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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구정면 사무소를 지난 해파랑길 38코스는 섬석천을 따라 장현 저수지에 이른다. 장현 저수지를 끼고 있는 마을을 지나면 산길을 걷기 시작한다. 산길이기는 하지만 높지 않은 숲 속 산책로를 걷는 길이다.

 

강릉시 구정면을 흐르는 큰 물줄기 어단천과 섬석천을 차례로 지나온 해파랑길은 구정면 사무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구정 중앙로 도로를 따라서 여찬리 마을을 걷는다. 여찬리는 장현 저수지까지 이어진다.

 

여찬리라는 마을 이름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이고 그 이전에는 봉양 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봉황이 좋아한다는 오동나무가 많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커다란 잎사귀를 가진 오동나무는 지금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나무이지만, 예전에는 딸이 태어나면 혼수를 위해서 오동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일제 잔재라는 이야기도 있다. 가구의 서랍을 오동나무로 했다고 하면 그나마 좋은 재료를 썼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오동나무는 잎이 큰 만큼 성장이 빨라서 15-20년이면 쓸만한 재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나무가 무른 것이 약점일 수는 있지만 오동나무 관을 최고로 쳐주고,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전통 악기 또한 오동나무로 만드니 그 가치는 다른 나무에 비할바가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관 제작에 사용하는 오동나무 대부분은 중국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여찬리와 봉양 마을 마을비 뒤로 있는 다리의 이름도 오동교이다. 길은 오동교 앞을 가로질러 직진한다.

 

장현 저수지를 향해서 섬석천 천변길을 걸어간다. 마을 이름처럼 섬석천 주위로 오동나무를 많이 심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섬석천 천변길을 걷다 보면 그 끝에서 강릉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장현 저수지를 만난다. 1940년대에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이곳 사람들은 모산지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주위로 낮은 산이 둘러싸고 있는 장현 저수지는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저수지 한 모퉁이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잠시 쉬어간다. 호수가 주는 나름의 풍경 속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누린다. 휴식 후에 몸을 추스르는데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식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붉은 줄기에 가시가 돋친 것이 딸기 종류가 아닌가 싶었는데 꽃 모양은 딸기 종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바람에 씨가 날아왔는지, 아니면 새가 먹은 열매의 잔재가 발아했는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생명력이다.

 

민들레 꽃에도 벌이 오는지 몰랐는데 민들레 꽃에 파묻혀 정신이 없는 꿀벌을 보면서 민들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다. 찾아보니 민들레 꽃에서 채밀한 민들레 꿀도 판매하고 있었다. 민들레 꽃이 수없이 필 수 있는 넓은 들판을 상상할 수 없는 우리는 아카시, 밤꿀, 잡화꿀 정도를 접해 왔는데, 민들레 꿀이 있다니...... 캐나다와 프랑스에서 생산한 민들레 꿀이 있었다.

 

장현 저수지를 돌아나가는데 호수 주변에 있는 버드나무에서 하얀 눈이 바람에 날린다. 어릴 적부터 버드나무 꽃가루라고 오해했었지만 실제는 꽃가루도 아니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도 아니다. 눈에 잘 보이니까 봄철 알레르기의 원인처럼 오해를 받았지만 하얗게 날리는 것은 민들레 씨앗처럼 하얀 솜털에 쌓인 버드나무 씨앗인 것이다.

 

 

눈송이 같은 버드나무 씨앗이 진눈깨비처럼 날린다.

 

소를 살찌운다는 살갈퀴의 보라색 꽃이 피었다. 우리나라의 요즘 소들은 이런 싱싱하고 맛있는 풀 대신 바다 건너온 조사료를 먹는 것이 현실이지만, 먹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소를 키우면서 풀 베어 먹이고, 소들이 배설한 똥은 다시 땅으로 보내는 그런 자연 순환적인 목축은 과연 일반화될 수 없는 것인가? 공장식 목축만이 살길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이제는 강릉시 구정면을 뒤로하고 장현동의 마을길을 걷는다. 강릉시 장현동은 장현 저수지를 중심으로 저수지 주위로 자리한 행정동이다.

