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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걸으면서 부산부터 포항 지역까지는 KTX를 많이 이용했었다. 이후 구간은 자동차로 해당 지역으로 이동한 다음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했었다. 강릉으로는 평창 올림픽 덕분인지 고속 철도가 운행되고 있어서 서울에서 두 시간이면 강릉에 도착할 수 있다. 이 구간에는 KTX 이음이 투입되고 있는데 시속 260km에 이르는 국내 독자 제작 고속 열차라고 한다. KTX 산천 다음 모델로 서해선과 동해선에도 투입될 예정이다. 새 열차라 그런지 새 비행기를 타는 여행의 설렘이 있다.
기차를 타고 강릉으로 여행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고속버스를 타던가 자가용을 이용했었다. 강릉역은 동해의 태양을 모티브로 지어진 원형의 철도역이다. 1960년대 옛 역사가 사라지고 지금의 신 역사가 들어선 것은 2018년 평창 올림픽 덕분이 아닌가 싶다. 강릉역 앞에는 여전히 평창 올림픽의 마스코트들이 강릉을 찾은 이들의 포토존이 되어 주고 있다.
강릉역 앞 교차로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세워둔 봉축탑이 불을 밝히고 있다. 꽃과 나무들로 봄이 오는구나라고 느꼈다면, 매년 봄이 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인공물이 있다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거리에 세워둔 조형물과 연등들이 아닌가 싶다. 예약해놓은 시내 숙소로 걸어서 이동하고 내일 아침 시내버스를 타고 오독떼기 전수관으로 이동한다.
강릉시 구정면을 흐르는 두 하천 어단천과 섬석천을 차례로 만나는 길이다. 어단천 변의 아름다운 산책로에 이어서 고택을 지나 섬석천을 건너 구정면 사무소에 이른다. 섬석천 직전의 언덕길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탄한 길을 걷는다.
강릉 시내에서 학산리로 오는 버스에서 만난 풍경은 여느 지방의 시골 버스 풍경이었다. 버스 경로에 시장이 있으니 시장에서 이런저런 농기구들을 구입한 사람들도 있고, 동네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학산리에서 버스를 내리면 바로 해파랑길 38코스를 시작한다. 굴산사지 당간지주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굴산교를 통해서 어단천을 건넌다. 어단천의 상류에는 어단리에 위치한 칠성 저수지가 있고 이 저수지의 물은 953미터의 칠성산에서 발원한다. 굴산교를 지나면 바로 좌회전하여 하천변 산책길을 걷는다. 다리 건너편의 큰 나무와 푸른 풍경이 아름다운 산책길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한 종류의 나무가 가지런히 심어진 산책로가 아니지만 큰 나무, 작은 나무, 불그스름한 나무, 푸른 나무, 하천과 들판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산책길로 들어선다.
가을에 파종한 사료 작물이 봄을 맞이 하여 키를 키우고 이삭을 내었다. 호밀이나 수단그라스 등을 소 먹이로 키운다. 보리와 밀은 키워 보았으니 보면 알지만 봐도 모르는 식물이 한둘이 아니다. 어떤 식물이 뭐에 좋다고 하는 방송을 들으면 너도 나도 그것을 찾겠다고 난리지만 사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식물들은 대부분 유익한 존재들이고 잡초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들 조차로 알아보면 좋은 약효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수없이 많다. 무지한 인간, 돈이 최고인 인간이 문제일 뿐이다.
아기자기한 소나무 사이 오솔길도 와우! 하는 감탄을 터지게 한다. 소나무 사이로 바라보는 어단천은 물이 풍성하게 흐르는 하천은 아니다. 그렇지만, 크고 작은 돌들 사이로 흘러가며 수많은 생명을 살려내는 작은 하천이 동해에 이를 때면 수많은 생명을 품었던 살아있는 하천답게 동해 바다에도 생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이번에는 온통 붉은 옷을 입은 나무다. 해파랑길 빨간색 리본보다도 훨씬 짙은, 진한 자줏빛 색깔을 가졌다. 자엽 자두나무이다.
사이말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는 갈림길에서 길은 자엽 자두나무들이 붉은빛을 뽐내는 하천변 길로 계속 직진한다. 다리 이름도 사이말교로 독특하고 길 이름도 생길목길로 독특하다. 생길목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붙은 길 이름이란다.
