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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부에서 촘롱까지는 9.19Km로 시누아까지는 무난하고 시누아에서 촘롱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지난 다음 촘롱을 오르는 오르막이 고비입니다. 몸의 땀을 내고 수분을 공급하며 중간중간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다 보니 복통과 설사 이후로 최악으로 치닫던 몸 상태는 차츰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산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죠. 뱀부에서 시누아로 하산하는 길에도 가끔씩 오르막 계단을 만납니다. 올라갈 때만큼 오르막 계단이 지루하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긴 내리막 계단을 천천히 걷다 보면 와! 어떻게 우리가 이 계단을 올라갔을까? 하면서 며칠 사이의 일로 감회에 젖습니다.
저희 ABC 트레킹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의심, 아니 확신의 지탄을 받았던 계곡물을 다시 만났습니다. 촘롱에서 뱀부로 가는 길에 이 물을 만났던 것입니다. 화창한 날씨에 손만 씻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이 물을 깨끗하게 보인다고 그냥 마셔 버린 것입니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 좌측으로 작은 파이프가 별도로 나와 있어서 파이프를 통해서 물이 흐르도록 해 놓았는데 이걸 보고는 보기에 깨끗하니 괜찮겠지! 하며 마시고 물통에도 담았던 것입니다. 결국 저도 옆지기도 데우랄리에서부터 설사와 복통으로 고생을 했지요. 마시거나 먹은 것을 생각해 보면 뱀부 산장에서는 모두 익힌 음식이었으니 탈이난 원인을 찾아본다면 결국 정수되지 않은 물을 마신 것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애증의 증거와 같은 계곡물을 뒤로하고 그나마 이 정도가 다행이라는 감사의 발걸음을 옮깁니다.
길을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마차푸차레가 마치 부모님이 자식을 걱정하듯 저희의 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내려가는 저희의 하산길은 헉헉거리며 힘들게 올라오는 트래커에게는 조금 거슬릴 수도 있겠다 싶은 곳은 역시 긴 계단입니다. 저희야 그저 무릎 다치지 않도록 배낭의 무게가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이 최소화되도록 하는 주의만 기울이며 계단을 내려가지만 계단을 오를 때는 몸의 에너지를 쥐어짜듯 집중해야 하니까요. 올라가는 분들은 파이팅입니다!
뱀부와 시누아 사이의 구간에는 절벽에 붙어서 길을 오르내리는 계단 구간이 있지요. 이 구간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깊은 숲과 대나무 사이를 걷던 구간도 이제 끝인 모양입니다.
오전 11시경 뱀부를 출발한 저희는 오후 1시를 10여분 남긴 시각에 시누아(Sinuwa, 2,350m)의 힐탑 롯지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대부분의 산장에서는 어슬렁어슬렁 거리는 견공들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이곳에서는 다리를 다친 어린양 한 마리가 개를 대신해서 산장 주변을 배회하며 주인장 아주머니와 실랑이도 하고 먹이를 찾아 먹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저희의 점심 간식 메뉴는 비스킷과 콜라 그리고 나무 토마토 열매 4개로 580루피를 지불했습니다. 비스킷과 콜라는 익히 잘 알고 있는 맛의 음식이지만 토마토처럼 생긴 타마릴로(Tamarillo)로 라고도 부르는 나무 토마토 열매는 처음에는 못생긴 토마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입 먹어보니 아주 시큼한 것이 우리가 알고 먹어왔던 토마토가 아니었습니다. 아주머니도 토마토라고 하길래 그냥 토마토라고 생각했는데 껍질은 질겨서 안의 과육만 이빨로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걷기에 지친 몸을 상쾌하게 깨워 주는 시큼한 맛의 과일이라 나름 좋았습니다. 최대 5미터까지 자라는 나무에서 나는 열매로 나무 토마토(Tree Tomato)라고 부르기도 하고 타마릴로(Tamarillo)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남미가 원산지인 열대 과일입니다.
시누아의 힐탑 롯지(Hilltop Lodge & Restaurant)에서 바라본 산장 아래쪽 풍경입니다. 한창 새로운 집을 짓고 있는 모습으로 천막으로 임시 거처를 만들고 수많은 돌들로 기초를 다지고 있는 상태인가 봅니다.
힐탑 롯지에서 바라본 저희가 걸어 내려온 위쪽 계곡의 모습과 저희가 걸어가야 할 반대쪽 촘롱 방향의 전망입니다. 언덕 꼭대기 산장이란 이름답게 전망이 참 좋았습니다.
다리를 다친 어린양이 마치 견공처럼 탁자 아래로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찾아 먹고 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간식을 먹는 저희도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어디서 이런 모습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하산길에 받은 선물과도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나무 토마토(Tree Tomato) 또는 타마릴로(Tamarillo)를 모를 때는 토마토인 줄 알고 먹었다가 시큼한 맛에 괜히 사기라도 당한 느낌이었지만 나름 먹을만했습니다. 이후 하산길에서도 집 정원에서 나무 토마토를 키우는 집들을 여러 번 마주쳤는데 우리가 놀라면서 먹은 기억 때문에 만날 때마다 반가운 나무였습니다.
