서있으면 심장이 뛰듯 바닥이 움직였었다.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아니다 다를까 몇 분 지나지 않아 굵은 조개들이 내손에 들어왔다. 비단조개라고도 하는 민들조개이다. 동해안 모래 해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조개다.
해감을 해서 바지락 칼국수를 해 먹을 것도 아니고 해변가 원숭이가 하듯 돌로 조개를 깨서 조갯살을 회로 먹어 보았다. 얼마나 달콤했는지, 옆지기도 나도 횟집 부럽지 않았다. 이 추억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해파랑길에서 걷다가 해수욕을 하다니 꿈만 같은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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