나무 밑동에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자줏빛 열매까지 내었다, 사람 입장에서는 "너는 그곳에 있으면 안 돼! 높은 가지에 있지, 어쩌다 여기에 있게 된 거야?" 하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겠지만, 나무는 "자리가 뭔 상관이래요!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다 보니 이런 자리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었네요. 누가 압니까? 이 자리에서 맺은 열매가 키 작은 꼬마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지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라고 대꾸하는 것 같다. 일반 자두는 풋열매일 때는 초록색이다가 열매가 익으면 자줏빛으로 바뀌지만 자엽 자두나무의 열매는 처음부터 자줏빛이다.
부지런한 농부가 감자를 심어 놓은 밭 가장자리에는 키 작은 사과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과수원의 나무들은 때가 되면 가지치기, 꽃 속아주기, 농약 세례를 비롯한 다양한 관리와 대접을 받지만, 농부가 장에 갔다가 묘목 한그루 사서 밭 가장자리에 심어 놓았을 이런 나무는 대접은 없으나 최고의 자유를 누리지 않을까?
학산교를 만나면 좌회전하여 어단천을 건넌다. 학산리를 의미하는 학마을이 버스정류장 이름이다.
넓은 판에는 옥수수 모종을 가득 심어 놓았다. 봄을 맞이 하면서 만나게 되는 또 다른 풍경이다. 농부들은 농사를 시작하면서 많은 고민을 한다. 수확 후 판로를 미리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대한 고민보다는 수확 한참 이전에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기 직전의 잡초와의 전쟁을 대비한 전략을 고민을 말하려 한다. 잡초라는 정의 자체가 예매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식물은 대부분 사람에게 유용하거나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농부의 시각에서 의도했던 작물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식물이라 해도 잡초인 것이다. 오로지 경제적인 시각과 생산성적인 접근에서는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농부가 잡초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제초제라는 농약을 쓰는 방법이 있지만 작물에 해를 입히지 않고 잡초만 죽일 수 있는 대상은 일부 작물에 불가하고 꺼림칙한 것도 사실이다. 제초제를 피하는 방법으로는 피복의 방법이 있다. 땅을 식물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것으로 덮는 것이다. 볏짚처럼 썩는 유기물로 덮으면 땅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다. 그렇지만, 비용과 작업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대단위 농사에는 적절치 않다. 그래서, 위의 그림처럼 아주 얇은 비닐로 땅을 덮는 것이다. 잡초 억제 외에도 토양 침식을 막고 수분 유지와 지온 조절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문제는 수확 이후 비닐을 처리하는 것이다. 재배에 사용했던 비닐만 흙을 잘 털어서 농사 폐기물로 정리해서 배출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그냥 방치해서 비닐 조각이 바람에 날아가 전동차가 다니는 전선에 걸려 고장을 유발하거나 작물 찌꺼기와 같이 태워 버리는 일도 있다.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잘 수거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길은 강릉 만성 고택을 지나 마을길 안으로 들어간다. 만성 고택은 조선 말기에 지어진 건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관리하고 있다. 고택의 돌담 아래 작은 화단에서 화려한 꽃들이 봄을 노래하고 있다.
마을 언덕길을 오른다.
높은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든 새가 새끼를 키우는지 낯선 사람들의 등장에 경계심을 가지고 요란하게도 짖어댄다. 아무런 위협도 인사도 없었는데 대놓고 욕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다. 나 지금 새끼 키우고 있어! 예민해!라고 방송이라도 하는 것 같다.
조류 전문가들은 새소리를 들으면 단박에 무슨 새라고 말씀하시겠지만, 새 문외한에게는 도무지......
마을 언덕을 넘어서면 구정면 여찬리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서울로 이어지는 경강선 다리도 보인다. 밭 사이의 길로 언덕을 내려간다.
언덕을 내려가면 섬석천을 만나는데 하천을 가로질러 설치된 보 위를 걸어서 섬석천을 건넌다.
섬석천을 건너면서 바라본 상류 쪽과 하류 쪽의 모습이다.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생태 하천이다. 상류로 따라 올라가면 강릉 솔향 수목원이 있다. 하류 쪽으로 보이는 다리는 서울과 강릉을 잇는 경강선 철로가 놓인 다리다. 어제 KTX 이음을 타고 저 다리를 건넜던 것이다. 하류로 내려가면 조금 있으면 만나게 될 장현 저수지를 만난다.
섬석천을 건너 마을길을 지나면 구정면 사무소에 도착한다. 해파랑길은 면 사무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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