윗마을 시누아(Upper Sinuwa, 2,350m)를 뒤로하고 이제 바누아(Bhanuwa)라고도 부르는 아랫마을 시누아(Lower Sinuwa)를 향해서 걷습니다. 데우랄리에서 촘롱까지 16Km가 넘는 길인 만큼 다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지만 오후 1시 30분을 바라보는 시각인 만큼 시누아에서 멈추기보다는 원래 목표인 촘롱까지 계속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마치 리본처럼 생긴 식물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의 모습이 우리나라 성황당처럼 보입니다. 숲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도 따스하고 즐거운 하산길입니다.
여유로운 마음의 하산길에서는 별의 별것이 다 눈으로 들어옵니다. 이곳은 아마도 가스 배급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산장의 부엌에서는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속도가 필요한 요리들은 대부분 가스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저 가스통들도 포터들의 이마에 의해 위아래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주변에는 민가도 밭도 점점 많아집니다.
길 바로 옆에서는 할아버지가 닭 키우는 곳의 울타리를 보수하고 있었습니다. 닭이 한국에서 많은 키우는 품종처럼 생겼습니다. 간드룩 버스에서 만난 것과 같은 병아리들이 이런 곳까지 와서 저렇게 큰 닭으로 성장한 것인데 케이지에서 키우지 않고 집 주변을 돌아다니는 닭의 모습을 보면 나름 자연 육추입니다. 대부분이 암탉이었는데 계란도 저렇게 얻어지겠지요? 세계에서 모여든 트래커들이 이곳 경제를 돌게 하는 원동력이다 싶습니다. 저런 닭이 저녁 메뉴로 올라올 줄은 이때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맑은 하늘의 강렬한 햇빛을 받으라고 널어놓은 침구들과 빨래의 모습도 한 풍경합니다. 산장의 이불들이 안개와 습기 때문에 조금은 눅눅한 편인데 이렇게 부지런한 주인이 운영하는 산장을 만나면 그나마 뽀송뽀송한 이불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피곤이 수면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나 소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목적으로 출입구에 통나무를 올려놓았다는 제주도의 정낭과 비슷하게 생긴 것도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통나무 3개를 가지고 하나만 놓으면 잠깐 외출 중이고 두 개를 놓으면 근처에 있다는 의미고 세 개면 하루 종일 출타 중이라는 의미라는데 이곳에서도 그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데군데 이런 구조물들이 있었습니다.
실제 텃밭에서 크고 있는 나무 토마토의 모습입니다. 모르면 그냥 먹지 못하는 나무 열매나 향신료 중에 하나라고 여겼을 텐데 네팔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이었습니다.
드디어 시누아 산장 너머로 촘롱이 눈에 들어옵니다.
촘롱에서 뱀부로 올라갈 때는 이곳에서 소년 두 명이 동그랗게 말린 철근을 길게 펴는 작업을 막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사이에 철근이 동그랗게 말려 있던 것이라고는 상상이 안될 정도로 쭉쭉 펴 있었습니다. 산장을 짓기 위해 필요한 철근을 둘둘 말린 형태로 이곳까지 운반하고 그것을 원래의 형태로 복구시키는 이곳 나름의 방법은 정말 상상 초월입니다. ABC 경로 곳곳에 새롭게 지어지는 산장들이 여러 개란 말은 이곳을 찾는 트래커들이 그만큼 꾸준하고 그 수가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마을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는 오래된 나무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경로가 열린 1956년에도 저 나무는 이곳에 있지 않았을까요?
당나귀들이 힘겨운 걸음을 옮기며 나르고 있는 것을 저는 쌀인 줄 알았는데 당나귀를 몰고 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집 지을 때 사용하는 모래였습니다. 시멘트 한 포대를 들다가 허리를 다친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당나귀 한 마리 등에 지고 가는 모래의 무게가 장난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이동하는 당나귀를 보노라면 짠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촘롱 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이제는 내리막 길이 끝나고 기나긴 오르막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촘롱에서 뱀부로 갈 때 출렁다리를 건너자마자 있는 밭에서 반갑게 토란을 만났었는데 내려오는 길에서는 그 밭에서 토란을 캐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텃밭에 매년 토란을 키우다 보니 반가운 모습이었는데 토란 줄기와 잎의 크기에 비하면 땅에서 캔 알토란의 크기가 큼직 큼직합니다.