 

장현동 마을길을 걸으며 만나는 특이한 풍경은 밭마다 경계로 망을 쳐 놓은 모습이었다. 대부분은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울타리를 쳐 놓은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여 설치하는 전기 목책기도 있었다. 높은 산이 멀지 않고 물이 가까운 마을이라 피해가 많은 모양이었다.

 

길을 지나는데 한 주택의 울타리 나무들이 꽃잔치를 펼치고 있었다. 꽃의 왕이라는 모란이 자태를 뽐내고 있고, 그 옆으로는 철쭉이 마치 신하처럼 분위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여느 식물원 못지않다. 이런 것을 두고  걷는 길에 얻는 횡재라 해도 되지 않을까?

 

호수 옆 계곡으로 자리한 장현동 마을을 지나는 길의 이름은 진재골 길인데 마을을 벗어나 고개를 넘어서면 길은 한국 폴리텍 대학으로 이어진다. 해파랑길은 고개 정상 부근에서 우회전하여 숲길로 들어선다.

 

해파랑길 38코스는 강릉 바우길 6코스와 함께 하는데, 강릉 바우길 6코스와 바우길 15코스가 진재골길에서 잠시 만났지만 성산면사무소에서 시작하여 솔향 수목원을 거쳐 내려온 15코스는 고개 넘어가 한국 폴리텍 대학 쪽으로 계속 가지만 바우길 6코스와 해파랑길은 우회전하여 숲 속으로 들어간다.

 

쭉쭉 뻗은 솔숲 사이로 걷는 최고의 산책길을 걷는다. 봄이지만 강력한 햇빛을 그대로 받으면 조금은 힘들다 싶은데 이런 숲길은 정말 좋다.

 

소나무 한 종류만 있는 숲이 아니고 작은 나무들도 어우러진 숲이라 더욱 매력적이었다. 인기 있는 산책로답게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산 옆으로 땅을 갈아 놓은 밭에는 벌거벗은 마네킹이 허수아비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대체 저게 뭐지!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마네킹이었다. 야생동물들은 저 허수아비에 과연 반응할까 하는 호기심도 생겼다.

 

오래된 수로 아래로 길을 이어간다.

 

모산봉 표지를 따라서 이동하다 보면 여러 기의 분묘들도 만난다.

 

숲 속으로 들어오는 잔잔한 햇빛이 아름다운 길이다. 참 좋은 숲길이다!라는 감탄은 얼마 가지 않아 모산로 도로와 만나면서 끊어진다. 

 

모산 초등학교 앞에서 모산로 도로로 끊어진 길은 이내 모산봉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소나무 숲이, 때로는 활엽수 숲이 모산봉으로 가는 길을 맞아 주는 오르막길이다. 105미터의 높지 않은 모산봉이지만 경사가 조금은 급한 편이라 머리로 땀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걷기도 좋지만, 스트레칭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참에 스트레칭 안내판에 눈에 들어왔다. 각 지역 보건소별로 어떤 곳은 마루에 눕고 엎드리는 정도의 스트레칭을 안내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로프를 이용한 스트레칭을 안내하기도 하는데 강릉 보건소는 실외에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을 안내하고 있었다. 재택근무가 많은 요즘, 짬을 내서 마당에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이겠다 싶었다.

 

모산봉에 가까워질수록 경사도는 더욱 급해진다. 긴 오르막이 아니어서 고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저질 체력에게는 숨을 헐떡이게 하고 땀을 흘리게 하는 구간이기는 하다.

 

드디어 어머니가 아이를 엎고 있는 형상이라는 모산봉 정상에 도착했다. 안내판에 적힌 모산봉에 얽힌 이야기를 보면 조선 중종 당시 한급이라는 사람이 강릉 부사로 부임했는데 지역 유지들에게 무시를 받고 자신의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풍수지리상 인재를 많이 배출한다는 모산봉을 1미터 정도 깎았다고 한다. 2005년에는 6개월에 걸쳐 주민들과 군장병들이 함께 흙을 산 정상으로 옮겨서 한급이 깎았던 모산봉의 높이를 1미터 다시 높여 복원했다.

 

매년 해돋이 행사가 열린다고 해서 모산봉 정상부의 전망이 좋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상은 나무들로 가려서 시야가 그리 좋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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