다시 만난 촘롱 계곡의 출렁다리. 사람과 당나귀 전용입니다. 촘롱 고개 꼭대기에서 이곳 출렁다리까지 내려오는 것도 한참이었으니 올라가는 것도 그럴 것입니다. 중간에 있는 체크 포인트에서 팀스와 ACAP를 보여주는 것은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본격적으로 오르막 계단을 시작하는 지점에는 오렌지 장수가 좌판을 펴놓고 오렌지를 팔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이곳에서 오렌지를 파는 모양이었습니다. 촘롱에서 내려와 뱀부로 향할 때는 비싸 보여서 그냥 지나갔는데 촘롱을 오를 때는 오르막을 앞두고 에너지 충전 겸, 숙소 간식을 위해 1Kg에 500루피로 오렌지를 구입 했습니다. 지친 몸에 새콤한 오렌지가 들어가니 나름 활력이 돋더군요. 포카라나 카트만두 시내에서 파는 가격과 비교하면 엄청 비싼 가격이지만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기회 비용이니 하는 수 없죠. 크기는 귤보다 조금 크고 신 맛이 강한 편이고 씨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짚을 쌓아 놓는 것이 독특합니다. 우리나라는 짚을 단으로 묶어서 차곡차곡 쌓아 올리지만 이곳에서는 기다란 나무를 중앙에 기둥으로 세워 놓고 그 기둥을 중심으로 짚을 둥글게 조금씩 쌓아 올리는 방식이었습니다. 겨울 내내 집에서 키우는 소들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촘롱은 산장도 많지만 산장들과 함께 일반 민가도 섞여 있고 집에서 키우는 소들을 줄도 없이 풀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며 날카로운 뿔을 가진 소와 대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겁이 나서 발걸음 내딛기를 주저했지만 날카로운 뿔과 다르게 온순하고 사람을 알아서 피해 주기 때문에 이제는 주의하며 쭉쭉 걸어 올라갑니다.
네팔의 산지들은 농경 중심 사회이고 주요 작물은 쌀과 감자라고 합니다. 쌀 수확을 끝낸 다랭이 논의 모습과 감자밭의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감자를 촘롱 산장에서 찐 감자로 먹었었는데 우리나라의 수미 감자처럼 동글동글하기보다는 조금 길쭉하고 껍질도 자줏빛이 돌았습니다. 벼 수확은 끝났지만 감자는 한참 때처럼 보입니다.
오르막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마음의 여유 때문인지 주변 풍경이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수확을 끝낸 논둑에서 소 먹이 풀을 베고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입니다. 네팔은 국민의 80%가 힌두교 신자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고기는 먹지 않지만 염소나 물소 고기는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에서 키우는 소도 대부분 물소입니다. 이 물소에서 우유도 얻고 고기도 얻지만 공물로도 바쳐진다고 합니다. 5년마다 열리는 가디마이 축제에서 공물로 바쳐진 수천, 수만의 동물이 도살되는데 그 대표적인 동물도 바로 물소입니다.
이곳에서는 나무 장작도 동그랗게 쌓아 올렸습니다. 장작 더미 주위로 한가롭게 노니는 닭의 모습도 이곳의 독특한 풍경입니다. 고양이나 개가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은데 물소도 닭도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이 집 정원에서는 화초와 함께 나무 토마토를 키우고 있는데 지붕에 위성 TV 안테나도 달아 놓았습니다.
집안 난간 전체에 노란 옥수수를 걸어 놓은 모습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 언덕에 저렇게 많은 돌을 쌓아 올렸을 주인장의 노력도 생각하게 하는 집이었습니다.
이 집에서는 말린 노란 옥수수를 정리하고 있네요.
저쪽 계단 위에서 물소 한 마리가 빼꼼히 계단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이건 소가 사람들을 구경하는 모양새죠? 자신이 내려갈 길에 사람이 있나 없나 살피는 것처럼 보입니다. 소가 알아서 살펴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소들이 자신들의 외양간 앞에서 주인장에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을 주변으로 풀을 뜯다가 저녁이 되면 알아서 집으로 찾아오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주인장은 외양간의 문을 나무로 닫아 놓았으니 못 들어가고 문 앞에서 되새김질하며 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코뚜레도 없는데 저렇게 풀어놓고 물소를 키운다는 게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물소젖도 얻고 농사일도 시키고 고기도 얻으니 네팔인들에 물소는 참 중요한 존재다 싶습니다.
가는 길에 소리와 색깔로 저희의 이목을 이끌었던 새 한쌍입니다.
촘롱 고개에 이를수록 자욱한 안개가 주변을 감싸옵니다. 체력에 문제가 있으면 중간에 촘롱의 어떤 산장에서라도 묵을까 생각했었지만 첫날 묵었던 숙소인 헤븐 뷰 게스트 하우스가 마음에 들었다는 옆지기에 의견을 따라서 촘롱 고개를 넘어 지누단다 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는 곳에 위치한 헤븐 뷰 게스트 하우스까지 걸었습니다. 오후 4시가 훨씬 넘는 시각에 숙소에 도착해서 혹여라도 방이 없을까 염려했는데 주인장께서 저희를 알아보시고는 이불을 모아놓던 방을 내주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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